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거리투쟁', 누구 위한 건가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 꼭지 조간신문 리뷰

등록 2007.02.12 15:38수정 2007.07.09 15:01
0
원고료로 응원
a 11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 의료법개정안 반대 궐기대회에 나온 의사들.

11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 의료법개정안 반대 궐기대회에 나온 의사들. ⓒ 오마이뉴스 이민정

의료법 개정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주장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따가운 사회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법 개정 반발 의사들 거리로 나선 속사정'을 따져 본 김영훈 <중앙일보> 기자의 '이슈추적'은 오랜만에 신문기사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잘 짜여진 신문 기사 하나는 방송의 1시간짜리 '심층기획'에 못지않다. 압축적이고 효율적이다.

이 기사는 얼핏 큰 제목(치열해진 경쟁…건보심사까지 깐깐)만 보면 <중앙일보>의 친시장적인 경향이 그대로 반영된 기사 같다.

그러나 "정부 통제로 진료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의사들의 주장과 "선진국에서는 더 까다롭다"는 전문가의 말을 공평하게 기사의 작은 제목으로 뽑은 것이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증표로 의원수와 의사수 증가 추이를 도표로 제시하면서, 그러나 인구 천명당 의사수를 놓고 보았을 때 한국의 의사수가 터무니없이 작다는 또 다른 도표의 제시는 이 기사가 결코 어느 한쪽에 쏠려 있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의사들의 주장, 과연 타당할까

@BRI@'의사의 투약권 제약'과 '간호사의 간호진단 허용'을 명분으로 거리로 뛰쳐나간 의사들의 속사정은 과연 무엇인지 김영훈 기자의 기사를 따라가 보자.

의사들이 거리로 뛰쳐나간 이면에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정부의 관리가 강해지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김 기자의 진단이다. 물론 의사들이 털어놓은 속사정일 것이다.


김 기자는 의사들의 이런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를 하나하나 따져 묻고 있다.

첫째, 까다로운 의료비 심사.


의사들은 건강보험 심사지침이 무려 1124개 항목에 이르는 등 의료비 심사가 너무 까다롭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고령화와 만성 질환자의 증가로 의료비 지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선 불가피하다. 한번 진료하면 선진국에서는 1~2개의 약을 처방하지만 우리처럼 평균 3~4개의 약을 처방하는 '과잉진료'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선진국은? 더욱 까다롭다. 영국에선 정부가 병원을 직접 통제하고, 제약회사의 이익률까지 통제한다. 독일은 보험조합간 경쟁체제가 확산돼 혜택이 많은 조합에 환자가 몰리기 때문에 환자를 더 받으려면 의사들도 조합통제를 따라야 한다.

그럼 미국에선? 민간보험이 위주인 플로리다주 민간보험이 적용되는 약은 2000종목이 채 안 된다. 우리는 2만개가 넘는다. 김 기자는 쓰지 않았지만, 거기에 보험료까지 비교한다면 미국은 더 이상 비교대상이 아니다(미국의 민간보험료는 가장 기본적인 게 우리의 십수 배가 넘는다).

둘째 치열해진 경쟁.

90년 4만명이던 의사 수는 15년만에 두 배로 늘었다. 그러다 보니 생활고로 자살하는 의사도 나왔다. "정부에서 받을 것은 없고, 권한은 계속 축소될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경쟁에 따른 불안감으로 돈 되는 진료에 매달리면서 느끼는 자괴감도 크다"는 의사들의 비교적 솔직한 심경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의사만은 아니라는 것. 건강보험 적자로 2002년 이후 정부가 정하는 진료비가 물가만큼 오르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좀 길게 보면 사정이 다르다. 77년 이후 2005년까지 수가는 7.8배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 6.1배를 웃도는 것이다.

"오히려 이번 개정시안에는 병원의 영리를 위한 규정이 지나칠 정도로 반영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서일까? 대한병원협회는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의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속사정에 대한 이 기자의 추적은 이런 결론을 내고 있다. "정부의 갈등 조정 능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의협이 실무 논의단계에서 의사 의견 수렴과 문제 제기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뒤늦게 왜 거리로 뛰쳐나왔을까? "의협의 현 집행부와 차기를 노리는 세력 간의 선명성 경쟁"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빈국 쿠바 의료수준이 한국보다 나은 이유

a '의료법 개악저지 결의대회'에 참석한 약 2만여명의 의사들은 의료법 개정에 반대했다. 각 지역에서 참석한 의료업 관련자들은 지역별로 각기 다른 색깔의 모자를 착용해 지역을 구분했다. 사진은 경북 구미 참석자들.

'의료법 개악저지 결의대회'에 참석한 약 2만여명의 의사들은 의료법 개정에 반대했다. 각 지역에서 참석한 의료업 관련자들은 지역별로 각기 다른 색깔의 모자를 착용해 지역을 구분했다. 사진은 경북 구미 참석자들. ⓒ 오마이뉴스 이민정

문득 지난해 읽은 BBC 기사가 생각난다. 지난해 5월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뒤흔든 대규모 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각국에서 의료지원팀이 파견됐다. 대부분의 의료지원팀들은 한두 달 정도의 활동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예외가 있었다. 쿠바 의료팀. 대다수 각국 의료지원팀이 빠져나간 뒤에도 이들은 세 달 넘게 계속 머물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오래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지인들의 뜨거운 반응 때문. 지진피해가 가장 컸던 족자카르타(Yogjakarta)의 지방정부들은 쿠바의료팀에 공식적으로 6개월 더 머물러줄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

그들이 그처럼 인기가 좋았던 것은 135명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규모 의료팀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료진 구성부터 현지 실정에 맞게 세밀하게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료팀의 절반 이상은 여의사들이었다. 이슬람 여성들은 남자 의사에게 진료 받는 것을 꺼리는 이슬람 문화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인간적이고 친밀한 진료활동으로 현지인들은 꼭 아프지 않더라도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상담을 위해 쿠바의료팀을 찾을 정도였다고 한다.

쿠바는 세계적인 빈국에 속한다. 국제적으로도 국민소득 통계가 잡히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의료지원 분야에서는 세계 1위의 실적을 자랑한다. 68개국에 2만여명의 의료지원단을 파견해놓고 있을 정도다.

수준도 세계 최정상급이다. 국민 1인당 의사 숫자 세계 최고다. 의료비는 거의 무료다.

누구를 위한 '진료권 투쟁'인가

세계 도처에 파견된 의료지원단 의료진이 받는 급여는? 국내 급여와 똑같다. 자원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쿠바의사들의 급여 또한 일반 근로자 보다 많지 않다. 그래도 의사로서 자기 직분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크다고 한다.

의사의 진료권을 위축시킨다고 거리로 뛰쳐나온 한국의 의사들. 얄팍한 월급봉투이지만, 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세계 각국에 나가 의료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쿠바 의사들.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새삼, 거리에 나선 의사들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진료권을 주장하고 있는지 되묻게 되는 까닭이다.
#백병규 #미디어워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의사 파업 #조간신문 리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4. 4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5. 5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