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등도 일등할 수 있다

'공부'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등록 2007.01.04 15:59수정 2007.01.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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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순

자식을 두고 있는 맞벌이 부부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이 방학이 걱정스럽다. 부모의 감시가 없으니, 하루종일 컴퓨터에 매달릴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떼어 놓을 요량으로 어쩔 수 없이 방학특강이다, 뭐다 학원 순례시간만 더 늘리는 게 보통이다.


우리 집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돈은 돈대로 들면서 효과도 없다. 우리 애들 역시 학교 대신 학원에 다닐 뿐, 집에 오기가 무섭게 컴퓨터 앞에 앉지 못해 안달이었다. 컴퓨터를 서로 차지하려는 싸움에 중재를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오는 날이면, 나는 나대로 회사에서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BRI@초등생 부모라면 방학 동안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네, 체험 학습 삼아 전국 여행을 하네 어쩌네 하지만, 밥벌이에 바쁜 우리에겐 그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팍팍한 도시를 떠나 잠시 숨통을 틔우며 추억을 가슴에 새겨올 만한 외가나 시골 친척집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에겐 컴퓨터와 좀 더 밀접하게 탱자놀이 하기 딱 좋은 기회일 뿐이다. 또 내게 마음의 짐만 더해지는 기간이기도 하다.

뚜렷한 계획과 목표는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설령 전업주부라 해도 나름대로 아이들의 학습에 대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면, 방학은 그저 눈앞에서 빈둥거리는 아이를 보고 견뎌내야 할 고통의 시간이다.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다가 보니 마음만 급해져, 무조건 "하지 마라"와 "해"라는 구호만 외칠 뿐, 엄마는 어느덧 아이들에게 '귀찮은 잔소리꾼'일 뿐이다.

찻잔에 녹차를 따르는 남편은 언제나 정성스럽다. 첫물을 우려내 큰 사발에 옮겨 담고, 다시 물을 부어 재탕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첫물과 섞어 찻잔에 골고루 따른다. 식탁 앞에 아이들을 불러 앉혀놓고 정성스레 잔을 건네는 남편의 표정에 깊은 애정이 서려 있다. 아이들의 수다를 '듣는' 소중한 시간이다.


불과 이태 전만 해도 남편은, 자식교육에 있어 부러지면 부러졌지 절대 꺾이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자주 마찰을 빚었다. 드러내지 않는 아빠의 깊은 뜻을 아이들이 알 리가 있나. 나는 그때마다 이솝의 '해님과 북풍' 이야기를 들려주며 강압적인 태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아이들은 눈치가 늘고 요령만 더해졌다. '채찍' 쪽에 치우친 저울의 추를 중심에 놓듯, 나는 반대로 아이들의 응석받이가 되어 헛갈림을 부채질했다. 부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다. 심지어 아이들이 혼쭐나는 날이면 우리 사이에도 북풍이 일었다.


이런 과도기를 거쳐 그간 방학 동안의 경험과 실패를 토대로 남편과 진지하게 토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우리 부부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가 보였다. 목표가 뚜렷해지자 부부 각자의 역할이 주어졌고 구체적인 계획이 섰다.

아이들 방학 어떻게 보내게 해야 하나

아이들이 방학을 하자 그 다음 날부터 계획했던 것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제일 먼저 학습 계획의 큰 틀을 잡아주고 세부항목은 스스로 짜게 했다. 지난 학년 동안의 학습방법과 결과를 놓고 함께 모여 이미 충분한 검토를 마친 상태였으므로 훨씬 수월했다.

얼핏 보면 야심 찬 계획치고 너무나 허술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행간 사이엔 기록될 수 없는 시간이 존재한다. 그 시간은 노트 안에 가지런히 쌓여갈 뿐이다. 이 과정은 노트 필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쉴 틈이 없어 보이지만, 유연하게 시간을 조율할 수 있게 했다. 공부가 타고난 아이라면 모를까, 한 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무리다. 시간 단위로 끊어 중간에 휴식을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도 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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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순

아이가 예비 중학생인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참고서를 사려고 서점에 들른 나는 깜짝 놀랐다. 참고서를 비롯해 자습서, 문제집 등 종류가 하도 많아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사전에 마음에 정해둔 게 있어 덜 헤맸지만, 모두 다 좋아 보였다.

의욕만 앞설 때였으므로 과목당 서너 권을 구입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정작 한 학년이 끝난 후 책들을 훑어보니 문제집을 제외한 다른 책은 연필을 댄 흔적 하나 없다. 아이에게 부담만 지운 셈이다.

웬만한 공부벌레 아니면, 참고서 구입은 반대하는 편이다. 물론 '상세보기'를 통해 좀 더 폭넓은 지식의 함양, 말은 참 좋다. 집중되지 않고 오히려 산만하게 만들 뿐이다. 교과서를 닳도록 이해했다면, 문제풀이에 집중한다. 또 문제를 풀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부분을 '상세보기' 해야 할지도 감이 온다.

이렇게 공부할 분량을 줄여가며, '교과서'와 '노트 필기'에 집중하니 조금씩 해답이 보인다. 우선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게 그 반증이다. 이제 슬슬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모양이다.

굳이 말로써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도,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이들은 잘 알고 있다. 함께 잠 못 들고, 더불어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최고'를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최선'을 다하는 일, 이것이 곧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다.

덧붙이는 글 | 이제 교육은 '엄마'만의 몫이 아닙니다. '채찍'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아빠와 '당근'을 주는 엄마. '경쟁사회' 운운을 떠나서, '부부화합'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과정이 곧 '공부'이며, 바른 사람으로 키워내는 과정입니다. 저희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제 교육은 '엄마'만의 몫이 아닙니다. '채찍'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아빠와 '당근'을 주는 엄마. '경쟁사회' 운운을 떠나서, '부부화합'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과정이 곧 '공부'이며, 바른 사람으로 키워내는 과정입니다. 저희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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