"연말엔 철도공사 가족이라고 하시더니..."

[현장] 단식 농성 나흘째 새마을호 비정규직 승무원들

등록 2007.01.02 21:41수정 2007.01.0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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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호 승객서비스 업무를 자회사인 한국고속철도(KTX) 관광레저에 위탁하기로 한 철도공사의 방침을 거부한 새마을호 계약직 승무원들이 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새마을호 승객서비스 업무를 자회사인 한국고속철도(KTX) 관광레저에 위탁하기로 한 철도공사의 방침을 거부한 새마을호 계약직 승무원들이 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승무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갑작스레 서울역 농성장을 찾은 실버악단이 기타반주에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승무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갑작스레 서울역 농성장을 찾은 실버악단이 기타반주에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울었소/소리쳤소/이 가슴이 터지도록."

2일 오전 10시께 서울역 1층 대합실에서 '울고 넘는 박달재'가 기타 음률과 함께 구성지게 흘러나왔다. 방금 일어나 푸석한 얼굴을 모자로 가린 20대 여성 10여명이 아침 식사도 거른 채 박수로 리듬을 맞췄다.

@BRI@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마산·창원지부 소속 회원 3명이 새마을호 비정규직 승무원들의 단식 농성 현장을 응원차 방문했다. 빨간색 목티를 맞춰 입은 중년 악단은 "여러분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힘내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10여분간의 공연을 마쳤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김정옥(25·여)씨는 박수를 치던 두손을 재빨리 침낭 속으로 집어넣었다. 10여분 간격으로 도착하는 열차 승객들과 함께 매서운 바람이 서울역사 안으로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그나마 추위는 두꺼운 옷과 전기요, 침낭 등으로 해결된다지만 배고픔은 가장 힘든 고비다. 몇 걸음만 걸으면 24시간 동안 문을 여는 패스트푸드점이 있고, 아침마다 제과점에서는 빵 굽는 냄새를 뿜어내지만, 김씨는 물병을 꼭 쥐며 "이게 밥"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전' 새마을호 승무원들의 '전' 직장에서의 농성

새마을호 계약직 승무원 대표 이은진씨. 단식농성중인 그한테 물이 곧 '밥'이다.
새마을호 계약직 승무원 대표 이은진씨. 단식농성중인 그한테 물이 곧 '밥'이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확히 말해 김씨와 그의 동료들은 새마을호를 탔던 '전' 승무원들이다. 이들은 2007년이 되면서 한국철도공사(사장 이철)와 계약이 만료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철도공사는 이들에게 ▲KTX 관광레저 정규직 ▲한국철도공사 역무계약직 등을 제안했지만 이들은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30일 '철도공사의 외주위탁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그 자리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김씨를 포함해 이은진 승무원 대표 등 5명은 그날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을 하면서까지 철도공사의 제안을 거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철도공사는 자회사이긴 하지만 정규직 자리를 제공하기로 했다. KTX 관광레저의 정규직 자리를 거부한 이유를 묻자 20여명의 승무원들은 취재진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말뿐인 정규직, 왜 거부했냐고요?"

이들은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이냐, 간접 고용이냐에 따라 노동환경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겉모양만 KTX 관광레저의 '정규직'일 뿐, 새마을호 비정규직 승무원으로 있을 때보다 노동조건은 더 열악해진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철도청(전 철도공사) 시절, 매달 192시간 기본근무였지만, 실상 250시간 이상 일해야 했다"면서 "보건휴가는커녕 한 달에 한두 번 휴일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주 40시간과 법정 공휴일 12일을 빼 165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였고, 휴일 근로수당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KTX 관광레저로 들어가면서 물품 판매를 해야 하는 것에도 불만을 터뜨렸다. 이은진 대표는 "물품 판매에 반발하니까 선택사항으로 돌렸는데, 옆의 동료가 판매 실적으로 돈을 더 많이 받으면 누가 물품 판매를 거부할 수 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 대표는 "판매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면, 승무원들은 고객서비스보다는 물품 판매에 더 열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KTX 관광레저로 가면 노동조합 활동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말이 정규직이지, 노예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자리를 함께 한 김혜경씨는 철도공사가 제안한 역무비정규직에 대해 "그 자리 또한 올해 7월 외주업체로 넘긴다고 밝혔다"며 "철도공사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만 연장될 뿐 고통은 똑같다"고 말했다.

반면 철도공사 측은 역무 비정규직이 7월 외주업체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김천환 한국철도공사 여객사업본부장은 이날 통화에서 "어느 것도 확정된 것은 없다, 공사의 계약직 전부를 위탁할 계획은 없다"며 "다수의 비정규직을 '무기한 계약직', 즉 정규직화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근무시간에 대해서도 "매달 174시간 기준으로 근무시간이 편성되지만, 하루치 법정 휴일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노조 활동 여부 또한 "KTX 관광레저는 노사협의회를 운영중이고, 노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철도유통(구 홍익회)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데 철도공사와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 사장님, 철도공사 가족이라고 하셨잖아요!"

한국철도공사는 서울지사장 명의로 지난 12월 말 새마을호 계약직 승무원들에게 근로계약 만료 통보서를 보내며 2007년부터는 새마을호 승객서비스 업무를 자회사인 한국고속철도(KTX) 관광레저에 위탁할 방침이라고 개별 통보했다.
한국철도공사는 서울지사장 명의로 지난 12월 말 새마을호 계약직 승무원들에게 근로계약 만료 통보서를 보내며 2007년부터는 새마을호 승객서비스 업무를 자회사인 한국고속철도(KTX) 관광레저에 위탁할 방침이라고 개별 통보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들의 분노는 자연스레 이철 사장에게 폭발했다. 승무원 경력 4년째인 김혜경씨는 지난 연말 '사랑하는 철도공사 가족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이철 사장의 편지를 보고 뿌듯함을 느꼈단다. 하지만 지난해의 마지막날 농성현장을 찾은 이 사장은 다른 사람이었다.

"이철 사장이 우리를 정말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이 사장은 다른 사람이었다.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은 불가능하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돌아갔다.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KTX 여승무원들에게도, 가족이라면서 이럴 수 있느냐."

KTX 여승무원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이들의 투쟁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놓는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대표는 "KTX 여승무원의 투쟁처럼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승무 업무만 환원받으면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철도공사의 계속 고용으로 갈 것이다"고 기대했다.

새마을호 승객서비스 업무를 자회사인 한국고속철도(KTX) 관광레저에 위탁하기로 한 철도공사의 방침을 거부한 새마을호 계약직 승무원들이 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새마을호 승객서비스 업무를 자회사인 한국고속철도(KTX) 관광레저에 위탁하기로 한 철도공사의 방침을 거부한 새마을호 계약직 승무원들이 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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