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망각의 기계인가

[노순택의 사진 한 장, 생각 잠깐 22] 2007년 2월, 겨울 망월동에서....

등록 2007.02.05 01:43수정 2007.07.1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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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배. 1962.9.20-1980.5.21 좌경부 총상. 열아홉 푸른 꿈은 뜨거운 총탄 앞에 녹아내렸다. 망각의 햇살은 그의 영정사진을 녹여버렸고, 망각으로 무장한 괴물들은 그 죽음의 진실에 오물을 끼얹는다.
박인배. 1962.9.20-1980.5.21 좌경부 총상. 열아홉 푸른 꿈은 뜨거운 총탄 앞에 녹아내렸다. 망각의 햇살은 그의 영정사진을 녹여버렸고, 망각으로 무장한 괴물들은 그 죽음의 진실에 오물을 끼얹는다.노순택

시간은 흘러간다.

너무 아쉬워 붙잡고만 싶은 시간도, 두려움과 절망으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도, 흘러가지 않는 시간은 없다. 시간에는 감정이 없다. 가면 그뿐이다. 거슬러 갈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느낀다. 저 시간들을, 이 시간들을, 그 시간들을….

물리적인 시간의 양과 질은 누구에게나 같아도, 상대적인 시간의 양과 질은 그 누구에게도 다르다. 그래서 '재는' 시간과 '느끼는' 시간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오월의 그날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흡혈귀들의 시간도 날이 밝자 과거의 일이 되었다. 흡혈귀들은 그들이 누렸던 영광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투덜거렸으리라. 그들에겐 피를 빨아야 할 시간이 더 필요했으리라. 그래도 날은 밝았다. 흡혈귀들의 시간을 끝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흡혈귀들에게 촌음 같았을 그 시간은, 피 흘린 이들에겐 억겁의 시간이었다.

오월의 그 시간, 멋모르고 놀던 세상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시간은 흘러갔다. 너무 아쉬워 붙잡고만 싶은 시간도, 두려움과 절망으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도, 흘러가지 않는 시간은 없었다.

그날의 폭도들에게도, 어설픈 영광이 찾아왔다.
그날의 폭도들은 이제, 민주열사라 불린다.
빨갱이 가족들은, 민주화운동 유가족이 되었다.
오월의 그날은, 역사의 품격을 갖추었다.
누군가 나타나, 이제는 그 아픔을 잊자고, 모든 걸 덮자고 점잖게 타이른다.
하긴,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가. 날 밝은 지가 언젠데.


어느새 그날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과거지향적인 짓인 양 치부되었다.

허나, 광주의 시간이 정말 끝난걸까?

2006년 오월, 대추리로 출동한 일단의 군인들은 늙은 농부들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포승줄로 옭아맸다. 침묵과 방조로 27년 전의 학살에 동참했던 아메리카, 그들의 전쟁기지를 지어주기 위해서였다. 군경합동으로 기획된 이날의 작전명은 '여명의 황새울'이었다. 26년 전 빛고을을 피로 물들였던 자들의 후예다운 작전 명명법 아닌가. 금남로를 피로 물들였던 '화려한 휴가'는 그렇게 부활했다.

하여, 광주는 전라남도 광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오월은 1980년의 그날로 종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날의 폭도들에게 찾아온 것은, 어설픈 영광일 뿐이다.

2006년 시월, 바로 지금,

대한민국 보수의 대표주자를 자청하는 김용갑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지난 6·15 대축전 행사가 벌어진 2박3일간 광주는 완전히 해방구였다, 주체사상 선전홍보물이 거리에 돌아다녔다, 그러나 공권력은 없었다"고 자랑스럽게 폭로했다. 김정일 추종사상과 반미의식을 퍼뜨리는 본 고장이, 바로 광주라는 얘기였다. 단어만 몇 개 바꾸면 27년 전 오월의 흡혈귀들과 그를 따르는 찌라시들이 떠벌렸던 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2006년 십일월, 바로 지금,

한국농담을 자처하는 <한국논단> 이도형 대표는 탈북자 임천용의 인터뷰를 대서특필했다. 요점은 이렇다. 오월의 항쟁과 살육은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부대가 개입해 저지른 것이었다! 남한에서 벌어진 모든 극렬사태는 북한의 공작결과였다! 농담을 그리 진담처럼 하니, 씨알이 먹히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라디오에서는 전두환의 아들과 초등학생 손자의 계좌로 의문의 뭉칫돈 41억원이 입금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뿐이랴,

2007년 이월, 바로 지금,

살인귀의 고향에서는 살육을 기념하는 공원이 '시민의 이름으로!' 조성되고 있다.

귀를 열자니 귀가 더러워지고, 입을 열자니 구역질이 솟구치는, 이 공감각적이며, 초현실적이고, 몰역사적인 수작들을 대체 무엇이라 불러주어야 할까.

누군가는 잊으려 몸부림치지만, 누군가는 뼛속까지 우려먹고 싶은 역사의 기억

그것이 오월의 기억은 아닐까.

반복되는 악행은 망각에 기초한다. 이럴 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망각이 보기 좋게 공조한다. 다만 가해자는 자신이 잊고 싶은 것만 골라 잊는 선택적 망각의 자세를 취한다.

결국 망각인가.

결코 잊지 않으리라던 피눈물은 말라버렸고, 야비한 비웃음에는 아직도 더러운 침이 고여 있다.

21세기 망월동은 망각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폐허의 스펙터클이기도 했다. 스산한 옛 망월동도, 너무 다듬은 새 망월동도.

우리는 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병폐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끈질기게 지속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또한 역사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 해석투쟁의 장이라지만, 이렇듯 천박하게 굴어도 좋은 것일까.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조롱하고, 스스로 괴물이기를 자임해도 좋은 것일까. 괴물과 벌이는 해석투쟁은 고단하며, 자괴적이다. 그리하여 냉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다 지난 일이고, 남의 일일 뿐이다.

"사진은 단지 죽어 있는 것을 전달해 줄 따름이다. (Odilon Redon)"

죽은 자는, 박인배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얼굴로 전달해 줄 따름이다. 오랜 세월에 녹아버린 그의 얼굴을 담은, 사진의 몫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누구의 몫인가.

꽃아 꽃아, 눈물꽃아!
인배는 그저 가난이 서러운 어린 노동자였다

어김업이 올해도 5월은 오고 말았다. 피눈물 나던 기억과 함께 뭄서리치게 서러운 5월은 이렇게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지만, 한번 떠난 인배는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가 없다.

인배는 자개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일을 해서 어머니를 돕겠다며 이일저일 닥치는 대로 하더니 결국 인배가 택한 것은 자개기술을 배우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가난에는 치를 떨었던 아이였다. 그 가난으로 해서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 남남이 되었고, 인배는 이모집, 외갓집을 오가며 외롭고 서글픈 날들을 보냈었다. 어린 인배는 스스로 상처를 내면서 외롭게 자랐다. 파출부로, 행상으로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를 도와 함께 행복을 키울 수 있는 길은 제가 돈을 버는 것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인배는 스스로 책가방을 수채구멍에 던져 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외삼촌에게 갖은 야단을 들었지만 인배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로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한 것이다. 서울에 올라가 자개기술을 배운 다시 광주로 내려와 1980년 4월에 월산동 신우아파트 앞 가정집 장롱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5월 24일이면 첫 월급을 받는 날이었다. 공장에서 숙식을 하던 인배는 토요일이면 집에 와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이면 다시 공장으로 들어가 고된 일주일을 보냈다.

5월 17일은 일요일이었다. 토요일에 집에 와서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낸 인배는 공장에 들어간다고 집에서 나갔다. 그런데, 5월 22일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인배가 총에 맞아 사망했고, 시신은 적십자 병원에 있다'는 쪽지를 들고 찾아온 동사무소 직원은 어머니를 직접 만나지 않고 인배의 동생에게 쪽지를 건네주었다.

동생은 그 쪽지를 직접 어머니께 보여주지 못했다. 계림파출소 앞에서 가구점을 하던 외삼촌과 숙모가 시위가 잦은 자신들의 집이 위험하다 싶어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 있었기에 동생은 숙모에게 쪽지를 건네주었다. 숙모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차마 입을 떼지 못했고, 아무것도 눈치 챌 수 없었던 어머니는 무심히 재촉했을 뿐이다.

"성님, 인배가…. 인배가 죽어부렀는갑서라. 시방 적십자병원에 있다는디 죽어서 시체가 있다는 소린 것 같어라우."

공장에 간다던 인배가 시위에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21일 금남로에서 목에 총을 맞고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한 것만은 분명했다. 어머니는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어느새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지만 당장 달려가 봐야 했다. 인배의 삼촌과 집에서 나와 돌고개를 지날 쯤 정신없이 길을 재촉하는 어머니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줌마, 어디 가시오? 시방 시내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라. 가지 마시게라. 뭔 일인지는 몰라도 어두워지믄 아줌마도 위험해라."

계엄군이 광주에서 물러난 뒷날임에도 돌고개에서 만난 여학생은 어머니를 더 나아갈 수 없게 했다. 무턱대고 갈 수가 없었던 어머니와 삼촌은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

그 밤에 다시 총성이 울렸다. 화정동 통합병원을 장악하고 시민군과 대치상태에 있던 계엄군이 쏘아대는 총소리인 듯 싶었다. 새벽에 울리는 총소리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 했다. 죽어있다는 아들이 걱정되었다. 설사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어머니는 날도 밝기 전에 인배의 삼촌을 깨워 집을 나섰다.

적십자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인배는 없었다. 다시 전대병원으로 향했다. 영안실에는 시신들이 함부로 방치되어 있었다. 짐짝처럼 아무잡이로 포개져 있는 시신을 보는순간 어머니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저 안에 우리 인배가 있다는 소린가!'

혹시라도 그 안에 아들이 널부러져 있을 것 같아서, 그 아들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던 어머니가 먼저 실신을 했지만 인배는 그곳에도 없었다.

"내가 혼자 찾아볼랑게 누나는 그냥 집에 있으시오. 그러다가 누나까지 어떻게 돼 불까봐 더 걱정이요."

끔찍한 시신들에 정신을 놓아버렸던 어머니를 달래고 외삼촌 혼자 인배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어머니도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정신을 잃는다 해도 인배의 시신을 확인해야 했다. 어느 병원에도 없던 인배는 24일 도청 지하실에서 발견되었다. 관 위에 '박이배'라고 씌어진 팻말이 있었고, 외삼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 뚜껑을 열었다. 거기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는 조카가 있었다.

목을 관통해간 시신은 얼굴을 겨우 알아볼 수 있었고,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관 안에도 피가 흥건히 고여 굳어가고 있었다.

아들의 시신을 앞에 두고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져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배 곯아가면서, 눈치 봐가면서 이집저집 전전했던 인배의 어린 날들이 어머니의 눈물 속에 하나하나 펼쳐지고 있었다. 대야에 물을 퍼 피묻은 인배의 몸을 벅벅 문질러 닦았다. 눈물에 씻기는 것인지, 물에 씻기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인배의 몸에서 피딱지가 떨어져 나갔다. 어머니는 양동시장으로 달려가 옷을 사다 인배에게 입혔다.

아들을 망월동에 묻고 돌아온 어머니 이금자 씨는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 매일 인배의 외삼촌만 졸랐다. 버스 편도 없는 망월동에 혼자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사람이 울다가 진을 다 빼면서도 망월동을 오가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이러다가 누이마저 잃는 게 아닐까 싶어 외삼촌은 모진 소리도 해야 했다.

1981년 유족회에 가입한 뒤 어머니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살아남은 가족이 죽기 전에 이루어야만 할 소원이었다. 거리에서 낮과 밤을 보내기 일쑤였다. 광주학살의 책임자들이 광주를 방문할 때면 며칠이고 형사들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생활은 또 생활대로 버거웠다.

…(중략)…그저 살아있는 목숨이라 하루하루 살아간다. 공공근로를 오가는 길목이 그대로 눈물이다. 여인으로 기구한 당신의 인생이 서럽고, 피지도 못한 자식을 허망하게 보낸 어머니로서의 삶이 한스러워서 혼자 걷는 길목마다 눈물이 밴다. 곧 첫 월급을 받아서 어머니 맛난 것 사드리겠다고 순진한 웃음을 흘리던 아들의 모습이 어머니의 눈물에 그대로 담겨 피어난다. 어머니의 눈에 꽃이 피어난다. 눈물꽃이 피어난다.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중에서
#노순택 #망월동 #사진한장 #박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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