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대통령선거, 정족수 논란... 조기총선으로 가나

군부 기자회견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까지

등록 2007.04.29 16:17수정 2007.04.3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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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중심제를 표방한 터키에서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 원수로, 국회의 간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긴 하지만, 법률안 거부권, 국회해산권 등의 중요한 사안에 결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27일, 터키 국회는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으나 1차 투표에서는 선출에 실패했다. 현 다수 집권당인 AKP 당수이자 수상인 타입 엘도안은 대통령 출마의 뜻을 비췄지만 야당과 군부의 반대는 물론 30만명이 넘는 대규모 국민 반대시위 등의 여론에 밀려 마침내 뜻을 접었다. 그리고 당내 2인자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압둘라 귤 부수상 겸 외무부 장관을 여당의 단독 후보로 발표했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압둘라 귤 후보에 대하여도 반대 여론은 마찬가지였다. 이 두 사람의 이슬람적인 성향이나 정치 배경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여당은 선거에 미칠 여론의 반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 후보자 발표를 선거일을 불과 2일 앞둔 시기에 전격 발표하는 등 나름대로 금번 대통령 선거로 인한 문제 야기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의 선출에 필요한 의결 정족수는 총 542석 중 367석. 집권당의 의석 수는 353석으로 14석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당은 야당의 참여와 지지를 호소했으나 단 한곳의 지지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또 무소속 의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지만, 금품 제공 등의 뒷거래가 있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결국 1차 투표에서 여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못한 가운데, 몇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첫째는 1차 투표 참석 의원수 문제. 이는 투표 자체의 적법성 문제와 닿아 있다. 투표를 위해 참석한 의원 수는 361명으로, 이중 357표를 얻어 정족수인 367석을 채우지 못해 2차 투표로 넘어가게 됐다. 그런데 사회를 본 다수당 AKP 소속 국회의장은 선거 후 개표 사항을 점검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온 7명의 야당 의원들을 향해, 본회의장 문을 넘어선 이상 투표에 참가한 것으로 간주한다며, 총 투표 참가자 수를 368명으로 발표했다.

야당은 의결 정족수인 367명 이하로 참석한 1차 투표 자체가 원천 무효이며 이 문제를 법원에 제소한 상태이다. 이것이 무효로 판결이 날 경우, 현 정부는 해산하고 조기 총선으로 가야 할 형편이다.


둘째는 군부의 공식 의견 표명이다. 군부는 1차 투표가 끝난 지 5시간 20분 만인, 밤 11시 20분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군부는 "이번 대통령 선거의 상황이 터키 공화국 설립의 주역인 국회의 역할로는 부적절한 면들이 있다는 점과 터키는 헌법에 의해 비종교적 세속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군부는 세속주의 대통령이 선출될 것을 기대한다"라는 강한 의견을 발표했다.

그리고 집권 여당은 긴급 수뇌부 회의를 통해 이를 즉각 반박하는 정부측 의견을 발표했다. 타입 엘도안 수상도 뷰육 아느트 군 총사령관에게 유감의 뜻을 표함으로써 정국을 긴장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집권 정부여당과 군부와의 갈등이 표면화된 가운데, 4월 29일 오후 2시(현지시간)에 이스탄불의 시내 중심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대규모 반 정부 데모가 예정되어 있다.

선거 전에 터키 사람들은 앙카라에서 약 30만명이 운집해 타입 엘도안 수상의 대통령 출마를 반대했던 집회를 열었다. 이어 "이제는 이스탄불 차례"라는 슬로건을 걸고 수십만의 인파가 터키 국기와 플래카드 등을 준비하고 집결할 예정이라 현 정부의 고민과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번 이스탄불 대중 집회는 정당 등 정치단체나 노동조합 등의 단체들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이루어지며, 이 단체들의 리더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란 점이다.

이제 터키의 정국은 대통령 선거를 떠나 조기 총선거로 달음박질치는 듯하다. 여당(AKP)도 야당(CHP, ANAP, DYP, DSP 등등)들도 이미 조기 총선을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제 조국당(ANAP) 당수인 엘칸 뭄쥬는 기자 회견을 갖고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다. 내일이라도 총선을 실시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터키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론 터키는 민주공화국 체제를 표방하고 있으니 국민이 주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운영해 나가는 주체 세력은 행정부인가, 입법부인가, 사법부인가… 아니면 군부인가?

터키는 1923년 무스타파 케말 장군에 의해 공화국으로 선포된 이후, 대통령제를 거쳐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세차례(60년, 71년, 80년)의 군사 쿠데타를 경험했을 만큼 정치가 부패하고 사회가 안정되지 못했다. 정치와 사회가 불안할 때마다 쿠데타를 통해 정치의 전면에 나선 터키의 군부는 과연 어떤 세력인가.

터키는 부족간의 싸움과 전쟁을 통해 승리만이 삶을 보장해 주는 유목민의 전통을 통해 군인들에 대한 예우가 늘 있어 왔다. 특별히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말미암아 잃었던 나라를 무스타파 케말 장군이 영도한 군인들에 의해 오늘날 터키 공화국으로 회복하였다는 점 등으로 군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

특별히 지난 세차례의 쿠데타 등 군부가 정치에 직접 개입한 사건들을 통해서도 군부는 정치와 사회의 안정을 회복한 후 군으로 복귀하여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 왔다. 게다가 단 한번도 군부 내 하극상 등의 문제가 없이 질서 정연한 규율과 권위를 보여 주었기에 국민들의 전반적인 신뢰를 형성 하고 있다.

터키공화국의 헌법은 "종교의 정치 참여를 막고, 개혁을 추진해 나가는 세속적 터키 공화국을 수호하는 임무"를 군부에게 부여 했는데 이 조항은 추후에도 개정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처럼 터키를 종교적 정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세속적 개혁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군부에게 맡겨진 지상 명령이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 직접 개입, 쿠데타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터키의 헌법 제도와 정치 체제가 우리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터키 국민들은 현 상황에서는 조기 총선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며, 만일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정변이 난다고 해도 그다지 크게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종교 세력의 정치 참여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고, 군부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아직 국민들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염려하는 듯한 혼란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미 몇 차례 군부의 견제를 받았고 또 군부와의 정면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현 정부의 태도를 보면 조기 총선 및 다소간의 정치적 동요 사태는 감수해야 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월간조선 해외통신원을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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