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트럭 운전석에 붙어 있는 자동차 붙임딱지. 이 덕에 내 트럭은 '유명한 자동차'가 되었다.전희식
특집기사의 논리는 구구절절 옳았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용인 하고 있는 것들 중에 자동차처럼 위험하고 골칫거리인 것이 다 있었나 하고 경악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퇴출당한 것들이 지구상에 어디 할 둘이랴마는 자동차가 등장한지 150년도 안 되어 인간으로부터 암세포라는 진단을 받다니 당황스러웠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역시 내 자동차에 대한 시각이 확 바뀌었다. 동창회나 행사장 등 모임에 갔다가 시커먼 대형 승용차를 타고 온 친구가 있으면 "야, 너 아직도 대형차 타냐? 야만인처럼?"이라고 한마디 하게 되었고, 길거리에서도 혼자서 대형승용차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면 혀를 끌끌 차게 되었다.
현대자동차 간부로 주로 해외시장을 담당하면서 세계 곳곳을 나 다니는 친구에게 "공해산업에서 어서 나오라"고도 했다.
현대자동차 노조, 또는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노조 등이 성과급이다 파업이다 하여 언론에 오르내릴 때는 "여보게, 당신들 지구에 암세포를 만들고 있다네"라고 한 마디 해 주고 싶기도 했다.
옛날 우리가 군사독재시절에 최루탄 만드는 공장 규탄운동을 벌였듯이 자동차공장이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 비슷한 처지에 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다.
좋은 계기를 만나면 행동과 생각은 동시에 몇 단계를 훌쩍 뛰어 진화한다.
작년 이맘때 아끼는 후배인 고 조문익씨가 자동차 사고로 숨지고 나서다. 내겐 큰 충격이었고 장례기간 내내 골똘히 생각하여 다다른 결론이 둘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무 자동차나 탈 게 아니라 '유명한 자동차'를 타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름 있는(유명한) 자동차' 타기 운동을 벌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누리터에 카페도 만들었고 언론 매체에 글도 썼다. 특히 내가 홍보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던 '사단법인 생명평화결사'를 통해 시민운동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이름 있는 자동차'는 그랜저나 비엠베 같은 고급승용차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름표를 단 차를 말한다. 자발적인 운전자 실명제 운동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