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평화여"

[인터뷰] 이은우 평택범대위 위원장과 대추리 주민 방승률씨

등록 2007.03.25 14:01수정 2007.03.25 14:08
0
원고료로 응원
24일 대추리 935번째 촛불집회장. 마지막을 하늘도 아쉬워하는지 내내 흐린 날씨가 계속됐다. 대추리 집회는 이날을 마지막으로 기나긴 여정을 접었다. 그러나 이를 마지막으로 보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가 새로운 꿈을 안고 떠나는 출발점으로 인식했다.

이은우 평택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과 주민 방승률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서글프고 어수선한 마음이 앞서지만 그럼에도 대추리에서 밝힌 촛불이 전국에서 되살아날 것을 믿는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이은우 위원장과 방승률씨와의 일문일답.

a 이은우 평택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이은우 평택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 박지훈

-마지막 촛불집회를 맞아 어떤 생각이 드나.
이은우 위원장(이하 이은우): "오늘 지인들에게 '세상이 흠뻑 젖어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방승률씨(이하 방승률): "우리가 처음 (촛불집회)를 시작할 때 이렇게 길게 할 줄 예상도 못했지. 갈수록 심해지는 공권력 탄압으로 주민들이 더 강해진 거야. 935일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민과 대추리를 사랑하는 이들의 힘이 컸지만 이런 부분도 있다고 봐.

참으로 꿈같은 세월이여. 고통을 다 겪고 견뎌왔으니 말이여. 한편으로 우리 스스로도 대견하고 놀랐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맞는 소리야. 이렇게 계속 짓밟히다 보니까 내 삶의 의욕도 더 강해지더라구."

-기억에 남는 집회가 있는가.
이은우: "모든 촛불행사가 소중했다. 그러나 특히 트랙터 시위 행진을 마치고 오는 날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또 1주년, 500일 행사들도 기억에 남는다."


방승률: "2006년 5월 4일. 경찰이 우리 부락을 전부 포위해서 포크레인까지 밀고 들어와 학교 때려부실 적이 기억나. 그땐 정말 암담했지. 왜냐면 우리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세운 학교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니까 그 심정이야 말할 것도 없지. 그래도 우리는 그날 저녁 촛불을 켰어."

-집회를 준비하거나 참석하며 기뻤던 점과 슬펐던 점을 꼽는다면.
이은우: "935일 동안 주민들과 여러 단체들이 계속 촛불을 켜왔던 과정 자체가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이제 촛불이 꺼진다는 현실과 (삶의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으로 가는 것이 슬프다."


방승률: "공권력의 온갖 협박에도 주민들이 한마음이 되겠다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 제일 기뻤지. 반면 2006년 말까지 100여 가구가 살았지만 협박에 못 이겨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 참담했지."

-대추리가 한국 사회 던진 화두는 무었이며 의미는 어떤 것인가.
이은우: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폭력과 야만성에 대해 대추리 주민들은 온몸으로 저항해 평화를 향한 염원을 보여줬다. 국민 동의 없이 이뤄지는 것들에 대해 정부는 이번을 계기로 교훈과 각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곳에서 대추리와 같은 아픔은 이어질 것이다."

a 대추리 주민 방승률씨.

대추리 주민 방승률씨. ⓒ 박지훈

방승률: "평화지.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외부에 있는 분들이 이런 실정을 아직도 잘 몰라. 평화를 왜 부르짖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아.

평화에 대한 부르짖음이 멈추면 한국전쟁을 또 겪어야되는 것 아니겠어. 이런걸 모르고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모른척하고 도외시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제 다시 대추리 촛불은 볼 수 없는 것인가.
이은우: "주민들이 켜는 촛불은 오늘로써 끝이다. 촛불은 전쟁 반대와 평화를 염원했다. 또 다른 한편으론 평화를 위해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함께한 삶을 추구했다. 그 운동과 열망을 다른 형태로 지역과 전국에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대추리 촛불이 아니라는 것 빼고는 지금 말했던 정신이나 마음들은 되살아날 것이다."

방승률: "그렇지.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언젠가 다시 켜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해. 이걸로 끝은 아니라고 봐."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은우: "대추리 주민의 고통은 한미동맹이라는 부분 속에서 일방적인 공세가 불러온 결과다. 국민들은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함께 해주지 못한 측면이 많다. 올바른 민주주의와 평화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면 한국사회가 어떻게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겠나.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방승률: "우리가 외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후대들이 평화롭게 살 수 없어. 이걸 꼭 기억해 두라는 부탁을 하고 싶어. 또, 언론도 국민을 깨우치는데 앞장서야지 정부 눈치 보고 있던 일도 없던 일로 만들어 국민 눈과 귀를 막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