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학원'에 왜 다녀야 해요?

학원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일 뿐이다

등록 2007.04.05 15:50수정 2007.04.05 19:1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 박명순

경험상 마음먹는다고 하루아침에 영어가 되지 않음을 잘 알기에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영어 학원만 다녔다.


덕분에 영어만큼은 별 거부감 없이 수업에 임했고 성적도 곧잘 나왔다. 중학생 딸애는 토플시험을 대비해서 공부하다 보니 감당해야 할 숙제의 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어 학원만 다니는데도 이렇게 시간에 쫓기는데, 학원을 여럿 다니는 아이들은 얼마나 초인적인 힘이 요구될까.

초등학교 때까지 펑펑 놀기만 하던 아이를 책상에 붙들어 두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던 작년 한 해는 밀고 당기는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이가 불쑥, "아빠, 저 학원 그만 다니면 안 돼요?" 하는 거였다.

남편은 딸애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이어리에 딸애가 하는 말들을 요약해 적어가며 아주 정성스럽게 아이의 말을 귀에 담았다.

이유인즉, 지금 다니는 학원은 그저 숙제검사나 하고 단어를 잘 외웠는지 시험을 보는 정도란다. 새로운 걸 가르쳐 주는 것도 없는데 굳이 시간 버리고 돈 버리는 이런 불필요한 학원에 다닐 필요가 있느냐는 거였다. 남편은 아이의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 생각에 학원이라는 곳은 내가 공부하다가 막히는 데가 많고 스스로 하기에 힘들 때 도움을 구하는 곳이라 생각해. 즉, '자발적' 공부 의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야. 아빠가 작년 한 해 동안 너한테 줄곧 요구한 것도 바로 그 '자발적' 공부 의사였어."


딸애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데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려면 학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준비와 열정이 필요해. 왜냐하면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해야 하니까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이 힘들지도 몰라. 또 아빠도 더 많은 시간 너와 함께 해야 하고. 할 수 있겠어?"


"아빠, 혹시 저를 믿지 못하는 거죠?"
"아니야.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아빠 자신을 못 믿겠어.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해보고 우리 각자 좀 더 고민해보자."


고민하는 동안 당분간은 학원에 다니는 걸로 대화가 일단락되었다. 그 다음 날 인터넷을 뒤져 독학의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남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두 권의 교재를 주문했다. 공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넘어 홀로 서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고마웠다.

딸애가 학원 가고 없는 날을 택해 우리 부부 삼겹살집에 마주앉았다. 스스로 하겠다는 의지를 이끌어낸 남편을 먼저 격려했다. 남편 역시 딸애가 혼자 공부해 보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당황이 되면서도 기뻤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아주 잠깐 마음 속으로 고민도 했단다.

"우리 회사에 여직원이 새로 들어왔거든. 이제 막 대학 졸업한 앤데 우연히 그 애의 이력서를 보게 되었어. 소위 강남 8학군에서 공부한 부잣집 딸인데, 듣도 보도 못한 대학을 나왔더라고. 특기란이 유독 촘촘해서 자세히 보니까 수영, 발레, 피아노, 검도를 할 줄 안대. 가장 중요한 학창 시절을 취미 항목 늘리는 데만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는 얘기지. 게다가, 그 애 이력서 넣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 엄마래."

아이의 미래는 부모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거기에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 앞에 서서 일방적으로 갈 길을 제시하고 일일이 간섭하는 게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틈'을 주어야 한다. 큰 테두리를 그어주고, 그 안에서 아이와 함께 호흡하며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타고난 개성과 적성을 무시하지 않고, 잘 갈고 닦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어야 한다. 남편은 결론짓듯 이렇게 말하고는 남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영어?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솔직히 학원 필요 없어. 반복이 중요하거든. 학원은 스스로 공부가 안 되는 수동적인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야, 사실. 그리고 생각해봐. 우리가 언제까지 애들 뒷바라지만 할 거냐고. 우리도 다정하게 둘이서 여생을 즐겨야지. 지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심을 키워 주는 게 곧 우리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2. 2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