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덤벼들어도 우리는 상대하지 않을 것"

최근 북한 외교라인의 대일전략

등록 2007.01.27 11:16수정 2007.01.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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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18일 베를린 회담 이후 북미관계가 다시 급진전되고 있다. 이번 달 30일에는 베이징에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계좌 동결 문제에 관한 북·미 실무회담이 열리게 된다. 이어서 다음 달에는 6자회담이 재개될 예정이다.

그런데 베를린 회담을 계기로 나타나는 새로운 양상은 비단 북미관계 급진전뿐만이 아니다. 최근에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현상은 일본이 6자회담 국면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점이다.

@BRI@이 같은 일본의 고립은 북한의 대일전략에 의해 조성되고 있는 결과물이다. 북한은 작년 12월에 열린 제2단계 5차 6자회담에서 일본측 수석대표와의 회동을 단 한번도 갖지 않았다. 또 이번 베를린 회담이 끝난 후에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모스크바와 베이징에서 러시아·중국·한국측 수석대표들을 만났지만, 일본측과는 만남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한국의 움직임도 이러한 일본의 고립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5일의 연두기자회견에서 “6자회담 틀에서 납치문제가 최우선 과제가 된다든지, 북핵문제와 동격의 과제로 제기되는 것에 대해선 6자회담 당사국 모두가 바라지 않는 것 아닌가?”라면서 “한국정부의 관점에서는 북핵문제를 우선 처리하자는 입장”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는 일본이 소위 납치문제를 제기함으로써 6자회담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반대 입장을 갖고 있음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북한의 대일 전략을 돕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본이 엉뚱한 발언으로 6자회담을 무산시키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핵실험 이후 북한의 위상이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러시아·중국 등의 대북 ‘러브콜’이 ‘진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일본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6자회담 속에서의 일본의 위상에도 부정적 영향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이라크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북한의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미국으로서도 일본의 ‘회담장 분위기 흐트러뜨리기’를 마냥 묵인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최근의 정세는 일본의 역내 위상에 명백한 ‘적신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대북 외교라인이 무언가 새로운 정책적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최근 북한의 대일 외교라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대일정책을 구사하고 있을까? 근래에 두드러지고 있는 북한의 대일 외교 기조는 한마디로 ‘일본을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6일자 <조선신보> 시론이 북한 외교 소식통의 말을 빌려 소개한 바와 같이, 북한은 “일본이 덤벼들어도 우리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대일 ‘외면’ 정책은 평양 북일정상회담 이후의 북일관계에 대한 전략적 반성에 기초하고 있다. 당시 내부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직접 접촉에 나섰던 북한은 이후 북일수교 성사는커녕 도리어 일본의 ‘납치문제’ 공격에 휘말리고 말았던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납치문제 공격으로 인해 공연히 북미관계에까지 부정적 영향이 초래되어 왔다.


또 흥미로운 것은, 북한의 대미 외교라인은 미국에 대해 심리적 자신감을 갖고 있는 데 비해, 북한의 대일 외교라인은 일본에 대해 명확한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미관계에서는 북한이 동북아를 주도하고 있는 데 비해, 대일관계에서는 북한이 아닌 중국이 동북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의 대일 비판은 그 효과 면에서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 비해서도 뒤처지고 있는 편이다.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의 대일비판에 대해서는 심리적 압박을 받으면서도, 북한의 대일 비판에 대해서는 심리적 압박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이를 국내의 대북강경분위기 조성에 역이용하고 있는 것에서도 그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물적·정신적으로 일본을 확실히 압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한동안은 일본을 상대하지 않는 것이 북한측에게도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일정 기간 동안에는 일본을 상대하지 않고 도리어 일본을 고립시킴으로써 ‘볼썽사나운 꼴’을 아예 경험하지 않겠다는 것이 북한 외교라인의 반성이다. 작년 초에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온 조총련계 관계자도 “미국을 잡으면 일본은 저절로 잡힐 것”이라면서 “향후 북일관계가 역전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 적도 있다.

그리고 북한이 일본의 고립을 조성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일본의 조총련 탄압을 들 수 있다. 26일자 <조선신보>에서는 “작년 이래 조선은 총련 탄압 등 일본의 무분별한 대결강경책과 그로 인한 후과를 똑똑히 계산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무분별한 대북강경책을 시정하기 위한 외교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동북아에서 절대적 우위의 군사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역내 주도권을 잡고자 한다면, 역내 정세의 분위기와 흐름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그런데 일본이 핵실험 이후 북한의 위상이 강화되는 분위기를 무시하고서 다분히 ‘신파극’ 같은 납치문제를 또 들고 나옴으로써 동북아의 새로운 흐름에 역행한다면, 이는 도리어 일본의 역내 위상을 약화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6자회담의 성공을 바라는 역내 국가들의 희망에 대해 일본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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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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