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사산에선 모래도 울고, 낙타도 울고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25] 둔황 싼웨이산과 밍사산

등록 2007.01.12 15:26수정 2007.01.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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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바람의 싼웨이산

모가오굴(莫高窟)을 나서 싼웨이산(三危山)으로 향한다. 사실 향한다 만다 할 것도 없는 게 모가오굴이 있는 밍사산 절벽을 나서면 싼웨이산의 험준한 자태가 앞을 막아선다. 동서로 수십 리에 걸쳐 있지만 주봉이 바로 밍사산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 바위산의 자태를 나 몰라라 하고 둔황 시내로 들어가느냐, 산으로 향하느냐만 결정하면 되는데 산 쪽으로 방향을 두는 차는 없다.

a 싼웨이산을 향해

싼웨이산을 향해 ⓒ 오창학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산임에도 관광지로서도 유적지로서도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겐 둔황의 꽃 밍사산에 가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싼웨이산 만큼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장소였다.

'삼위(三危)'는 산의 형세가 우뚝 솟았는데 마치 넘어질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대위(大危) 이위(二危) 삼위(三危) 형제가 태양과 달을 난동을 부리는 천구(天狗)로부터 빼앗아 온 후 이 산의 세 봉우리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나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BRI@유래야 어찌되었든 둔황의 옛이름으로 '사주(沙州)'가 귀에 익지만 사서에 등장하는 둔황 최초의 이름은 '삼위(三危)'이니 한낱 돌산으로 보이는 이곳의 중요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위'라는 지명이 최초로 보이는 것은 <서경> 순전(舜典)에 "삼묘를 삼위로 보냈다(竄三苗于三危)"하는 구절인데 <좌전>과 <산해경>에도 서왕모와 삼청조(三靑鳥) 이야기와 관련해서도 삼위가 나온다.


그러나 정작 관심을 끄는 이유는 우리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보이는 "삼위산과 태백산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下視三危太白 可以弘益人間)"는 기록 속 지명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진위여부를 떠나 <환단고기>에도 환웅천황은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으로 진출하고 중국의 시조 반고는 삼위산(三危山) 납림동굴(拉林洞窟)로 갔다는 기록이 있으니 한민족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신라 문무왕의 선조라는 김일제의 부친 휴도왕이 활동했던 무대가 우웨이 언지산(焉支山)에서 이곳 둔황의 삼위산(三危山)에 이르는 지역이니 이 산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a 가파른 산을 오르는 백구와 파라곤

가파른 산을 오르는 백구와 파라곤 ⓒ 박재익

중국 정부가 나름으로 싼웨이산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서인지 또 다른 관광상품의 개발을 위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원경으로 보기엔 그저 삭막한 돌뿐인 것 같은데 산에 길을 내놓았다. 근경에서 산세만이라도 관찰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잘 됐다 싶어 내친김에 차로 산에 오른다.

좌우의 석벽은 금세 바위라도 쏟아낼 듯 급하고 경사는 가파르다. 길은 좁고 굽은 정도가 급한데 엔진회전수(RPM)를 높여 치고 오르지 않으면 안 되기에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

a 싼웨산 능선길의 서유기상. 정말 요괴라도 하나 나올 듯한 산세다

싼웨산 능선길의 서유기상. 정말 요괴라도 하나 나올 듯한 산세다 ⓒ 오창학

능선에 올라 평탄한 길을 한동안 주행하니 길 한편에 <서유기>의 등장인물들이 세워져 있다. 현장법사의 흔적이 짙은 길이어서일까? 실크로드를 따라 움직이는 내내 서유기 조형물들을 접한다. 아닌게아니라 이런 험준한 지형의 산엔 요괴라도 하나쯤 살 것 같다.

그로부터 1㎞가량을 진행했으나 산정 밑에 사찰 비슷한 건축물을 지어놓고 길을 폐쇄했기에 차를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 산 아래 전망이 보이는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둔황이 확연히 모래의 땅임을 알겠다.

온통 모래의 사막에 멀리 둔황 시내의 녹지가 신기루처럼 펼쳐 있다. 저 시가지에만도 4만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주변 지역까지 합하면 17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관광 산업으로 인해 둔황은 당 대 이후 최고의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다.

육감적인 S라인 밍사산

싼웨이산을 뒤로 하고 다시 20㎞를 달려 시가지로 들어섰다. 도심에서 불과 십여 리 안팎에 있는 밍사산(鳴沙山)을 가기 위해서다. 밍사산은 동서 40㎞에 남북 20㎞의 모래 사구 지대이니 딱히 도심에서 몇 ㎞ 운운하는 것이 우습지만 밍사산의 꽃 웨야첸(月牙泉)이 있는 관광지대를 기점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a 도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밍사산

도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밍사산 ⓒ 오창학

"아아…."

시가지를 비켜 들어서는데 눈앞에 펼쳐진 모래산의 자태가 육감적이다. 그야말로 'S라인'을 그리며 하늘로 모래가 돌아 쌓였다. 어쩌면 저 거대한 모래무더기가 오아시스 옆에 우뚝 솟을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오아시스가 저런 모래더미 곁에 생겨날 수 있었을까.

아름다운 밍사산을 들어서자마자 낙타똥 냄새가 반긴다. 밍사산의 첫대면은 모래산의 자태가 주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지독한 낙타똥 냄새가 안기는 후각적 고통 속에서 시작된다.

밍사산의 낙타

a 밍사산의 첫대면은 모래산의 자태가 주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지독한 낙타똥 냄새가 안기는 후각적 고통 속에서 시작된다

밍사산의 첫대면은 모래산의 자태가 주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지독한 낙타똥 냄새가 안기는 후각적 고통 속에서 시작된다 ⓒ 오창학

지린내와 구린내가 적당히 섞인 초식동물 특유의 냄새를 비집고 197번 낙타에 올라탄다. 낙타를 타 보기는 난생처음. 모래산을 오르는 일도 역시 처음. 낙타를 타고 모래산을 오르는 일은 더더욱 처음이다. 사구를 돌아 웨야첸에 이르는 2㎞ 남짓한 사막의 '대모험'을 기대하기엔 어쩐지 빈약한 냄새가 나지만.

이내 후회로 가득하다. 이제껏 자동차로만 사막을 지났기에 옛 정취를 살려 낙타로 모래 위를 걷는 느낌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다 여겼는데 이건 아니다. 사구를 오르는 낙타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겹다. 해가 질 무렵의 197번 낙타에게 이번이 오늘 하루 몇 바퀴째 행보일까.

a 몰이꾼과 낙타의 거친 숨이 부담스럽다. 남의 고통 덕에 내 육신이 편할 수 있다는 게 그리 편치 않은 낙타 등반

몰이꾼과 낙타의 거친 숨이 부담스럽다. 남의 고통 덕에 내 육신이 편할 수 있다는 게 그리 편치 않은 낙타 등반 ⓒ 오창학

몰이꾼이나 낙타나 거친 숨을 내쉬는 게 처절하다. 타인의 고통 위에 내 육신의 편의를 도모해야 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이래야 저들의 생계에 도움이 된다고 자위해 보지만 이들의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마저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내 이럴 줄 알고 밍사산에 가면 관광객을 위한 낙타는 타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막상 사구를 오르는 낙타행렬에 그만 눈을 빼앗겼다. 흡사 사막을 건너는 캐러밴의 무리인 양 여겨져 값비싼 요금을 치르고 덥석 낙타의 등에 오르고 만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치관이 흔들린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의 이치와 현상에 좀 더 밝아지게 되면 내 신념은 지금보다 더 투명해지고 명료해지리라 믿었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세상은 더 모르겠고 생각은 방향을 잃고 흔들린다. 어떤 이는 이를 '적응'이라고도 말해주고 어떤 이는 '융통성'이라고도 말하는데 가히 좋게 여겨지지 않는다.

발레리의 말처럼 생각한 대로 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살아간 대로 생각하게 될 테니까.

a 밍사산의 환상적인 곡선

밍사산의 환상적인 곡선 ⓒ 오차학

낙타는 완만한 모래 언덕을 길게 올라 가파른 모래산의 둔덕에서 일단 멈춘다. 먼 곳을 내려다보며 정상에서의 감회를 맛보고 싶은 자는 이제 도보로 올라야 한다. 정상의 높이가 해발 1600m를 넘는다지만 둔황의 고도 자체가 높으니 육안으로 관측되는 산의 높이는 잘해야 150∼200m. 그나마 낙타가 실어다 주었으니 사람이 제 발로 올라야하는 높이는 70∼80m를 넘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낙타 표 안에는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이용료와 다시 정상에서 낙타 접선장소로 내려오는 모래 썰매 값이 포함되어 있다. 해변 백사장보다 부드러운 모래는 발 딛기 무섭게 허물어져 내린다.

모래산의 경사가 가파른 탓에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는 한 발 한 발이 힘겨운 걸음이다. 계단조차도 모래에 반 너머 묻혀 걸음을 더디게 하지만 그냥 맨 모래 위를 등판하는 것에 비길 바는 아니다.

그 짧은 구간을 오르는데도 숨이 턱까지 찬다. 가만 보니 아내는 더 울상이다. 아예 신발까지 벗어들고 악순이처럼 오르기는 하는데 폐병 환자처럼 가쁜 호흡과 땀으로 범벅된 표정은 가리지 못한다.

a 밍사산 정상에 오르는 나무 계단(좌), 어렵사리 올라 주저앉은 아내(우)>

밍사산 정상에 오르는 나무 계단(좌), 어렵사리 올라 주저앉은 아내(우)> ⓒ 오창학

드디어 모래산 정상. 아내는 털썩 주저앉아 더 오를 곳 없는 느낌을 만끽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밍사산 서부지역과 둔황의 모습이 눈에 가득하다.

명사(鳴沙)는 울지 않고

명사(鳴沙). 모래 우는 산. 누구는 흉노의 시신이 쌓인 곳에 모래가 덮여 산을 이루었기에 그 군사의 원혼이 울어 '명사(鳴沙)'라고도 하고 누구는 모래의 철분성분이 바람에 사그락거리며 운다 하여 명사라고도 한다.

혹은 중국의 군대가 이곳에 숙영할 때 적의 기습을 받고 북을 울리며 전투하던 중 갑자기 불어온 모래 바람에 모두 묻혔기에 지금도 모래 바람이 불면 전장의 북소리를 낸다는 전설도 있다.

조금씩 말은 다르지만 모래 우는 소리는 '한', '애틋함' 뭐 이런 정서에 연원을 두고 있다. 야산의 바위 한 톨에도 전설이 깃드는 법이거늘, 하물며 이 거대한 모래산에 이야기가 없겠는가.

혹여 모래 우는 소릴 들을까 모래산 정상에서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았지만 사위는 낙타 울음 소리, 사륜 오토바이(ATV)와 사막용 사륜 구동 차량 소리, 심지어는 초경량 비행기의 엔진음까지 버무려져 애틋한 정서는 느낄 겨를이 없다.

이들에 짓눌려 밍사산은 할퀴고 상처받은 몸으로 하루를 난다. 그러나 바람이 주는 치유는 내일 또 날카로운 날을 세우며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a 밍사산의 석양. 밍사산은 서늘해지는 오후 늦게가 방문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밍사산의 석양. 밍사산은 서늘해지는 오후 늦게가 방문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 오창학

해지는 저녁. 소음 속에서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은 모래 위로 넘어가는 붉은 해의 정경이다. 유난히 아름답다는 밍사산의 석양이기에 저렇게 쉬이 넘어갈까 안타까운 마음이 일지만 자고로 예쁜 꽃은 빨리지는 법.

일몰의 흥분을 뒤로하고 모래산을 내려서는 방편은 모래 썰매다. 잘 미끄러지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대나무 썰매에 궁둥이를 붙이고 올라올 때만큼이나 힘겹게 산을 내려서 다시 낙타에 오른다.

달빛 아래 초승달샘

낙타가 나름대로 잰걸음을 놀려 웨야첸(月牙泉)으로 향한다. 도착했을 땐 이미 밤 9시 30분. 해는 졌고 사위는 어둠에 잠겨 가까이에서 보아도 샘물의 색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월아천, 이름 그대로 밍사산에 있는 초승달 모양의 호수다. 이처럼 거대한 모래산 지대가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복판에 마르지 않는 호수가 있다는 것이 더욱 신비하다. 이런 신비함 뒤엔 전설이 빠질 수 없어 이 호수의 유래에 대해서도 몇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광재라는 장군이 적군을 물리치고 돌아가던 중에 물이 부족해 헤맬 때 문수보살이 나타나 정병으로 샘이 흐르게 했다. 혹은 둔황이 갑자기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자 천상의 선녀가 슬퍼 흘린 눈물이 샘을 이루어 지금의 웨야첸이 되었다 등.

치롄산맥 물줄기가 둔황 남부에서 스며들어 지하수로 뿜어져 나온다는 밋밋한 설명보다야 한낱 사물이 사물 이상의 것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감성적인 이야기가 곁들여지는 게 낫지.

하긴 전설이 아니고서는 이 가파른 모래산에 둘러싸인 작은 호수가 수천년 간이나 유사(流沙)에 매몰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주변을 둘러싼 모래 언덕의 공기역학 구조가 외곽으로 모래를 날려 보내기에 유사에 의한 오아시스 매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으로는 궁금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바람 부는 밍사산을 본 사람이면 이 속에 묻히지 않는 샘이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인지 안다.

하지만 3000년을 이으며 마르지 않던 샘도 21세기 전 지구적 환경 위기 속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둔황 지역 내의 인구증가와 농업용수의 사용 증가로 지하수가 고갈되고 사막화의 진행이 가속화된 탓이다. 1950년대 4000평의 수면 면적은 1200평으로 10m를 자랑하던 수심은 1.2m로 낮아졌다.

총리의 특별지시로 관개시설을 확충하고 과학적 급수 방법을 모색하려 한다지만 어쩐지 염려스럽다. 문수보살의 정병도, 선녀의 눈물도 인간이 만든 환경의 재앙 앞에선 힘을 잃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지난 3000년을 견뎠고 지금도 자태를 유지하고 있잖은가. 호수 같은 샘을 보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내 인생의 모래산에도 저런 마르지 않는 샘 하나 있었으면….'

a 월아(月牙) 아래 월아천(月牙泉)

월아(月牙) 아래 월아천(月牙泉) ⓒ 오창학

웨야천 옆 녹지대 휴게소에서 먼저 오신 에릭님과 교수님이 기다리고 계시다. 에릭님이 권하는 이곳 웨야천 특산 시원한 살구차 한 잔. 말린 살구를 넣고 꿀과 함께 끓인 후 식은 다음 시원하게 맥주잔 500cc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는 차다.

"카아∼"

기가 막히다. 천사의 물이다. 술을 하지 못하는 나는 심야시간대에 맥주 광고에서 보여주는 모델들의 그 시원한 표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비유를 통해 표현하라면 모래산에서 내려와 거푸 들이키는 살구차의 뒷맛 같은 느낌을 그들이 표정으로 나타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행복의 기준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할 진데, 오늘 월아(月牙: 초승달) 아래 건재한 월아(月牙泉) 앞에서 살구차 한 잔을 놓으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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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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