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경찰을 죽이다

[서평] 조지 펠레카노스의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등록 2007.04.10 19:56수정 2007.04.1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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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가지

미국은 백인과 흑인, 그리고 각종 인종들이 들끓으면서 사는 나라다. 흑백 간의 갈등과 인종차별은 무척이나 뿌리가 깊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안다.

워싱턴에서 한 흑인경찰이 백인경찰의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 흑인경찰은 어떤 백인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고, 사복을 입고 있었다. 백인경찰은 그가 경찰인 것을 모르고 백인을 살해할 것 같은 위기감에 그를 향해 총을 쐈다.


죽은 흑인경찰의 어머니는 아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흑인이고 전직 경찰이면서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데릭 스트레인지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이쯤 되면 사건 속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게 마련이다. 데릭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흑인경찰을 쏜 백인경찰 테리 퀸을 찾아간다.

테리는 흑인경찰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그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경찰복을 벗고 고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데릭은 백인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 흑인경찰이 아니라 백인이었다면 테리가 총을 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테리는 그게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 맞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데릭은 테리와 함께 그 사건과 관련한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숨겨진 음모가 드러난다.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테리는 어째서 흑인경찰을 쐈던 것일까? 어떻게 보면 좀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흥미 있게 풀어나가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한다.

이 소설의 핵심인물 탐정 데릭 스트레인지는 50대의 나이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애인은 있지만 구속되기 싫어서 결혼하지 않는다. 짬짬이 다른 여자를 만나 즐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애인의 아들에게는 서툰 아버지 노릇을 하면서 진땀을 빼기도 한다. 장점도 많지만 단점과 약점이 많은 남자가 바로 데릭이다. 적당히 정의로우면서 법도 스리슬쩍 어기기도 한다. 탐정이 모든 일을 법대로만 처리한다면 재미는 당연히 반감될 터.

"난 말이야, 흑인 배우들이 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지 않느냐고 <워싱턴포스트>에 투덜거리는 검둥이 놈들을 보면 웃음밖에 안 나와. 시설 부족에, 비가 새는 지붕에, 15년된 교과서…. 이런 개떡 같은 교육시설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들도 않는 거지? 아이들은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등교하는데 학교에서는 경비원당 한 명에게 500명의 안전을 떠맡기고 있다고. 시장한테 달라붙는 경호원이 하루에 몇 명이나 되는 줄 아나?"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살인사건만을 풀어내는 게 아니라 미국사회의 모순에 대해 신랄하게 짚는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워싱턴에서 태어나 주방장, 접시닦이, 바텐더, 영업사원, 건설인부 등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쌓은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리라. 이쯤 되면 추리소설은 그냥 재미 삼아 심심풀이로 읽는 소설이 아니라 사회의 밑바닥을 숨김없이 까발리는 사회소설이 된다. 덕분에 욕설과 더불어 거친 표현이 많이 나온다.

마약을 팔고 사는 사람들. 실제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범죄 집단을 그리다 보니 그 세계가 더 과장되어 보이는 것인지 모르지만 마약은 사람들의 삶의 근간을 무섭게 흔들고 있었다.


거대한 마약판매 조직과 마약의 노예가 되어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젊은 여자들과 남자들. 부패한 경찰은 그런 마약판매 조직의 하수인이 되어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등을 치면서 배를 불리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나 어느 곳에나 범죄 집단은 있게 마련이지만 마약으로 얽히고설킨 범죄집단들이 보여주는 광기는 상상만 해도 두렵다. 게다가 총기를 마음대로 소지하고 마음대로 탕탕탕 쏴대는 사회라니….

"무기 소지를 막는 거야, 전국적으로. 유예와 자수기간을 주고 그 후에도 무기를 소지하다 걸린 자들에게만 징계를 먹이면 돼. 총은 사람을 죽이는 것 말고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니까."

작가는 이렇게 데릭의 입을 빌어 무기소지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무기상이 움직이는 나라 아닌가. 만일 정치인들이 그것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것이란다. 그놈의 선거가 사람 여럿 잡는 건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는 무기소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총기사건이 안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보통의 추리소설들은 다 읽고 나면 사건이 해결되었군, 하면서 책장을 덮게 만드는데 이 책은 자꾸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게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뛰어난 문학작품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추리소설은 추리소설일 뿐이니까.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조지 펠레카노스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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