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보다 논바닥에서 타는 썰매가 더 재미있다는 아버지.김혜원
"명절 밑에 구경은 무슨 구경이냐?"
"막내딸이 갑자기 시간이 생겨서 모시고 간다잖우. 시골 가면 장 구경도 하고, 명절 장도 거기서 보고 그러자구요."
지난 13일. 직장에 다니는 탓에 평소에 부모님과 여행을 하기 어려웠던 막냇동생이 모처럼 주중에 휴가를 내 부모님을 모시고 강원도에 있는 스키장을 다녀왔습니다.
스키는커녕 눈썰매도 못 타신다면서 안가겠다고 손을 내저으시는 부모님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지요.
손자들의 노는 모습도 보시고 스키장 안에 있는 물놀이 시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함께 가시자고 조를 때는 꿈쩍도 않으시던 분들이 스키장 근처 시골장 이야기를 해드리니 얼른 준비를 하십니다. 시장구경을 싫다 하시는 노인분들은 거의 없거든요.
아이들이 스키를 타러 나간 시간 창 밖으로 시원하게 설원을 질주하는 스키어들을 바라보시던 부모님이 지루하셨던지 장 구경을 조르기 시작하십니다.
@BRI@
"개미새끼들 같구먼. 새까맣게 내려오네. 논바닥에서 썰매 지치는 건 공짜구먼. 뭐할라고 돈 써가며 저러는지 모르겠다."
"영감, 논바닥에서 썰매 타는 거 요즘 애들이 알기나 해요. 우린 뭔 재미로 살았던지 몰라. 참 요즘 사람들은 재미도 새록새록이지. 니들은 좋은지 몰라도 늙은이들은 재미없으니까 장 구경이나 시켜줘라."
집을 출발할 때부터 시골 장 구경에 마음을 빼앗긴 부모님 눈에 설원을 내달리는 스키어들이 들어올 리 없습니다. 그저 얼른 시골장터에 가서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지요.
차를 몰고 스키장을 빠져나왔지만 생각과 달리 시골장을 찾는 것을 쉽지 않습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고 내리며 한 시간이 넘게 헤맨 끝에 도착한 시장. 생각보다 제법 큰 규모였습니다.
우체국, 교육청, 등기소가 있는 것을 보면 홍천읍쯤 되는 것도 같아 보입니다. 설날을 앞두고 명절장을 보기로 작정을 하고 오신 엄마는 오래 전부터 잘 아는 동네인 것처럼 앞서서 시장골목으로 들어가시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아버지 역시 엄마의 뒤를 바로 따라가시며 혹시라도 주차위반에 걸릴지도 모르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당부를 하십니다.
그리고 한 시간이 흐르고, 또 삼십분이 지나는 시간 아무래도 시장통에서 길을 잃으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찾아 나서보려다 길이 엇갈릴까 걱정되어 다시 차로 돌아오기를 몇 번. 오후 네시를 넘어서면서 흐려진 하늘에서 한두 방울씩 비까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무슨 장을 이렇게 오래 보시는지? 혹시 길을 잃으신 건 아니겠지?'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멀리 커다란 검정 비닐봉투를 머리에 이고 걸어오는 엄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짐을 받고 보니 아버지가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