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아, 저 연처럼 높고 넓게 살아가렴"

바람 불어 좋은 날, 두 아들과 뒷동산에 오릅니다

등록 2007.01.06 16:44수정 2007.01.0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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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아이들과 함께 연을 만들었습니다. 한지에 대나무살을 붙이고 긴 꼬리를 달아 가오리연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보기좋게 실패했습니다. 연이 바람을 잘 먹지 않았습니다. 술 취한 강아지처럼 뱅뱅 돌다가 땅바닥에 곤두질했습니다. 가오리연을 포기하고 아이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온 방패연을 날려 보기로 했습니다.


집 주변에는 전깃줄이며 나무들이 많아 연 날리기가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뒷산에 올라갔습니다. 큰 아이 인효 녀석이 저만치서 적당히 연실 풀어놓고 냅다 뜁니다. 연은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빙빙 돌다가 땅바닥에 곤두박질했습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드디어 하늘을 향해 떠올랐습니다.

a 드디어 방패연이 바람을 먹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방패연이 바람을 먹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송성영

인효 녀석이 연줄을 풀어 하늘 높이 띄워 보냅니다. 방패연은 바람을 타고 연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방방 떠오릅니다.

a "형아 나도 줌 날리자"

"형아 나도 줌 날리자" ⓒ 송성영

아이들의 마음도 덩달아 떠오릅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인상이 녀석이 연줄을 잡아 보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형아 나두 좀 해 보자."
"에이씨, 인저 날리기 시작했는데 자꾸 그러네.."
"아까부터 해놓고..."
"가만히 줌 있어봐 조끔만 더 날리구"

a "인저 날리기 시작했는디 쪼금만 더 날리구"

"인저 날리기 시작했는디 쪼금만 더 날리구" ⓒ 송성영

"싸우지덜 말구 거기 나란히 연 사이에 서 봐봐, 사진 찍어 줄게."


나는 아이들을 통해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봅니다. 어지간히도 형에게 칭얼거렸던 내 자신을 봅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내 유년의 기억을 찍고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a "어어, 얼른 댕겨 댕겨, 그렇지"

"어어, 얼른 댕겨 댕겨, 그렇지" ⓒ 송성영

연실을 잡고 있는 녀석들 사이로 방패연이 까마득히 보입니다. 바람 먹은 방패연은 얼레에 감겨 있던 연실을 남김없이 끌어 당기며 높이 더 높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아이들은 고개를 들어 보다 높은 곳에 시선을 둡니다. 나는 녀석들의 활짝 열리는 가슴을 잡아냅니다.

a 퍼질러 앉아 인효 녀석. 동생이 못미더워 참견을 하기도 합니다.

퍼질러 앉아 인효 녀석. 동생이 못미더워 참견을 하기도 합니다. ⓒ 송성영

꿈이라는, 소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 따위를 품기보다는 나는 우리집 아이들이 방패연을 따라 더 높이 더 넓게 가슴을 쫘악 펴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대자연 속의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매년 새해가 되면, 굳이 새해나 무슨 무슨 연날리기 '민속의 날'이 아니더라도 바람 불어 좋은 날, 우리 삼부자는 아주 가끔씩 뒷동산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a "얼마나 더 멀리 날아갈수 있을까?"

"얼마나 더 멀리 날아갈수 있을까?"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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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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