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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으로 가려면 전북 장수군 장계읍내에서 함양·안의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읍내를 벗어나는 지점에는 작은 농로를 두고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다. 낮에도 오가는 차들이 없다 보니 신호등이 무시되기 일쑨데 나는 밤에도 빨간 신호등 앞에서는 꼬박꼬박 차를 세운다. 대신 경찰서에 신호등을 점멸등으로 바꾸는 것이 차량 흐름에 좋겠다는 신고를 했다.
'저건 잘못됐다', '불합리하다'면서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 버리면 그 불합리가 개선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고쳐질 때까지는 빨간 신호등 앞에서 차를 세우는 내 불편을 감수할 생각이다. 불편해야 고쳐지는 법이니까.
@BRI@생명을 위협하는 길 위의 불합리는 또 있다. 길거리 표어들이다. 그래서 도로공사와 교통안전공사에 여러 번 길거리 표어 제안을 했었다. 길거리 표어를 제안하는 이 고상한 버릇도 우연한 기회에 생긴 것이다. 아주 고약한 표어를 보고서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경북 구미 근처 기찻길 건널목 앞에서 본 표어인데 "당신도 언젠가는 건널목 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거의 저주에 가까운 협박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사라진 표어 중에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것도 있었다.
교육과 계도는 결코 협박과 공포를 기재로 해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게 내 신념이다. 이런 원칙이 어찌 아이들 교육에만 적용되겠는가. 사람과 짐승, 나아가 구르는 돌멩이 하나라 해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내가 제안한 표어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계속 안전운전 하시면 됩니다."
"물 흐르듯이 즐겁게 운전하세요."
"아름다운 금수강산. 속도를 줄인 만큼 더 많이 보입니다."
"운전이 행복하면 내 삶이 행복합니다."
내가 제안한 길거리 표어의 특징이 보일 것이다. 모두 긍정형으로 되어있고 칭찬과 격려가 담겼다. 가령, '친구들하고 싸우지 마라'고 하는 것보다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잘 지내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칭찬과 긍정을 담은 길거리 표어는 운전자의 안전운전에 크게 보탬이 될 것이라 여겼는데 채택된 것은 별로 없다. 다만 길거리 표어들이 언젠가부터 순화되었다고 보는데 내 제안과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요즘 많이 보이는 "운전습관, 당신의 인격입니다"도 운전습관 하나로 한 사람의 인격까지 거론한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좋은 운전습관은 좋은 인생을 만듭니다"로 바꿔 제안하기도 했다.
무엇이든지 시작이 힘들지 한번 시작하면 탄력이 붙게 된다. 거듭할수록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또 친숙함으로 바뀐다. 나의 행복한 운전하기는 진화를 거듭하여 남을 간섭(?)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내 던지는 차가 있으면 일부러 뒤따라가지는 않지만 신호등 앞에서라도 나란히 서게 되면 한마디 한다. 운전자가 인상이 고약하게 생겼으면 길이나 묻는 듯하고 넘겨버리고 좀 만만하다 싶으면 웃으면서 얘기한다.
"청소부 아저씨들이 새벽마다 목숨 걸고 저 꽁초를 쓸어야 할 텐데요…."
내 고까운 참견(?)에 80∼90%는 "아, 예. 죄송합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아니꼽다는 듯이 흘깃 쳐다보고는 말없이 열었던 차창을 닫아 버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남의 운전습관에 간섭(?)하는 역시 내 고상한(!) 버릇도 우연한 기회에 생겼는데 지금껏 그 버릇을 못 버리고 있다.
아주 오래전. 인천에 살 때 그때는 담배를 피웠었는데 담배꽁초를 창 밖으로 던졌다가 교통 경찰에게 딱 걸려버렸다. 새파란 의경이 다가오기에 내뺄까, 아니면 뭐라 변명할까 눈치를 보는데 그 새파란 의경이 나를 너무도 부끄럽게 만들었다.
"선생님, 선생님 자동차 밖은 온 세상이 다 재떨인가요?"라면서 꽁초를 나에게 공손히 건네는 것이었다. 이른바 사회운동을 한다는 내가 그 꼴을 당했으니 상상해 보시라.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남지 않았겠는가. 내 고상한 운전버릇 하나를 심어 준 그 '새파란 의경'에게 감사한다.
언젠가 택시를 탔다가 빨간불이 막 들어왔는데도 두 번씩이나 무리하게 신호등을 넘어가기에 차를 세우고 항의를 했었다.
"빨리 가는 것도 좋지만 난 생명까지 걸 생각이 없다, 혼자 가라"고 했더니 운전사 말이 걸작이었다. "이쪽에 빨간불이 들어와도 옆쪽 차선에 파란불이 들어오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자기는 교차로를 넘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내가 대뜸 빨간 신호등의 의미가 그런 것이냐고 되물었다.
신호등 빨간불이 옆쪽 차선에 파란불이 들어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 속도를 내서 어서 건너라는 말이냐고 쏘아붙였다. 안 되겠다 싶은지 기사가 사과를 하기에 다시 그 택시를 탔고 안 주려던 요금도 주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북도 지역의 진보 시사지인 <열린전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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