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이 없는 아프가니스탄 자전거 도로.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다닌다.오마이자전거 이원영
60~70년대 자전거 전성시대를 지나 지금 자동차 전성시대가 된 것은 우리 삶이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좀더 빠른 삶을 원하고, 좀더 편리함에 기울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공간을 원하는 문화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책에도 나오지만 그 시절 대한민국은 참 가난했다. 오죽하면 자전거만 있어도 부유하다고 했을까. 가장 주요한 수송수단인 자전거를 몰고 서울에서 군포로, 용인에서 서울로 짐을 옮기던 '성국이 삼촌' 이야기가 책엔 나온다.
일제시대 뛰어난 혁명가인 이관술은 짐자전거에 항일 유인물을 싣고 대구, 마산, 함흥, 청진까지 내달렸다. 이관술에 대한 추억을 꺼낸 이는 소설가 안재성이다. 그는 이관술과 경제성장기 짐자전거 하나로 청계천을 누비던 노동자들의 삶을 대비시킨다. 안재성에게 자전거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부와 인권의 밑거름이 된 노동자들의 땀을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단어는 '짐바리'다. 커다란 방석 한 개를 철판으로 짜 놓은 듯한 안장 뒤 뒷좌석이 있는 '짐바리'는 짐자전거의 애칭이었다. 몸체의 삼각 구조물은 팔뚝만큼 굵은 강철 파이프였고, 바퀴 휠이나 살도 굵고 무거웠다. 여기에 사람들은 쌀가마니를 얹었으며 200근이 넘는 돼지도 실었다.
당시 '짐바리'는 지금의 트럭이었으며, 아이들 둘 셋은 거뜬히 실어 나르는 자가용이었으며, 아픈 환자 긴급히 옮기는 앰뷸런스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무지막지한 짐바리를 어린 꼬맹이들이 타고 다녔다는 점이다. 단 이 때는 기술이 필요한데, 왼발만 왼쪽 페달에 걸치고 타다가 속도가 붙으면 재빨리 안장 위에 올라탄 뒤, 오른발을 넘겨야 한다. 멈출 때는 자전거를 기울이면서 재빨리 한쪽 발로 지지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전거와 함께 그대로 '꽈당'이다. 아이들의 '무모한 도전'이 가능했던 시절이 바로 짐바리 전성기다.
저자들에게 아무래도 자전거는 '현재'보다는 '과거'의 것이다. 자전거에 관한 아름답고 행복한 경험은 대부분 옛 일이다. 지금 자동차에 점령당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탄 이들은 대부분 공포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한 때 탔지만, '지금은 도저히 못 타겠다'고, '아이한테 차마 타라고 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과거 자전거는 낭만이었지만, 지금 자전거는 '전투'다.
그 점에서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자동차와 전투에 나서기보다는 과거 자전거가 도로를 누볐던 시절의 '추억'에 기댄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이란 제호에서 '추억'의 냄새가 '폴폴' 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답이 없는 것인가. 자전거는 '추억'이 되어 아름답게 퇴장하면 되는 것인가.
자동차에 점령당한 도로, 어떻게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