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도 안주는 비법, 사위에게 아낌없이 주다

장모의 갈비비법 이어받은 초보 사장의 창업이야기

등록 2007.02.12 11:49수정 2007.02.1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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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실직한 사위 김여훈씨에게 장모 임경순씨가 갈비비법을 가르치고 있다.

실직한 사위 김여훈씨에게 장모 임경순씨가 갈비비법을 가르치고 있다. ⓒ 전득렬

지난 1월 초 경북 구미 형곡동에 한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오직 '갈비' 한 가지 메뉴만으로 경북 영주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임경순(64)씨가 사위 김여훈(48)씨를 훈련(?)시켜 창업한 곳이다.

이곳은 '며느리도 안가르쳐 준다는 음식비법'을 사위에게 전수하며 가업 대물림을 결정한 전통 있는 음식점.

영주에서는 워낙 소문이 난 곳이라 소백산 등산객들에게 빠르게 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갈비 맛을 보러 오는 손님들이 많은 곳이다. 그 맛 그대로를 구미에 옮겨 놓았지만 '영주의 명성'이 구미에서도 통할까 적잖이 걱정도 된다고 한다.

사위에게 모든 비법을 가르치다

"딸도 자식이고 사위도 자식이죠. 음식점이 잘 돼서 사위가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이 장모의 희망입니다. 가진 게 없어 자식들에게 다른 것은 물려줄 게 없습니다. 하지만 20여 년간 경북 영주에서 성공한 갈비비법을 사위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임씨는 "20여년 전 먹고살기 위해 조그만 음식점을 시작했는데 손맛이 좋아 소문이 났고 줄서서 기다려야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대박식당'이 됐다"고 설명한다. 한자리에서 내리 20년을 돼지갈비와 소등심 요리만 한 임씨는 "대박비결은 좋은 재료와 비법이 담긴 양념, 그리고 날아가는 향까지 잡아주는 숯불에 있다"고 말했다.

영주의 소백산 자락의 기를 머금고 자란 소와 돼지만 사용하며 마늘 양파 촌간장 등 각종 신선재료로 만든 양념으로 숙성한 비법이 담긴 양념소스가 고기 맛을 결정한다고 한다. 또 갈비고유의 맛은 숯불에 구워야 진정한 맛을 내기 때문에 귀찮고 힘들어도 숯불을 고집한다고 한다.


실직과 장모님의 부르심, 그리고 창업

a 영주에서 직접 공급받아 사용하는 육질좋은 고기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영주에서 직접 공급받아 사용하는 육질좋은 고기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 전득렬

이런 20여년의 노하우를 며느리를 따돌리고(?) 단번에 전수 받은 '억세게 운 좋은'(?) 사위 김여훈씨는 태어나서 처음 식당을 운영하는 초보사장. 김씨는 구미 오리온전기에서 17년 간을 근무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평생직장으로 여겼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희망퇴직을 신청해야 했고, 한순간에 실직자 신세가 되었다. 이후 중소기업근무와 막노동 등 이것 저것 안 해 본 게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가장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첫째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또 고등학생이 되는 둘째 아들을 공부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보신 장모님께서 영주의 식당으로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갈비와 소등심을 숯불에 얹으면서 제게 말씀하셨죠. 김서방이 늘 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는 이 음식을 자네가 한번 만들어 보라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는 김씨. 장모님이 사위에게 만들어 주시는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지만 그는 다시 신입사원이 된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재료손질부터 음식 맛을 내는 비법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배워 나갔고 구미에 문을 연 것이다.

장모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곳의 숯불 갈비맛과 소등심 맛의 공통점은 부드러움에 있다. 흔히 말하는 '입에 넣자마자 녹는다'는 표현은 애교에 불과할 정도. 껌처럼 계속 씹어 결국 뱉어야했던 갈비 맛의 슬픈 추억이 있는 사람은 이곳의 고기 맛을 보면 반할지도 모른다.

돼지갈비는 양념에 24시간 숙성해서 나온다. 고기를 담은 접시에는 양념 국물이 전혀 배어 나오지 않는 것도 특징. 때문에 1인분에 200g하는 돼지 갈비의 양은 넉넉하고 푸짐하다. 전통 석쇠 위에서 지글 지글 구워질 때 나는 향기는 고향의 정겨움 마저 느껴진다.

소등심 맛도 뛰어나긴 마찬가지. 귀한 순 한우 영주 쇠고기를 저렴하고 넉넉하게 맛 볼 수 있는 것도 식객들에게는 행운이다. 수많은 식당에서 수많은 소등심 요리를 만들지만 제대로 맛을 내는 곳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곳은 '장모 사랑은 사위 사랑'이라는 말이 정답게 느껴지는 곳이다. "잘 웃지 않고 무뚝뚝한 사위가 걱정"이라며 손님 맞는 법을 사위에게 연신 설명하며 가르쳐주는 장모님의 '코치'가 웃음 짓게 한다.

"영주의 가게는 며느리에게 잠시 맡겨 놓았다며, 한 달음에 구미로 달려오신 장모님이 고맙기만 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점을 운영해 오신 장모님의 철학을 잊지 않고 이어가겠습니다."

"두 아들 잘 키우며 장모님이 오히려 실망하시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는 김여훈씨. 그의 분주한 손놀림과 석쇠 위로 피어오르는 갈비의 맛있는 연기가 더욱 코끝에 와 닿는 것은 장모와 사위의 따듯함과 가족의 정도 함께 피어오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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