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구나, 권력이란 것은.김대갑
그러면 경기도 고양의 원당리에 있는 왕릉은 어떻게 조성된 것일까? 궁촌리의 왕릉이 문헌기록에 나타나 있지 않는 반면에 고양의 왕릉은 역사적인 기록에 분명히 나와 있다. 공양왕은 태종대에 이르러 비로소 왕으로 복위되어 공식적인 제사를 받게 된다. 이때 원당리에 왕릉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중종 13년의 기록에서도 공양왕릉이 고양군에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래서 지금 이 공양왕릉은 사적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재미있게도 한 사람이 죽어 두 군데에서 제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두 군데에서 제삿밥을 먹어야 하니 공양왕의 입장에서 슬프다고 해야 할지 즐겁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모두가 권력 교체기에 일어난 슬픈 현상이 아니겠는가.
더 희한한 것은 제3의 공양왕릉이 있다는 것이다. 공양왕을 따라 왔던 고려의 충신 함부열이 왕의 시신을 거두어 고성산 서쪽 기슭에 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현재 함부열의 묘가 있는데, 그 위쪽에 비석도 상석도 없는 작은 묘가 바로 공양왕의 묘라고 한다.
함부열 집안에 전해져 오는 바에 의하면 양근 함씨의 시조인 함부열이 자손들에게 해가 끼칠까봐 왕의 무덤을 일부러 작게 만들었고, 해마다 축문 없는 제사를 지내라고 유언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양근 함씨 집안에서는 축문없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정착한 마을이 고성군 왕곡마을인데, 왕곡마을은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임금이 유배를 왔다고 해서 궁촌리가 되었다고 했던가. 마을 사람들은 3년마다 해신제를 지내기 전에 반드시 왕릉에 먼저 제사를 지낸다. 원당리의 능에 비해 초라하고 소박한 궁촌리의 왕릉에는 상석도 비석도 없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진정한 공양왕의 능이라고 믿고 있으며, 음력 8월 초하루에 벌초를 하면 어부들이 큰 횡재를 한다는 믿음도 갖고 있다.
외롭고 쓸쓸하게 길가에 자리 잡은 공양왕릉. 권력의 허망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능 앞에서 잠시 고개를 들어 청담한 하늘을 보았다. 그 옛날의 하늘도 저렇게 푸른 물감으로 짙었으리라.
이성계가 창업했던 조선도 고려처럼 허망하게 사라져 갔으며 그의 후손들도 일제에 의해 외롭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말았다. 역사의 뒤안길이란 이런 것이다. 허무하고 또 허무한 것이 권력인 것을 그들은 저 하늘에서 깨달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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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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