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수각엔 왜 가?

3박4일의 일본 여행

등록 2007.03.11 14:55수정 2007.03.1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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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각
천수각정현순
"어머나, 여기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있다는 곳이구나."
"일본 영주들은 이런 곳에서 살았네?"
"건물이 이상하다. 아주 단조롭고, 멀리서 봐도 일본 냄새가 난다. 사찰 같기도 하고."
"이러니깐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 궁궐을 보면 놀래지. 섬세하고 화려하고 과학적인 우리나라 고궁들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살았다는 천수각을 보면서 느낀 점들이었다. 우리나라 고궁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새삼 느끼게 된 것이다. 일본을 통일하고 우리나라를 넘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발자취가 있다는 오사카사 주오구 오사카조에 있는 오사카성 천수각을 찾았다.


멀리서 보이는 오사카성
멀리서 보이는 오사카성정현순

높은 담의 오사카성
높은 담의 오사카성정현순

멀리서 오사카성이 보인다. 마치 무슨 요새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주가 사는 곳을 들어가자면 이렇게 놓은 벽과 호수를 몇 개 거쳐야만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그곳을 침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본 영주는 다른 나라의 왕과 같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몇 배도 넘는 담을 보니 가히 그러했으리라 짐작이 갔다.

시주를 기다리고 있는 일본의 승려
시주를 기다리고 있는 일본의 승려정현순
전쟁의 상징 대포
전쟁의 상징 대포정현순
오사카성의 오떼문
오사카성의 오떼문정현순

그날, 일본은 잔뜩 흐린 날씨에 가랑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오사카성에 들어섰다. 입구에서 일본의 승려로 보이는 남자가 목탁을 두드리면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사람들이 정성을 보이는 시주를 하는 듯했다. 그런 모습은 우리나라의 사찰과 비슷해 보였다.

양옆으로 잘 정리 정돈되어 있는 길을 따라 천수각으로 향했다. 멀리서 천수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농민의 아들로 1536년~1598년까지 살다가 간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을 비관하여 어린시절에는 가출을 일삼았다고 한다. 가출한 그는 바늘장사로 많은 돈을 벌어 금의환향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가난하고 초라한 집안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는 평소 오다 노부나가를 무척이나 흠모해왔다. 그는 그의 신하가 되고 싶어 했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띄기 위해 하루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해 오다 노부나가의 신발을 만들어 추운 겨울밤마다 품에 끌어안고 자면서 신발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기회는 왔다.

행운을 준다는 부적
행운을 준다는 부적정현순

천수각 지붕 위에 있는 황금잉어
천수각 지붕 위에 있는 황금잉어정현순
어느 날 전쟁을 떠나기 위해 따뜻한 신발을 신게 된 오다 노부나가는 그를 찾게된다. 그때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충직한 부하가 된다. 그는 그의 영주 오다 노부나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낸다. 그런 그는 부대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런 후 오다 노부나가 집안의 몰락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영주가 된다.


천수각 안에 있는 전시물들
천수각 안에 있는 전시물들정현순
1583년 일본 통일을 꿈꾸며 권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15년 동안 매일 3만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이 성을 짓게 된다. 난공불락의 이 성은 당시의 크기가 지금의 다섯 배라고 한다. 하지만 여러 차례 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1931년 일부 복원이 되었으나 2차 대전 때 공습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48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도요토미 시대의 오사카성은 오사카혼간지절터에 새로운 축성공사를 시작하여 천하의 히데요시를 상징하는 대성각을 쌓아올려 완성시켰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정권은 도쿠카와 이에아스에게 넘겨져, 게이초 20년(1615년)의 오사카 여름전투에 낙성되었다.


재미있는 일화를 가이드가 말해준다. 울지 않는 새가 있을 때 울게 하려면 세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오다 노부나가는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 하든지 울게 만든다.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평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일본을 내 손 안에 넣겠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단 한번의 전쟁도 치르지 않고 일본을 손 안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도요토미의 발자취가 있는 천수각
도요토미의 발자취가 있는 천수각정현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조선을 침략하여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아주 가끔, 그런 사람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우리가 왜 봐야하냐면서 들어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보고 나온 사람 중에서도 "에이~~ "하면서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에는 그곳을 보면서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못 찍게 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오사카성 천수각을 둘러 보고나니 정말이지 기분이 묘했다. 같이 그곳을 관람했던 일행들도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알 수없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인가 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다고 하더니.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가 그곳을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발자취가 있는 그곳을 직접 걸을 줄이야 그 누군들 알았을까? 히데요시는 저 세상에서 지금의 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휠체어 사용자나 노약자 여러분들께서도 편안하게 관람을 하실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와 자동문을 설치하였습니다. 모르는 점이 있으시면 담당자에게 문의하여 주십시오."

이번 가이드는 일본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그가 일본으로 여행 온 일행들과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네 명의 역 승무원이 도와주면서 지하철을 무사히 타는 것을 확인하고 지하철 출발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부러움이 컸다고 한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고궁이나 문화재를 관람할 때 모습은 어떨까? 지하철을 타려는 장애인의 모습은 어떨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배울 것은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지난 3월 4일부터 3박 4일 일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3월 4일부터 3박 4일 일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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