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과 황포돛대, 그리고 어촌 문화의 향연

부산어촌민속관을 다녀와서

등록 2007.04.02 13:42수정 2007.04.0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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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팔백 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 몸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아간다. 강을 따라 바둑판같은 들이 아득하게 열려있고 그 넓은 들 품안에는 무덤 무덤의 마을이 여기저기 안겨 있다. 이 강과 이 들과 거기에 사는 인간과 강은 길이길이 흘렀으며, 인간도 길이길이 살아왔었다.'
- 조명희의 낙동강 중에서


유유자적하게 나는 철새와 바람에 흔들거리는 누르스름한 갈대, 남청색 강물과 오렌지 빛 햇살에 부서지는 은빛 모래톱, 그리고 그 사이로 아련히 흘러 다니는 황포돛대들. 강과 인간은 자연 속에서 길이길이 흐르듯 살았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낙동강의 저물녘 풍경은 황포돛대에서 불어오는 토속의 향을 품고 있다.


낙동강과 황포돛대 배
낙동강과 황포돛대 배김대갑
황포돛대라는 것은 누런 헝겊으로 높다랗게 만든 돛을 말함인데, 주로 강 하구를 터전 삼아 살던 어민들이 이용했던 배에 많이 부착되어 있었다. 바람을 잘 받기 위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황포돛대를 단 배가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황포돛대를 유감없이 볼 수 있는 데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부산의 화명동에 있는 '부산어촌민속관'이다.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의 분관인 어촌민속관은 요 근래에 개관한 곳으로, 주로 낙동강에 관계된 어촌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총 부지 1만177㎡에 연면적 2441㎡,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전시관은 크게 낙동강어촌민속실과 부산어촌민속실로 이루어져 있다.

어촌민속관 전경
어촌민속관 전경김대갑
제1전시실인 낙동강어촌민속실로 들어가면 낙동강 700리의 축소 모형이 바닥에 지도 형태로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구포나루에서 상주 낙동나루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 점이 무척 흥미롭다. 예전 이 길을 따라 백성들의 고혈이 담긴 공물이 한양까지 운송되었던 것이다.

바닥의 낙동강를 자세히 본 후 안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낙동강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낙동강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오래전부터 인간이 낙동강을 터전삼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낙동강변의 어촌민속들을 축소모형을 통해 전시했는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구포 감동진의 별신굿이라고 할 수 있겠다.

통상 별신굿은 해안가 지방에서 성행하는 것인데, 내륙지방의 강가에서 별신굿이 행해졌다는 것은 무척 이채로운 일이다. 아마 그 당시 낙동강은 어민들에게는 하나의 바다였기 때문에 이런 별신굿이 행해졌을 것이다.

낙동강 칠백리 전경
낙동강 칠백리 전경김대갑
그 외 낙동강변의 어로 활동 코너에서는 모형과 영상을 통해 여러 가지 어로 행위를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낙동강변에서 살던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을 쉽게 알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낙동강을 둘러싼 삶을 생생히 보여준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점도 어촌 민속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낙동강 어촌 체험이라고 해서 황포돛대 배 조립하기, 퍼즐 맞추기, 확대경으로 민물과 바다 고기 찾아보기 등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 해준다. 황포돛대와 어촌민속관 그림을 시험지 종이에 스탬프로 찍어서 가져가는 것은 일종의 덤이라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어촌민속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단연 구포 감동진 나루터의 재현 모습이다. 전시관의 상징적인 공간인 이곳은 조선시대 낙동강 뱃길의 물목이었던 구포 감동진 나루터를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낙동강물 위로 크고 작은 배들이 돌아다니고, 선창가에서는 부지런히 공물을 배에 싣고 있다. 강변의 언덕에는 감동창이라는 큰 창고가 있었는데, 이 창고에는 미곡 등 삼세 물량이 저장되었다. 여기에 저장된 미곡은 부산진, 수영진, 금정진, 다대진 등의 군영에 보급되었다.

구포 나루터 모습
구포 나루터 모습김대갑
이런 연유로 감동창을 중심으로 낙동강변 나루터에서 동네 안쪽 한마당까지 구포장터가 형성되어 일찍이 구포는 수륙과 해운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구포장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 기반한 것이다. 지금도 구포장은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유명하며, 장날이 되면 인근 김해와 대저, 동래, 경남 일대에서 온 상인들로 대 혼잡을 일으키고 있다.

감동진 나루터 모습
감동진 나루터 모습김대갑
강과 바다, 갈대와 돛대를 터전 삼아 생명력을 발휘한 민초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낙동강. 요산 김정한 선생이 '모래톱 이야기'라는 소설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한 낙동강은 민초들의 생명력이 켜켜이 묻어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수많은 핍박과 착취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삶을 이어왔던 민초들의 모습을 유감없이 볼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부산어촌민속관'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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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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