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해고 노동자 가족의 삶은 처절했다

[서평] 삼성 해고 노동자 가족의 투쟁 기록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

등록 2007.02.04 16:52수정 2007.02.0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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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씨가 펴낸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
박미경씨가 펴낸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윤성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몸부림은 처절했다. 해고 노동자 부부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팔순 노모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는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명예훼손과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까지 되었다. 이들의 투쟁은 8년째, 날수로 따져 3000일이 넘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소재 삼성SDI 해고노동자 송수근(44)씨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송씨 부인 박미경(38)씨가 8년 투쟁의 기록을 담은 책을 냈다. '삼성SDI 해고 노동자 아내의 희망찾기'라는 부제가 달린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삶이보이는창)라는 책이다. 263쪽에 걸쳐 한 가족이 거대기업과 처절하게 싸운 몸부림이 기록되어 있다.


일기 형식으로 쓴 글에는 박씨가 때로는 1인 시위 등을 벌이면서 회사측과 빚었던 마찰뿐만 아니라 감시와 미행을 당한 내용들까지 소상히 담겨 있다.

삼성SDI 노사협의회 위원을 맡고 있던 송수근씨는 1998년 회사가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전환을 강행하려 하자 이에 반대한다. 송씨는 이를 막기 위해 외출에다 본사 항의방문을 벌였다. 그런데 이후 송씨는 무단결근(외출) 등의 이유로 해고되었다. 같이 활동했던 다른 노사협의회 위원들은 정상근무 내지 월차 처리되었지만 그만 '무단'으로 처리되었다는 것. 그래서 그는 "표적 해고"라 주장한다.

이후 송씨는 복직 투쟁을 벌이다 회사로부터 명예훼손과 집시법 위반으로 2001년 구속되어 2003년 4월 만기 출소했다. 언양읍에서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는 박씨는 남편의 석방을 위해 투쟁에 나섰다. 책에는 평범한 한 주부에서 노동운동가로 변신한 그녀가 겪은 아픔과 분노 그리고 희망이 담겨 있다.

팔순 노모 "내 아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송수근씨가 구속되자 그의 어머니와 부인인 박미경씨가 삼성SDI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송수근씨가 구속되자 그의 어머니와 부인인 박미경씨가 삼성SDI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박미경
책에는 박씨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고통을 함께 겪었다고 나온다.


"지난 주 토요일 구치소에 은지(이들 부부의 딸)가 처음 면회를 갔다 왔습니다. 어젯밤 남편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아이가 아빠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던 중 갑자기 얼굴에 이불을 덮고 엎드린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우냐고 했더니, '아니야, 장난 친 거야'라며 씨익 웃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눈가를 보니 빨갛게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이었습니다"(2001년 12월 4일).

"1인 시위,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끝나고 나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픕니다. … 오늘 회사 노무관리 직원이 저에게 민사소송을 걸겠다고 하더군요. 대략 3500만원 정도가 될 것이고 가게도 가압류하고 제가 1인 시위를 하는 것도 한 번 할 때마다 벌금 50만원이라고 이야기했다는군요. … 삼성의 고소고발로 두 번이나 구속된 것도 환장할 노릇인데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습니다."(2002년 2월 7일).


"오늘은 팔순이 다 되신 시어머니께서 지팡이를 짚고 삼성SDI 앞으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내 아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나를 이렇게 애타게 만드는 거냐'고 역정을 내시면서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 시어머니는 정문 앞, 저는 후문 앞에서 하는데 회사 노무관리자가 배시시 웃으면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2002년 7월 23일)

"삼성SDI 벚꽃축제 하니 1인 시위 중단해 달라고?"

박미경씨가 방송차 위에 올라가 1인시위를 하고 있으며(위 사진), 송수근씨도 회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미경씨가 방송차 위에 올라가 1인시위를 하고 있으며(위 사진), 송수근씨도 회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박미경
박씨는 회사로부터 미행과 감시 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책에서 "해고 이후 계속된 미행, 감시, 구속 등 너무 억울하고 분통 터져 불면증에 시달리다 눈에 사자(死者)까지 보이고 환청에 시달려 결국은 우울증과 피해사고, 가슴 답답함, 신경쇠약 등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으며 화병으로 고생했다"고 말한다.

"오늘은 삼성SDI에서 벚꽃축제를 하는 날이니 1인 시위를 중단해 달라고 합니다. 남편은 명예훼손 등으로 철창 안에 갇혀 있고, 어린 딸은 아파서 힘들어 하고, 저 또한 과거에 남편이 고통받은 것처럼 힘든 날들을 지내면서 이대로 있다간 분통 터져 죽을 것 같아 겨우겨우 힘을 내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삼성에선 한 가정을 풍비박산 내놓고 자신들은 잔칫날이니 비켜달라고 하더군요."(2003년 4월 4일).

박미경씨는 "노동운동이란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피켓'이나 '1인시위'가 뭔지도 모르는 평범한 주부였다"면서 "그런데 뜻밖에 불어닥친 남편의 해고는 자신의 삶을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남편 해고의 부당함과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삼성SDI의 해고 노동자 탄압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남편의 홈페이지(www.antisdi.com)와 여러 인터넷 매체에 사진과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양심이 밥 먹여 주냐고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계 초일류기업이라는 삼성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무노조 경영'이라는 노사방침을 고수하며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삼성의 이면이 그녀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저자는 '양심에 따르는 고통'이란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다짐하고 있다.

"혹자는 저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양심이 밥 먹여 주냐? 가족을 생각해서 이제 그만해라.' 일부 사람들이 그래왔듯이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체 지나쳐야 할까요?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고 한 발짝 물러서면 정말 마음이 편해질까요? 그런 삶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아픈 남편을 대신해 오늘도 투쟁합니다.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길 간절히 기도하며."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

박미경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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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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