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새처럼 살다 간 허난설헌을 만나다

영화처럼 재미있는 동해안 문화기행 (18)

등록 2007.01.22 10:15수정 2007.01.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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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새는 하루종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울음을 그친 지도 어언 삼 년. 계빈왕에게 붙잡혀 좁고 답답한 새장 속에 갇힌 자신의 처지가 못내 서러웠을까. 난새는 자유의 기회를 박탈당한 그 순간부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왕은 난새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최후의 방법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것은 난새를 필경 죽음에 이르게 할 방도였다. 왕의 고민은 깊어갔다.


결국 계빈왕은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비록 난새가 죽을지라도 왕은 천년설의 청아함을 닮은 난새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왕은 시녀들에게 거울을 걸라는 영을 내렸다. 난새는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넋을 잃듯이.

마침내 난새는 울어대기 시작했다. 구슬프면서도 서러운 울음소리는 왕과 신하들의 심장 속으로 파고들었다. 한참을 울던 난새는 거울을 향해 온몸을 던졌다. 난새가 부딪힌 거울에는 선지피가 는개처럼 곱게 흘러내렸다. 왕은 죽은 난새를 보듬었는데, 따뜻한 주검에서는 능소화 향훈이 풍겨 나왔다.

남조 시대 송나라 시인인 범태는 '난조시서'라는 시를 통해 난새를 세상에 소개했다. 난새는 음전한 용모와 가향처럼 맑고 고운 목소리를 지닌 새 중의 새였다. 난새는 밀폐된 새장 속에서 한 줌의 모이를 위해 노래나 부르는 새는 아니었다. 난새는 치유 불가능한 자유주의자 환자였다.

이끼 낀 솟을대문.
이끼 낀 솟을대문.김대갑
그녀가 태어난 곳은 경포호의 외딴곳에 여염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인 허엽의 호를 따서 초당이라 불리는 그곳은 오래된 해송이 웅숭깊은 자태를 가진 곳이었다. 그리고 짚 앞에는 난설헌의 생가터라고 추정된다는 해설판이 이끼가 서린 우물가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허난설헌과 전혜린은 여러모로 닮았다. 난설헌은 27세, 전혜린은 31세의 나이로 요절했으며 천재적인 여류 작가라고 평가받았다. 또 남편과 지독하게 사이가 나빴으며, 난새처럼 좁고 답답한 환경(가부장적인 사회)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일설에 의하면 난설헌도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 자살한 것도 닮은 것이 된다. 그리고 둘 다 사후에 엄청난 유명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비슷하다. 한 사람은 한·중·일을 넘나드는 천재 시인으로, 또 한 사람은 불꽃 같은 삶의 태도와 유장한 문체로 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두 사람은 사백 년의 시공을 돌고 돌아 한 몸이 되었다가 이승을 작별한 것이다.

넉넉한 마당.
넉넉한 마당.김대갑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은 단연 허균일 것이다. 명문 거족의 자녀로 태어나 혁명을 꿈꾸었던 허균은 일곱 번이나 복직과 해직을 거듭한 인물이었다. 혁명을 위해서 관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신비한 인물, 허균.


그가 그려낸 <홍길동전>의 말미는 다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정작 그의 마지막은 너무 비참했다. 그러나 그의 시각에서 보자면 능지처참 형을 당한 자신의 마지막이 비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그런 혁명적 행동을 쉽사리 하지도 않았을 허균이기 때문이다.

흔히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이로 소개되곤 한다. 백과사전이나 여러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꼬리표는 늘 허균의 누이였다. 그러나 그녀의 시집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1600년대에는 당당히 제 이름으로 된 문집을 가진 최초의 여성이었다. 이미 사백 년 전에 난설헌은 허균의 누이가 아니라 자는 경번이요, 호는 난설헌이며, 본명은 초희로 알려진 천재시인이었던 것이다.

가을에 맑은 호숫물 옥돌처럼 흘러가고
연꽃 피는 깊은 곳에 난초 배를 매놓고서
당신보고 물 건너서 난꽃을 던졌는데
혹시 남이 봤을까봐 반나절 부끄럽네.

- 난설헌 '채련꽃'


그녀의 자취가 묻어 있을까?
그녀의 자취가 묻어 있을까?김대갑
난설헌은 약 210수의 시를 남겼다. 그리고 그 시 중의 60%는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이며, 나머지 시들은 애상과 애정을 노래한 것이다. 한마디로 여성 작가 특유의 낭만성과 서정성이 묻어나는 시를 쓴 것이다.

'채련꽃'은 그런 여성의 감수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남성에 대한 그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 시를 통해 난설헌이 얼마나 자유분방하며 과감한 사고를 지녔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난설헌이었기에 당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8세에 <광한전백옥루 상량문>을 쓸 정도로 신동이었지만 '단지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시를 쓰는 것 자체를 핍박받았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자유주의자인 그녀의 의식세계가 얼마나 피폐했을까.

난설헌은 15세에 안동 김씨 일족인 김성립에게 시집갔지만 남편은 기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생 한량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름답고 젊은데다가 문재까지 뛰어난 며느리에게 시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친정은 사색당파의 소용돌이 속에서 몰락하고 말았으며, 세 자녀는 어린 나이에 모두 죽고 말았다. 한마디로 그녀의 삶은 철저한 불행과 고독의 나날이었다. 그녀의 시가 애상적 기풍을 띠는 것은 이런 불행한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담장가에 서린 난설헌의 웃음.
담장가에 서린 난설헌의 웃음.김대갑
난설헌은 불행한 삶의 틈바구니에서 다양한 주제를 담은 시를 썼으며, 천박한 유교문화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타고난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안타까운 시인이었다. 만일 그녀가 신사임당과 같은 환경을 갖추었다면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난설헌이 억압을 받았기 때문에 210수라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만일 그녀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가졌다면 시를 별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난설헌이 남편과 금술이 좋았다면 그녀 특유의 애상적 시풍이 담긴 시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예술혼은 억압 속에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시로 남긴 것 자체가 천재적인 시작 능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즉, 난설헌은 타고난 재능을 제대로 펼쳤으며, 그 타고난 재능에 의해 창작된 시가 후세에 전해져 그녀의 이름을 인구에 회자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시는 우선 중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그녀의 사후에 허균이 작품의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었고, 주지번이 <난설헌집>이라는 제명으로 출간한 것이다. 그때 대단한 격찬을 받았다고 한다. 또 1711년에는 일본에서 분다이야 지로가 <난설헌집>을 출간하여 널리 애송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유선시', '빈녀음', '곡자'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날자, 어디 한 번 날아보자!
날자, 어디 한 번 날아보자!김대갑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인 심정을 신선시로 표현했던 난설헌.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염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 허초희. 황진이처럼 자유롭게 살며 팜므파탈이 되고 싶었던 매력적인 그녀, 난설헌. 자신을 난새에 비유하며 일평생 가슴에 한을 품어야 했던 허초희.

솟을 대문 사이로 가만 쳐다보니 하늘가를 나는 그녀의 모습이 묘려하게 펼쳐졌다. 자유와 문학, 예술을 사랑했던 허난설헌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리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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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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