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거친 칼바람을 느꼈다

엄청난 눈보라을 뚫고 올라선 소백산 비로봉

등록 2007.01.11 10:05수정 2007.01.1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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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핀 아름다운 눈꽃. ⓒ 박민삼

폭설이 내렸다.

1월 6일, 경기와 충청, 호남권에 내려진 대설주의보는 겨울 눈꽃산행을 계획한 모든 이들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BRI@겨울산행이란게 수북이 쌓인 눈밭을 헤치며 환상적인 눈꽃을 감상하며 올라가는 게 제맛인데, 그동안 포근하고 화창하리만큼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바람에 눈 구경은커녕 간간이 내린 진눈깨비가 전부일 정도로 부실했었다.

이런 날이 계속된다면 올겨울 산행은 그저 앙상한 수목과 찬바람의 추운 기억밖에 남지 않은 그저 밋밋한 오름길뿐일 것이다.

이러던 차에 때마침 6일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은 아침 한나절 동안 무섭게 온 도시를 하얗게 변하게 하더니, 오후에는 강한 바람과 뚝 떨어진 영하권 기온까지 보태주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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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주차장(소백산 들머리). ⓒ 박민삼

소백산 북부관리사무소에 급히 전화로 대설특보와 입산통제 여부를 문의했더니 당일 오후에 더는 눈이 오지 않으면 내일(7일)은 입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은 오후에 들어서자 눈은 더는 내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7일 소백산 산행은 가능할 것 같았다. 밤 9시쯤 다시 관리사무소에 재차 문의를 해보니 저녁 8시 부로 소백산 주변의 대설특보가 해제됐단다. 이제는 소백산을 오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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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이 쌓인 눈에 온산이 눈꽃으로 덮였다. ⓒ 박민삼

겨울산행은 산행시간을 되도록 짧게 계획하는 것이 좋다. 일출이 늦고 일몰이 빠르기 때문에 자칫 여유를 부렸다간 하산 시 순식간에 날이 저물어 어둠에 조난을 당할 위험이 많다.

오전 7시 서울에서 출발해 충북 단양의 남한강줄기를 따라 단양팔경의 하나인 도담삼봉의 수려한 경관과 첩첩산중에 쌓인 하얀 눈을 감상하니, 버스는 어느덧 단양시내를 지나 구불구불 소백산 가는 길로 접어든다. 20여 분을 달려 가곡면 어의곡리에 도착하니 오전 9시 50분이다. 이곳이 비로봉을 오르는 최단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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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600m 지점의 오름길. ⓒ 박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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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에 내려앉은 설경. ⓒ 박민삼

소복이 쌓인 눈에 완만한 오름길, 바람도 없고 햇빛까지 비추니 이때까지 만해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아름다운 눈꽃을 감상하며 편하게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그 엄청난 칼바람을 감히 상상이나 했겠나.

주변 순백의 눈꽃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주었고, 넉넉한 품에 웅장한 산세는 겨울산행의 장쾌하고 거친 산행을 요구했다. 정상부 능선 삼거리까지의 오름길은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하고 주목과 고사목에 핀 환상적인 눈꽃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올라섰다. 하지만 정상 능선에 거의 다다르자 조금씩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하산을 위해 내려서는 등산객들의 얼굴을 보자 모두 사색이 되어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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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칼바람의 비로봉 가는 길. ⓒ 박민삼

"생애 최고의 칼바람을 느낄거요! 자칫하면 날아가니 조심하시오…."

50대의 한 중년의 남자가 온몸에 눈발을 안고 하얗게 변해버린 눈썹과 빨갛게 달아오른 볼 짝, 그리고 지친 몸을 추스르며 전해준 섬뜩한 말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바람이기에….

내심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눈만 보일 정도로 온몸을 방한복으로 감싸고 한 발씩 옮긴다.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더니만 5분도 채 안돼 벼락같은 바람이 온몸을 덮친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칼바람이었다. 능선 사이로 무섭게 휘날리며 몰아치는 눈보라는 걸음걸이조차 힘들게 했다.

능선길 양쪽에 설치된 안전밧줄을 잡으며 힘겹게 비로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잘못하여 몸의 중심을 잃었을 경우에는 아까 그 중년남자의 말처럼 반대편 산등성이로 날아갔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러다간 죽을 수도 있겠구나."

순간 머릿속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히말라야를 등정하다 조난당한 산악인들이 생각났다. 이보다 더 엄청난 추위와 바람이었을 건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온갖 잡다한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정상인 비로봉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온몸을 괴롭혔다. 정상에 도착하니 그 와중에도 정상표지석에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채 5분도 추위와 칼바람에 서 있질 못하고 서둘러 천동으로 하산하는 계단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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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 정상. ⓒ 박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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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 아래에 있는 대피소. ⓒ 박민삼

가까운 곳에 대피소가 보였다. 정말 반가웠다. 대피소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모두 꽁꽁 얼어버린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몇몇 여자들은 반쯤 실신해 대피소 한쪽 구석에 누워 같이 온 일행들의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바람이 대단하긴 대단했나 보다.

대피소를 지나 연화봉과 천동 갈림길을 내려서자 그 엄청난 칼바람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시야에는 소복이 쌓인 눈밭과 수목에 핀 아름다운 눈꽃뿐이었다. 참 희한한 소백산이다. 하산길에 눈썰매를 즐기는 등산객들도 눈에 띄고 정상의 칼바람에 미처 찍지 못한 겨울 설경을 담느라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3시간의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 하산길이었다. 어의곡리에서 천동리까지 6시간여가 걸린 생애 최고의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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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에서 천동으로 하산하는 계단길. ⓒ 박민삼

소백산은 하얀 눈이 머리에 내린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산행지로 유명한 소백산은 꽃피는 5월 하순경이면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철쭉군락이 아름답고, 비로봉 서북쪽 1만여 평에 6천 그루의 주목군락(천연기념물 244호)이 있으며, 한국산 에델바이스인 솜다리가 자생하고 있다.

특히 소백산은 불교의 성지로 여러 사찰이 있는데 국망봉 아래 초암사, 비로봉 아래 비로사, 연화봉 아래 희방사, 산동 쪽에 위치한 부석사, 국망봉 너머 국내 최대규모의 사찰로 알려진 구인사가 있다. 또 단양 8경을 접하고 있어 산행을 겸한 다양한 볼거리도 풍부해 가족과 함께 넉넉한 일정에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히말라야의 그 높은 산의 바람은 어떤 느낌일까. 20여 분 남짓 느꼈던 소백산의 칼바람에 히말라야라는 근접 할 수 없는 산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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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칼바람을 뚫고 올라선 비로봉 정상. ⓒ 박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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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그 길을 찾고...기록으로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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