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없이 사는 놈이 99%인데, 왜 1%로 가냐"

삼성SDI 해고노동자 아내의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

등록 2007.02.24 14:48수정 2007.02.2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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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 yes24

골리앗과 다윗이 맞서서 누가 이겼나? 다윗이 이겼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삶 속에서는 그런 일들이 적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다윗이 이기는 것은 겨우 1%도 안 된다. 거대한 자금력과 뛰어난 정보 수집력을 동원해 회유와 압박을 가하면 어떤 사람이 나가 떨어지지 않겠는가? 거기에 양심을 지키며 꿋꿋하게 뜻을 세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삼성SDI의 송수근씨는 달랐다. 99%의 사람들이 양심을 잃은 채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세상의 세태와 맞서고 있다. 거대한 공룡기업 삼성 앞에서 개미처럼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는 책에 기록돼 있다. 물론 그를 대신해 그의 아내 박미경씨가 쓴 것이다.


1998년 당시 삼성SDI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일하던 그는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알아보러 몇 차례 외출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단결근으로 낙인찍혔고, 곧바로 해고 통보를 받게 되었다. 해고 후 집회에서 부당하다는 주장을 계속 했고, 그것이 삼성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어 두 번이나 구속되었다. 8년의 세월 동안 거의 2년에 달하는 삶을 감옥 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놀라운 것은 해고 이후, 집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 밤에 그는 불량배들에게 납치를 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불량배들이 까닭 없이 그 짓을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삼성의 부하직원들에게 매수당한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송수근을 경주로 끌고 가서 콘도에 감금시킨 채 폭행과 협박을 일삼았던 것이다.

@BRI@어디 그 뿐이던가? 송수근씨를 비롯하여 몇 몇 해고자들의 모임이 있던 날은 삼성에서 모든 통신장비를 동원하여 위치를 추적해 냈고, 완벽한 미행까지 감행했다. 그야말로 옛 안기부 시절의 도청장치와 하나도 다르지 않는 수법이었으니 어찌 혀를 내두르지 않겠는가?

그가 감옥에 들어간 이후 그를 대신한 1인 시위는 그의 아내가 연이어 맡았다. 물론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은 생계 사업인 비디오 가게를 꾸려나가야 했고, 10살 된 딸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래도 참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참기 힘들었던 것은 삼성 앞에서 시위를 할 때 당한 치욕이었다.

"소렌토 차량에 탄 삼성 직원 두 명이 능글능글 웃으면서 여러 번 가속기를 밟아대며 죽이려고 했습니다. 퇴근차량이 즐비한 상황에서 사고가 날 순간이었는데도 지켜보던 십 여 명의 삼성 노무팀들은 어느 누구 하나 와서 도와주거나 제지하기는커녕 수수방관만 하고 있더군요."(42쪽)


삼성은 그야말로 창업주의 유훈 아래 무노조경영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그 까닭에 그들의 노무관리 수법은 가히 치를 떨게 만든다. 노동자 개개인의 동태를 샅샅이 꿰고 있는 놀라운 정보 수집력은 물론이고 효과적인 노동통제를 위해 납치와 감금, 회유, 협박까지도 불사하고 있다. 거기에 친인척은 물론이고 학교선후배와 고향선후배까지 모두 동원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으니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과연 그들의 회유와 협박 앞에 맞설 위인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에 맡기며 사는 게 가정과 안위를 지키는 방법이라 여긴다.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서는 이 세상과 사회가 나은 세상이 될 수 없기에, 그녀는 오늘도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1%의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통해 이 사회와 일터는 분명 새로워 질 것을 내다보기 때문이다.


"지난 MBC <시사매거진 2580〉방송에서 삼성의 어느 관리자가 휴대폰 위치추적 건으로 '성명불상자'를 상대로 고소한 한 노동자에게 '세태에 묻어가라. 양심 없이 세상사는 놈이 99%인데, 왜 1%로 가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사람이라면 양심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145쪽)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

박미경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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