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 보다 '낯선 행동'을 주의시키자

[주장]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 범죄피해, 예방교육이 필요하다

등록 2007.04.10 11:38수정 2007.04.1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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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린이 범죄는 아는 사람이 저지르거나, 낯선 사람이 '아는 사람'인 것처럼 해서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자'는 지침은 현실에서 별 의미가 없다. 사진은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방청하고 있는 어린이들.

어린이 범죄는 아는 사람이 저지르거나, 낯선 사람이 '아는 사람'인 것처럼 해서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자'는 지침은 현실에서 별 의미가 없다. 사진은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방청하고 있는 어린이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유괴, 납치와 성폭력 사건들이 잇따르면서 학부모들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가정에서는 대개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이 어디 가자고 하면 따라가지 마"라는 식으로 주의를 주기 마련이지만 '낯선 사람'보다는 '낯선 행동'을 주의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해 큰 충격을 주었던 용산 초등학생 살해 사건의 경우 범인은 동네에서 늘 보던 상인으로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 성폭행 사건들의 경우 어린이집 이사장 아들, 학원 원장, 종교인, 아파트 경비원, 보모 등 아이와 친밀하거나 거부하기 어려운 권위를 가진 이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귀가하는 초등학생을 유인하여 성폭행을 하는 범죄들에서도 가해자는 동네에서 가끔 마주치던 낯익은 얼굴들이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납치나 유괴를 목적으로 접근할 때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엄마 친구로 꾸며대거나 먹을 것을 주며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며 연기를 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늘 보던 사람이 아닌 낯선 사람을 주의시키는 교육은 실제 벌어지고 있는 범죄 유형들을 살펴볼 때 예상되는 범죄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어렵다. 낯선 사람이건 낯익은 사람이건 '낯선 행동'을 할 때 경계심을 가지고 미리 가르친 수칙에 따라 신속히 벗어나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범죄피해 예방에 도움을 준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 성폭행 가해자가 친부가 되기도 하고 학교나 학원 선생님이 유괴범이 되기도 하며, 이런 사건들은 실제로 존재했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람이라도, 또 아무리 거절하기 어려운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도 '낯선 행동'을 보일 때는 일단 경계심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이 주의해야 할 낯선 행동들

아이들에게 주의시켜야 할 '낯선 행동'들은 무엇일까? 대략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고 신체를 만지거나 잡아당기려 한다 ▲자동차에 태우려 하거나 밀폐된 방에 데리고 들어가려고 한다 ▲잘 모르는 곳이나 외진 곳으로 함께 가자고 한다 ▲여러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나 하나만 따로 데려가려 한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집에 같이 들어가려 한다 ▲옷을 들추려 하거나 신체 부위를 만지려 든다 ▲가방이나 핸드폰 같은 물건들을 가로채어 따라오게 하려 든다 ▲주소나 전화번호, 부모님 이름 등 정보를 캐묻는다

주의시켜야 할 낯선 행동은 여러 가지 유형이 존재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흔히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의 경우 속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처럼,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보다 가까운 곳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행동에 경계심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교육에서 고민되는 것은 안전을 강조하는 나머지 타인을 불신하거나 지나치게 경직된 아이로 키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타인에게 늘 친절하게는 대하되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오히려 안전한 거리는 타인에 대한 친절을 편하게 베풀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

길을 가는 초등학생에게 자동차 운전자가 손짓을 하며 길을 묻는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아이를 다가오게 한 뒤 차 안으로 가로채며 출발해 버리는 사례가 있었다. 이런 경우에도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되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만약 어른이 잘 들리지 않으니 가까이 오라고 하거나 차에 타고 함께 가면서 알려 달라고 하면 이를 '낯선 행동'으로 인식하고 회피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진 본능적인 경계심 잘 살펴봐야

a 1991년 일어난 '이형호 어린이 유괴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영화 <그놈 목소리>

1991년 일어난 '이형호 어린이 유괴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영화 <그놈 목소리> ⓒ 그놈 목소리

'낯선 행동'을 경계하도록 가르칠 때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경계심이다. 이것은 아이들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위험신호를 감지하거나 거부감을 느낀다. 이런 경우를 놓치지 말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이야기해보고 그럴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강조하면 좋은 교육 기회가 될 수 있다.

지하철에서 유치원생쯤 되는 여자 아이를 데리고 가던 어머니에게 노신사가 아이를 자기 무릎에 앉히라고 권했다. 어머니는 사양했고 아이는 싫은 기색을 드러냈지만 노인은 아이를 데려다가 자기 무릎에 앉혔다. 노인의 단순한 호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성추행에 대한 요즘 기준을 따른다면 분명 주의해야할 '낯선 행동'이다.

만약 이 순간 어머니가 아이가 드러낸 싫은 기색을 존중해서 분명히 사양하거나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면? 또는 일단 데리고 내린 뒤 그런 상황에 대해 교육을 시켰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어머니가 그 상황을 용인하는 순간 보다 노골적인 의도를 가진 어른이 아이를 잡아 당겨 자기 무릎에 앉힐 경우 아이는 그것을 거절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져 버린다.

'낯선 행동'을 경계하고 그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가정과 부모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공교육에서도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성교육, 학교 폭력 방지교육, 소방교육과 함께 범죄피해 예방교육을 정규화해야 한다. 현재 경찰과 연계하여 비정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범죄피해 예방교육은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범죄피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주된 내용으로 삼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공교육에서 진행되는 범죄예방 피해교육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매년 3월이나 9월 새 학기가 시작될 때 교육하는 것이 예방 효과가 높다고 생각한다. 이때 가정에도 같은 지침을 담은 교육 자료를 발송하여 일관성 있는 지도가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다. 영상에 민감한 요즘 아이들 정서에 맞게 구체적 사례와 행동 지침을 담은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교육에 활용하는 것도 교육 효과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장익준 기자는 토클(TOKL, 국어능력인증시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장익준 기자는 토클(TOKL, 국어능력인증시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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