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면 미운 짓만, 고와하면 고운 태가 보인다

[달내일기 93] 풍산개 두 마리를 키우면서 깨닫는 교훈

등록 2007.02.12 11:35수정 2007.02.1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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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풍산개 태백이의 모습

풍산개 태백이의 모습 ⓒ 정판수

아침마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풍산개 두 마리를 데리고 가 변을 보게 하는 일이다. 녀석들을 몰고 저쪽 들머리 끝에 고리를 만들어 둔 곳에 가 묶어두었다 볼일 보고 나면 데려오는 이 일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하다. 고작 해야 십여 분밖에 안 걸리니까.


그래도 게으른 성격 탓인지 그게 귀찮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 녀석은 마당에 싸버리고, 창문을 열면 그 냄새가 방안까지 들어올 테고. 그러니 매일 매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하기 싫은 그 일을 더 하기 싫게 만드는 일이 생겨났다. 바로 강산이 녀석 때문이다. 두 녀석 중 태백이는 풍산개 순종인 데 반하여 강산이는 풍산개와 진돗개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이다. 단지 순종과 잡종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녀석은 내가 미워하는 짓만 골라서 한다.

a 작년 강산이가 낳은 새끼들의 귀여운 한 때

작년 강산이가 낳은 새끼들의 귀여운 한 때 ⓒ 정판수

녀석은 몇 달 전에 처음 배신(?)을 했다. 태어난 지 여덟 달이 지나지 않아 첫 생리할 때 아무래도 아직 어려 새끼 낳아 키우기에는 이르다 판단해 낮에는 그대로 뒀으나 밤에는 다른 수컷의 출입을 막으려고 테라스 밑에 울타리를 친 뒤 며칠 넣어두었다.

태백이 경우에도 똑같이 그렇게 하여 사고(?)를 예방한 경험이 있었기에 마음 놓고 있었는데 수컷이 찾아온 게 아니라 녀석이 수컷을 찾아 철조망을 뚫고 뛰쳐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두 달 뒤 새끼를 낳았다. 물론 그 새끼들이야 귀여웠지만.

다음으로 강산이 녀석은 태백이와 피터지게 싸운다. 보통 한 집에서 생활하는 개들은 서열 정하기가 끝나면 우두머리에게 복종한다는데 그게 처음 한동안은 통했다. 나이로도 한 살 더 많고 덩치도 두 배나 되니 강산이가 태백이에게 복종했다.


a 풍산개 강산이의 모습

풍산개 강산이의 모습 ⓒ 정판수

그런데 강산이가 먼저 새끼를 낳았을 때 태백이가 제 집 근처로 어슬렁거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제 새끼를 해친다고 여겼는지 강산이가 달려들었다. 그때 내가 실수를 했다. 내 딴에는 새끼 낳은 어미를 보호하느라 강산이 대신 태백이를 붙잡았다. 그 순간 목을 물고 놔주지 않는 게 아닌가.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심심하면 강산이가 태백이에게 대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싸우면 대충 싸우다 마는 게 아니라 한 녀석이 초죽음이 될 때까지 싸운다는 점이다. 그 후유증은 심각했다. 피범벅이 됨은 물론 귀가 찢어지고 목덜미가 뚫리기까지 하니.


강산이가 미운 이유는 이것들뿐만이 아니다. 마당의 땅을 마구 판다. 앞발로 땅을 파헤치는 속도가 두더지 못지않다. 파헤쳐놓을 때마다 다시 메워야 했고. 또 제가 눈 똥을 발로 다 으깨어놓는다. 그냥 그대로 두면 치우기도 좋은데 으깨어놓으니 치울 때마다 욕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간혹 사료가 떨어지면 통을 박박 긁는다. 한 밤중에 사료통 긁는 소리에 잠을 깬 적이 한두 번 아니다. 물론 태백이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녀석의 미운 점을 이렇게 나열해가면 아마도 몇 쪽이나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도 내가 미워하니까 아내가 오늘 아침 넌지시 이른다. "어차피 키울 수밖에 없는 이상 좀 이뻐해 보라"고. 그에 "이쁜 구석이 있어야 이뻐하지"라고 답하자, "가만히 보면 이쁜 구석이 보일 거예요" 한다.

a 사람이 오자 부리나케 제 집으로 달아나는 태백

사람이 오자 부리나케 제 집으로 달아나는 태백 ⓒ 정판수

녀석에게 이쁜 구석이라니? 뺑덕어미에게 착한 구석을 찾으라는 말과 같다. 한 군데도 이쁜 구석이 없는 녀석에게 말이다. 이렇게 단정하다가 가만 돌려 찬찬히 생각하니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태백이는 다른 이가 우리집으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맹렬히 짖어댄다. 그러나 우리집으로 서는 순간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는 꼭꼭 숨는다. 사람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여 강산이는 끝까지 짖는다.

그리고 태백이는 먹을 것을 주면 가리는 게 많은 데 비해 강산이는 아무 거나 잘 먹는다. 또 우리 부부가 외출했다가 집에 오면 둘 다 반기나 강산이가 더 야단이다. 개가 애교 부리는 맛에 개 키운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듯.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니 미운 구석 말고 이쁜 면도 참으로 많다. 그런데 왜 나는 늘 미운 구석만 보았을까?

a 지난 가을 두 녀석과 다정히 산책할 때, 이때만 해도 두 녀석 다 이쁘게 보였다.

지난 가을 두 녀석과 다정히 산책할 때, 이때만 해도 두 녀석 다 이쁘게 보였다. ⓒ 정판수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게 직업이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녀석들은 지각이 잦고, 수업 시간에 산만하고, 친구와 싸움을 하여 일을 벌이고, 무단결석도 하는 등 눈에 벗어난 짓만 일부러 골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교사들이 다들 인정하는 일이지만 졸업 후 기억에 남고 또 찾아오는 이들은 모범생보다 그렇게 말썽을 많이 피운 애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애들은 학교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나 사회에서는 훨씬 나은 평가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도 솔직히 걔들에 대해서는 편견을 떨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결국 미워하면 미운 짓만 보이고, 고와하면 고운 태가 보인다는 걸 잘 알면서도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내가 오늘따라 괜시리 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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