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의 중세 도시 탈린에 도착하다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20] 에스토니아 탈린

등록 2007.02.06 11:32수정 2007.02.0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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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버스에서 본 한가로운 에스토니아의 들판

버스에서 본 한가로운 에스토니아의 들판 ⓒ 강병구

탈린에서 존을 또 만나다

러시아 국경을 넘자마자 에스토니아 검문소였다. 하긴 국경이 맞닿아있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좀처럼 육로로 국경을 넘을 일이 없는 한국 사람인 나에게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버스에 올라선 에스토니아 군인들은 좀 전의 러시아 그들과는 달랐다. 우선 기관총은 물론 권총도 보이지 않았고, 친절하게 웃으며 여권만 거둬갈 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라거나, 고압적인 자세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버스에서 한 30여분을 기다리자, 다시 버스로 올라온 군인들이 일일이 이름을 불러가며 여권을 돌려주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게는 여권을 돌려주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싱긋 웃기도 했다. 국경 출입국심사만으로도 내가 러시아를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버스는 다시 달리고 달렸다. 아침 9시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가 다 되어가도록 달리고 있었다. 물론 국경통과하며 총 3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가깝다길래 얼마 안 가도 나오겠지 하는 내 예상이 완전 빗나간 것이었다. 백야가 시작된 북국의 땅이라 해가 질 일은 없었지만, 어느덧 8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국경을 지나고도 벌써 3시간여를 달려가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에스토니아 탈린은 영토의 북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항구 도시였다. 수도라기에 영토의 중간쯤이 아닐까했지만, 지도를 미리 살펴보지 않은 내 착각일 뿐이었다.

그러다 한 시간여가 더 흘렀을까. 그냥 보아도 대충 대도시에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만한 풍경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금방 버스 터미널에 내려, 드디어 탈린에 도착했다.


a 에스토니아에서 본 우리나라 기업 상표

에스토니아에서 본 우리나라 기업 상표 ⓒ 강병구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탈린에 대한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도착한 터라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로 어떻게 가야할지, 또 여기가 어디쯤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기차역에서 도시여행을 출발한 터라, 대부분 시내 중심가가 그리 멀지 않았지만, 한눈에 보아도 탈린의 버스터미널은 시외각임이 분명했다.

'어떡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는 얼굴이 보였다. 평생 처음 와보는 곳에서 아는 사람이라……. 그도 나를 알아보더니 "헤이, BK!"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다름 아닌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오던 기차에서 만난 영국인 존이었다. 몇 번을 알려줘도 발음을 제대로 못하기에, 그에게 내 이름을 'BK'로 알려 줬는데,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나도 인사를 하고, 난감해 하는 내 상황을 못난 영어로 떠듬떠듬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도 러시아 여행을 마치고 지금 막 탈린에 도착한 것이라며 시내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존이 잡은 택시에 동승하여, 30분여를 서성이던 버스터미널을 빠져나와 탈린의 시가지로 갈 수 있었다.

이름 그대로인 '올드 타운'

a 탈린 구시가 중심의 모습

탈린 구시가 중심의 모습 ⓒ 강병구

존과 함께 탄 택시가 10여분 만에 시내에 도착하자,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존은 좋은 여행이 되라는 말과 함께 나를 시내 중심가에 내려주고는 자신이 찾는 숙소로 향했다. 여행자가 어려움에 닥치면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나타나는 도움의 손길이랄까? 이후로도 종종 내가 버벅거릴 때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도와주는 사람들, 동행해줄 사람들이 나타났다.

탈린의 관광 핵심이 되는 구시가(Old Town)은 말 그대로 올드 타운이었다. 중세의 도시가 이렇게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았던 중세풍의 건물들이 그대로 도시를 이루고 있었고,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바닥은 돌로 깔려있었다.

물론 이후로도 유럽 여러 도시들의 구시가들이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돌로 포장된 도로와 오래된 건물들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도시 모습은 처음 보는 장면인데다가, 이후에 보게 된 유럽의 그런 도시들과 비교해 봐도 탈린의 구시가는 정말 아름답고 특별한 곳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탈린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중세풍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과 이제 소개할 여러 인상적인 장면들로 특별한 느낌을 받았기에 여행 후 지금도 정말 특별한 곳이라는 기억을 갖고 있다. 돌아온 지금도 최고의 여행지로 꼽을 만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탈린은 북유럽과 비교해 특별히 싼 물가와 아름다운 도시 모양으로 북구의 떠오르는 여행지라고 한다.

여러 인상적인 모습들도 많았지만 올드 타운 중심가에 있는 'Old Hanza'라는 음식점은 중세풍의 건물에 중세의상을 입은 종업원들로 특히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올드 타운 전체가 세계사 시간에 배우 듯 성곽으로 둘러쳐져 있고, 성곽 밑에는 인공으로 판 듯 한 물길이 있는 점 등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올드 타운 시내 중심가의 한 오래된 건물에 있는 호스텔에 숙소를 잡고 본격적인 탈린 여행을 시작했다.

유럽 여행을 실감하다

a 탈린 올드 타운의 성벽 외각 모습

탈린 올드 타운의 성벽 외각 모습 ⓒ 강병구

여행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호스텔에 숙소를 잡았다. 지금까지는 좀 값을 못하는 호텔이나,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있었지만, 여행을 왔다면 호스텔에서 자는 것이 진짜가 아닐까. 러시아에선 불가능했던 호스텔 숙박이 이곳에선 가능해진 것이다.

또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가능해진 것도 러시아와는 달라진 점이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땅이어서 여전히 러시아 말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나이 드신 분들은 여전히 러시아어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독립 이후 교육받은 젊은 사람들은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관광산업을 육성하려는 에스토니아의 산업 정책에 따라 영어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도 한다.

여하튼 여행자로서 러시아라는 특별한 곳을 여행하며 느꼈던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이젠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불어 말에 어느 정도 불편함이 사라지니, 행동하기도 더 편해졌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물건 사는 일도 부담이 없어졌고, 뭘 사먹는데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맥도날드 등의 익숙한 패스트푸드점(여길 시작으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지겹게 먹게 된)도 그렇고,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사람들까지, 러시아에서 느꼈던 여행의 부담감은 많이 사라졌다. 마음이 많이 편해지고 이제야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편한 마음으로 호스텔에 짐을 풀고, 여행 후 처음으로 관광안내소를 찾아갔다. 도시에 도착하면 관광정보를 알려주는 사무실을 찾아간다니, 여행 후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호스텔에서 알려준 사무실을 찾아갔다. 구시가 중심에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엇!' 문이 닫혀있다.

'아직 열려있을 시간인데?… 어라, 탈린에서도 힘든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a 탈린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맥도날드의 햄버거

탈린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맥도날드의 햄버거 ⓒ 강병구


[여행팁 14] 탈린의 바나 톰(VANA TOM) 호스텔

이제부터 소개할 북유럽 여행 동안 대부분 숙소는 호스텔에 잡았다. 탈린을 시작으로 가본 북유럽의 호스텔들은 싸고, 편하고, 시설도 좋았다. 그래서 앞으로 각 도시에서 직접 머물렀던 숙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겠다.

탈린의 구시가 중심가에 있는 바나톰 호스텔은 국내의 몇몇 북유럽 여행서에도 소개가 된 유명한 곳이다. 시설은 특별히 좋지는 않지만, 주방을 이용할 수 있고 샤워부스가 많은 등, 여행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정도이다. 아침은 제공하지 않는데, 주방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 직접 장을 봐서 해먹으면 된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가격은 하루에 우리 돈으로 10000원이 좀 넘는 정도로 저렴하다. 인근의 핀란드나, 에스토니아의 학생 단체 여행객들이 묶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시끄러울 수 있다는 것은 미리 염두해두시길. www.hostel.ee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2월 11일(일요일)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2월 11일(일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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