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지만 느낄 수 있었던 작품들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의 'Our Magic Hour' 미술전시회를 다녀와서

등록 2007.03.14 12:09수정 2007.03.14 12:11
0
원고료로 응원
프롤로그

a

ⓒ 이준혁

지난 1월 26일부터 충남 천안시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는 'Our Magic Hour(우리의 마법 같은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유럽 현대 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스위스), 한스 옵 드 벡(Hans Op de Beeck, 벨기에), 모니카 본비치니(Monica Bonvicini, 이탈리아), 로베르토 코기(Roberto Cuoghi, 이탈리아), 데이비드 렝글리(David Renggli, 스위스), 마르쿠스 쉰발드(Marcus Schinwald, 오스트리아) 등 여섯 명의 유럽 작가의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은 아시아에서는 낯선 작가들이지만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젊은 유럽 작가로 손꼽히는 유명한 작가들이다.


미술 전공은 물론 예체능도 인문학 전공도 아닌 토목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 또한 재미있게 관람하고 왔다. 전시회에 여러분을 초대해 본다.

테마 1 -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아산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거나 미술·건축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라리오 갤러리'는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아라리오 갤러리는 이미 한국 미술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국내의 대표적 갤러리 중 하나이다.

1989년 천안에 개관한 이래, 지난 2005년에는 서울과 베이징에 잇따라 대형 갤러리를 개장하였으며, 올 2월에는 뉴욕 중심가에 1500여 평의 건물을 임대해 곧 뉴욕에서도 '아라리오 뉴욕' 개장을 앞두고 있다.

a 우측의'수백만 마일'은 프랑스의 유명 아티스트인 아르망의 작품으로 제작비만 3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천안터미널에 맞는 상징물을 찾다가 차량의 차축 999개로 만들었다는 대형 작품. (10개씩 99단까지 쌓고, 마지막 100번째 단은 9개로 마무리)

우측의'수백만 마일'은 프랑스의 유명 아티스트인 아르망의 작품으로 제작비만 3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천안터미널에 맞는 상징물을 찾다가 차량의 차축 999개로 만들었다는 대형 작품. (10개씩 99단까지 쌓고, 마지막 100번째 단은 9개로 마무리) ⓒ 이준혁

a 아라리오갤러리는 비수도권의 사설 갤러리 중에서는 최대 규모이다.

아라리오갤러리는 비수도권의 사설 갤러리 중에서는 최대 규모이다. ⓒ 이준혁

전속작가 제도를 도입하고 제주도에 작가들을 위한 대형 작업공간을 건설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갤러리에 전시되는 미술품 선정에 있어서도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사진4, 사진5 : 가로배열)

우측의 '수백만 마일'은 프랑스의 유명 아티스트인 아르망의 작품으로 제작비만 3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을 뻗어 세계로 나아갈 천안터미널에 맞는 상징물을 찾다가 차량의 차축 999개로 만들었다는 대형 작품. (10개씩 99단까지 쌓고, 마지막 100번째 단은 9개로 마무리)


천안고속터미널, 야우리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임대), 천안시외터미널, 아라리오갤러리 등을 통틀어 '아라리오 스몰시티(Arario Small City)'라고 칭한다. 이 아라리오 스몰시티의 대로변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1만평 규모의 조각공원이 있다.

'여유로움이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고 깨끗하지도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직도 상당수인 대한민국에서 버스터미널 개념을 바꾼 시발점이 된 이 곳은, 63종에 달하는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고 그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좌측 조형물은 최근에 들어온 것이다)


건설 분야를 전공하고 있고, 교통 분야에도 관심이 많은 필자로서는 '사람이 모이는 터미널에 예술 공간이 없는 한국 현실이 아쉬워' 갤러리를 세웠다는 아라리오갤러리 및 천안터미널·야우리백화점의 오너인 김창일 회장(지난 2004년부터는 갤러리 오너와 컬렉터를 너머 '시킴(CI.KIM)'이라는 예명으로 아티스트로도 활동 중이다)의 마인드가 맘에 들기에 이 곳에 더 자주 찾아가기도 한다.

더불어 이 곳은, 비수도권에 위치하지만 수도권 유수의 갤러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테마 2 - 우리의 마법 같은 시간?

a 한스 옵 드 벡, '테이블 (1)', 2006년 작

한스 옵 드 벡, '테이블 (1)', 2006년 작 ⓒ 이준혁

a 우로 론디노네 '유성의 어두운 흐름을 지나서', 2004년 작

우로 론디노네 '유성의 어두운 흐름을 지나서', 2004년 작 ⓒ 아라리오갤러리

<'미술하면 머리에 쥐가 난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제목부터도 '쥐가 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고, 미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조예가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거기 별거 있겠어?'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들지만, 미술과는 먼 삶을 살아온 필자에게 이번 전시회는 꽤 흥미로웠다.

갤러리 측에서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인 밀로반 페로나토(밀라노의 비아파라니라는 비영리 전시 기관에 소속된 유명한 독립 큐레이터)를 통해 유럽 현대미술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미너멀리즘과 개념미술과 같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성기를 지나 이를 토대로 재탄생한 건조한 낭만주의, 즉 우울질의 낭만주의'를 컨셉트로 삼았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런 복잡한 내용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혹자에게는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전시회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편한 마음으로 여섯 가지의 독특하고 색다른 전시 작품을 감상하며 조금씩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보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스위스관을 대표할 우고 론디노네의 '유성의 어두운 흐름을 지나서(Across Dark Stream of Shooting Stars)'라는 작품이다.

a 모니카 본비니치, '눈먼 샷', 2004년 작

모니카 본비니치, '눈먼 샷', 2004년 작 ⓒ 이준혁

이 작품은 100년이 넘은 올리브 나무를 떠서 만든 작품으로 눈을 내리게 하는 장치와 거울을 이용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눈은 항시 내리지 않으니 내릴 때를 기다려 이 작품을 보자. 무언가 달라 보일 것이다.

옆으로 가면 보이는 한스 옵 드 벡의 '테이블(1)'이라는 작품이 보일 것이다. 그냥 테이블 위에 식탁보 놓은 상태에서 그릇도 놓고 찻잔도 놓고 재떨이도 놓고 옆으로는 의자도 놓고 끝!

작가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하던 유아기 때를 그리워하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재떨이 위에는 담배도 수북이 쌓여 있고, 그릇에는 음식은 물론 음식에서 국물 흐른 흔적도 보이는 등 8m나 되는 테이블을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가면 이번 전시회의 여섯 명의 작가 중 유일하게 여성인 모니카 본비치니의 '눈먼 샷(Blind Shot)'이라는 작품이 보일 것이다.

검은 가죽 벨트로 엮어 만든 침대 구조물 하나에 공중에 매달린 전동드릴 하나가 있는 이 작품은 지난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아르세날전의 메인을 장식한 작품으로, 그녀의 작품세계에 있어 메인 테마 중 하나인 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공중에 매달린 드릴은 정기적으로 전원이 들어와 작동하게 되며, 검은 가죽 벨트로 만들어진 구조물과 더불어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a 로베르토 코기, '메이 구이', 2006년 작, 사운드 설치작품

로베르토 코기, '메이 구이', 2006년 작, 사운드 설치작품 ⓒ 이준혁

잠시 기다리라는 말에 30초 정도 기다리니 무슨 이상한 음악이 나온다. 로베르토 코기의 사운드 설치작품인 '메이 구이(Mei Gui)'였던 것이다. 이 작품은 1940년에 상하이에서 녹음된 'Mui Kuai'라는 카바레 음악으로 만들어진 중국 대중가요를 작가가 자신의 방식으로 변형시킨 작품이다.

원곡을 만든 작곡가는 사상이 불순한 음악을 만들었다 하여 투옥된 후 사형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곡은 본래 장미의 아름다움에 관한 곡이었지만 로베르토가 이 음악을 다시 부르고, 자신이 만든 신조어를 사용하면서 그 의미를 음악에서 삭제시켜버렸다.

로베르토는 원곡과 비슷한 음색을 만들고자 가성을 쓰며, 높은 톤으로 남자가 여자 목소리 내려고 악을 쓸 때의 그 음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뜻을 알고 들어보면 참으로 여러 생각이 들 것이다.

a 데이비드 렝글리, '어두운 밤, 갑작스레 다시 밝아지다', 2006년 작

데이비드 렝글리, '어두운 밤, 갑작스레 다시 밝아지다', 2006년 작 ⓒ 이준혁

밖으로 나오면 데이비드 렝글리의 ‘어두운 밤, 갑작스레 다시 밝아지다(The Night, it Suddenly Become Bright Again)'이라는 조금은 긴 제목의 작품이 보인다. 모든 사물은 물론 벽지마저도 까만 검은 방 한 가운데에 톱밥을 뿌려놓아 시각적으로 강한 무언가가 어두운 방을 비추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데이비드 렝글리는, 바젤 아트페어의 주요 스폰서인 UBS라는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매년 젊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을 받으며 일찍부터 유명해진 촉망받는 작가이다.

a 마르쿠스 쉰발드, '사랑에 빠진 10명', 2006년 작, 비디오 작품

마르쿠스 쉰발드, '사랑에 빠진 10명', 2006년 작, 비디오 작품 ⓒ 아라리오갤러리

마지막으로 마르쿠스 쉰발드의 '사랑에 빠진 10명(Ten in Love)'이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갖게 했던 이 작품은 10명의 인물이 기이한 천정 구조를 가진 공간 속에서 저마다 알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는 영상 작품이다.

굽이 없는 하이힐은 신은 여성, 기이한 구조물에 몸을 맞춰 꼼짝 않고 의자에 앉은 여성, 끊임없이 서로를 껴안는 두 남성, 여성 다리 모양의 기이한 조형물을 자신의 목에 두르는 남성 등 각각의 인물들은 무표정이지만 여러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동시에 아무 말 없이 자기 상황만을 연출하는 모습은 참 이색적이다.

작품을 보며 개인적인 온갖 생각들이 들곤 했다. 동시에 좀 무거운 생각도 몇 들었다. 다들 하나가 되고 싶어 하지만 서로가 끝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살짝 무거워졌다면 오버일까?

에필로그

a 공사 중인 운보찻집

공사 중인 운보찻집 ⓒ 이준혁

미술이라고 하면 회화나 조각 정도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전시회는 현대 미술이 어떻게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어떻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 보여주는 전시회가 아니었나 싶다.

아라리오 갤러리는 첫 메인 테마에서도 살짝 언급했다시피 서울과 대전의 중간 지점인 천안터미널 옆에 있어 가기 쉽다. 본래 3월 11일에 전시가 종료되나 관람객들의 성원으로 25일까지 전시기간이 연장된다 하니 오랜만에 가까운 나들이한다는 셈치고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운영하는 운보찻집을 자주 찾았고 모던한 이 곳에서 가래떡과 인삼차를 마시며 독특한 분위기를 즐기곤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옆의 ZHAUS라는 베이커리에서 쿠키와 크로와상을 사 갔다. 하지만 이번에 갔을 때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변경을 위해 공사 중이었다. 이번 방문의 가장 아쉬웠던 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대를 위한 지식정보 포털사이트 영삼성닷컴(www.youngsamsung.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20대를 위한 지식정보 포털사이트 영삼성닷컴(www.youngsamsung.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