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안 맞는 정부의 빈곤층 주거대책

[비닐하우스촌에서 일주일 ④] 지자체 "전입신고 허가 권고는 권고일 뿐"

등록 2007.04.25 00:19수정 2007.05.08 12:15
0
원고료로 응원
수도권 지자체들은 비닐하우스촌 거주민들의 전입신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주소지 인정 문제로 생활에서 여러 가지 불편을 겪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경기도 과천 꿀벌마을 등 5개 비닐하우스촌에서 직접 1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취재해 발로 쓴 '도시빈민현장보고서'를 4차례로 나눠 보도한다. <편집자주>
a 서울 서초구 양재천변 뚝방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4월 18일 관할 동사무소에 전입신고서를 제출했으나 "개발제한구역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저촉돼 불법건축물인 비닐하우스는 철거대상이며 따라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주민등록은 불가능하다"는 설명과 함께 주민등록 등재를 거부당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천변 뚝방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4월 18일 관할 동사무소에 전입신고서를 제출했으나 "개발제한구역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저촉돼 불법건축물인 비닐하우스는 철거대상이며 따라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주민등록은 불가능하다"는 설명과 함께 주민등록 등재를 거부당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투기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비닐하우스 주민연합'(공동대표 김한수·김형선, 아래 주비연합)이 올해를 '주소지 찾기 원년의 해'로 정하고 지금까지 없이 살았던 주소지를 찾아 나섰지만, 동사무소 등 지방자치단체의 태도는 완강하다.

주거용지가 아닌 곳에 세워진 불법 건축물이기 때문에 전입신고를 받아줄 수 없다는 것. 비닐하우스 지역의 주소지를 인정하면, 무허가 주거지가 급격히 증가해 철거 시 비닐하우스 등 지상물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18일 뚝방마을 주민 홍아무개씨가 전입신고를 위해 30여분 동안 담당자와 실랑이를 벌이자, 담당자는 "10년 동안 아무 말 없이 사시다가 철거 계획이 세워지니 왜 이제 와서 주소지를 달라고 하느냐"고 반박했다.

지자체 "권고는 권고일 뿐"

하지만 정부에서 비닐하우스촌 주민의 전입신고를 항상 불허한 것은 아니다. 2004년 9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가 빈곤층 집단거주지역 지원대책의 하나로, 각 지자체가 전입신고를 받아주도록 행정자치부를 통해 요청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지난해 8월 서초구청장을 상대로, 실거주자의 전입신고를 받아줄 것을 권고했다.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전입신고에 대한 정부의 방침에 일관성이 없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지난달 12일 제기한 진정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삶의 불편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정부나 지자체가 노력해야 한다"며 주소지 인정에 힘을 실었다.

게다가 2001년 송파구 개미마을 주민들이 송파구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전입신고 노력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a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에 있는 아랫성뒤마을에 4월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가건물 10채를 모두 태우고 40여분 만에 꺼졌다. 주민들은 재차 있을지도 모를 화재사고 등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에 있는 아랫성뒤마을에 4월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가건물 10채를 모두 태우고 40여분 만에 꺼졌다. 주민들은 재차 있을지도 모를 화재사고 등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4월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아랫성뒤마을. 하루 아침에 거처를 잃은 주민들은 관련 단체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임시 거처를 세우고 있다.

4월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아랫성뒤마을. 하루 아침에 거처를 잃은 주민들은 관련 단체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임시 거처를 세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하지만 해당 지자체의 전입신고 불가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장동철 과천동장은 "꿀벌마을은 그린벨트 지역으로, 농지 외의 주거용 시설은 허가할 수 없다"며 "종전까지 화훼를 위한 주거 정도만 인정할 뿐, 단순 주거용 주택의 전입신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등의 방침에 대해서는 "권고한 것"이라면서 "자치단체는 복합적 상황을 고려해야한다"고 반박했다.

장 동장은 "주소지를 허용할 경우, 비닐하우스 소유주들이 일부 분양하는 등 주민등록을 (투기 목적으로) '역이용'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어렵게 살고 있는 주민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투기 잡으려다 주민들 주거권 잡는다?

이에 대해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은 "일부 세력의 투기 때문에 주민 불편을 방치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임근정 주거연합 공동대표는 "투기 세력을 우려해 주민의 전입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당국의 역할을 저버린 처사"라며 "투기 세력 단속은 지자체가 아니라 다른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임 공동대표는 "해당 지자체에서는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서울 도심 개발로 밀려난 어려운 사람들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들의 주거권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꼬집었다.

a 서울 서초구 양재천변 뚝방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4월 18일 관할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사람이 사는데 왜 주소지를 인정하지 않느냐"며 항의농성을 벌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천변 뚝방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4월 18일 관할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사람이 사는데 왜 주소지를 인정하지 않느냐"며 항의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금전적 보상에 앞서 안정된 주거권을"
도시 빈민 위한 주거 대안 없나

"비닐하우스촌에서 나가고 싶죠. 3년만 살고 나가려고 했는데, 13년을 살았네…." (웃음)

경기도 과천 꿀벌마을 주민 김금순(47)씨는 비닐하우스촌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김씨는 요즘 비닐하우스 집의 주소를 찾기 위해 전입신고를 시도하는 한편, 행정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김씨와 마찬가지로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은 안정된 주거지를 확보하고 싶어 하지만, 다들 돈 문제에 부딪쳐 있다. 2005년 화재로 집이 불 탄 후 2천만원을 들여 새로 지은 비닐하우스 집에 대해 지상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천에 4인 가족이 머물만한 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주민들의 주소지 찾기 운동을 '금전적 보상' 문제로만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지자체들은 "비닐하우스 소유주들이 분양하는 등 투기 목적으로 주민등록을 '역이용'할 수 있다"며 전입신고를 허가하지 않지만, 주민들은 보상에 앞서 안정된 주거권을 요구한다.

이춘숙 꿀벌마을 주민대표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거권"이라며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집을 제공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을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도시 개발에 밀려 과천 비닐하우스촌까지 왔는데 또다시 빈털터리로 쫓겨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

이 대표의 경우, 1986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신동아아파트가 들어설 때 철거를 막기 위해 싸웠다. 결국 8평짜리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았지만, 최소 평수가 16평인 탓에 임대주택은 '그림의 떡'이었다. 결국 봉천동, 신림동 달동네 등을 거쳐 과천 비닐하우스촌에 들어왔다.

이 대표는 "살고 있던 집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더 피폐하게 만들 뿐"이라며 "집 없는 사람들을 밀어내기만 하다가 나중에는 섬으로 몰아넣을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박순석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선교사는 "주거권 문제는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정부가 관련 규정 개선 등 주거 빈곤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매입임대주택이나 전세임대주택 등과 같이 정부가 쓰지 않는 국·공유지를 주거 빈민층에 일률적인 가격으로 장기 임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또한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 저가에 집을 임대할 수 있도록 '자조형 조합주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