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자취가 묻어 있을까?김대갑
난설헌은 약 210수의 시를 남겼다. 그리고 그 시 중의 60%는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이며, 나머지 시들은 애상과 애정을 노래한 것이다. 한마디로 여성 작가 특유의 낭만성과 서정성이 묻어나는 시를 쓴 것이다.
'채련꽃'은 그런 여성의 감수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남성에 대한 그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 시를 통해 난설헌이 얼마나 자유분방하며 과감한 사고를 지녔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난설헌이었기에 당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8세에 <광한전백옥루 상량문>을 쓸 정도로 신동이었지만 '단지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시를 쓰는 것 자체를 핍박받았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자유주의자인 그녀의 의식세계가 얼마나 피폐했을까.
난설헌은 15세에 안동 김씨 일족인 김성립에게 시집갔지만 남편은 기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생 한량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름답고 젊은데다가 문재까지 뛰어난 며느리에게 시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친정은 사색당파의 소용돌이 속에서 몰락하고 말았으며, 세 자녀는 어린 나이에 모두 죽고 말았다. 한마디로 그녀의 삶은 철저한 불행과 고독의 나날이었다. 그녀의 시가 애상적 기풍을 띠는 것은 이런 불행한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