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놀이 벗어난 <조선> 경제
삶에 밀착하니 기사가 재미있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꼭지 조간신문 리뷰

등록 2007.05.02 12:21수정 2007.05.0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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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 은행 고객이 현금인출기를 이용해 인출한 현금을 세어보고 있다.

한 은행 고객이 현금인출기를 이용해 인출한 현금을 세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은행 수수료 때문에 열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잠시 망설였다. 이 소식을 들으면 더 열 받을 게 뻔 하므로.

<조선일보>는 오늘 '귀족 현금인출기'에 관한 소식을 실었다.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않는 자동입출금기에 관한 소식이다. 어디에 그런 게 있느냐고? 있다. <조선일보> 5월 2일자 '청와대·국회에는 '귀족현금인출기'가 있다(김정훈 기자)'에 그 자세한 소식이 나온다.

공짜 현금인출기는 청와대와 정부 중앙부처, 국회 등에 있는 농협 자동입출금기 가운데 일부다. 이 기사에 따르면 국회에 13대, 정부 과천청사에 22대, 정부 대전청사에 18대, 정부 세종로 청사에 15대, 청와대 비서실에 1대가 설치돼 있다.

대우도 파격적이다. 영업시간뿐만이 아니라 영업시간 외에도 이용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거래은행이라고 해도 영업시간이 지나면 고객 신용등급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뿐만 아니다. 이들 '귀족 현금인출기'에서는 다른 은행 계좌의 돈을 인출해도 공짜다.

농협 관계자들은 이렇게 해명했다.

"신용도 높은 공무원을 유치하기 위한 일종의 영업 전략이다. 정부 종합청사에 입주했을 때부터 수수료를 계속 면제해주고 있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는가?


굳이 첨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열받는 분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영업전략 차원에서 그렇다면 차별대우 받는 이용자들도 이용자 차원에서 자구적 대응을 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굳이 그 '정답'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억원 품은 400㎏ 하마, 은행의 효자

a 은행 현금인출기에 대해서 쓴 2일자 <조선일보> ''수수료 먹는 하마'라고 발로 차지 마세요' 기사.

은행 현금인출기에 대해서 쓴 2일자 <조선일보> ''수수료 먹는 하마'라고 발로 차지 마세요' 기사. ⓒ <조선일보> PDF

오늘 <조선일보>의 이 기사에 주목하게 된 것은 비단 열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일보>가 최근 경제섹션에서 잇달아 선보이고 있는 '생활 밀착형 경제기사'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오늘 기사도 '수수료 먹는 하마(김정훈 기자)'라는 경제 섹션 기사의 '파생 기사'다. '자동입출금기가 본 세상 풍경'이라는 팻말이 붙은 이 기사는 자동입출금기기가 주인공이 돼 자신의 모든 것을 까발리고 있다. 자동입출기가 밝힌 신상 명세를 보자.

몸무게 400㎏. 강철 현금박스 4개. 최대 탑재 능력 지폐 2500장, 수표 1000장. 도합 2억원. 1회 최고 현금출금 액수 70만원. 현금 출금시 수수료 0원(영업 시간 내 거래은행 입출금기)에서 최고 1200원(타행 입출금기 이용). 이체 수수료 0원(영업 시간 내 거래은행 입출금기)에서 최고 2000원(100만원 타행으로 이체시), 은행 수익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효자 서비스….

이렇게 벌어들인 수수료 수입이 지난해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당기순이익 합계는 6조 5917억원 가운데 38%(2조5348억 원)이나 차지했다. 자동입출금기기를 통해 금융사기를 치는 사람이 많아 "1회 인출한도를 70만원보다 낮추겠다는 것이 정부 복안"이다.

<조선일보> 김정훈 기자는 이를 두고 "벼룩의 간까지 빼 먹으려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1회 인출한도를 줄인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들지도 의문이고, 수수료가 함께 줄어들지는 더 더욱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문을 넘어야 카드 해지 성공

<조선일보>는 지난 4월 27일자 신문에서는 '속 터지는 카드 해지' 체험기(정철환 기자)를 실었다. 기자가 직접 3개의 금융기관에서 발급받은 카드를 해지하는 과정을 기록한 체험기다. 그렇게 해서 밝혀진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해당 금융기관 인터넷 사이트에는 '카드 해지' 메뉴가 아예 없다. 콜센터를 통하는 방법이 있는데, 여기에도 관문이 한두 개가 아니다. 주민등록번호, 카드번호를 치고 나면 여러 가지 메뉴안내 목소리가 나오지만 그 어떤 곳에도 카드 해지 메뉴는 없다. 마지막 비상구는 '상담원 연결'. 그러나 상담원 연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7분 이상.

상담원이 연결돼도 관문은 아직 많다. 상담원들의 끈질긴 회유가 이어진다. 온갖 회유를 뿌리치고 카드 한 장 해지하는 데 20분이 걸렸다. 다른 데도 마찬가지.

이처럼 카드 해지가 힘든 것은 "새 카드 고객을 유치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2006년도 기준 4만5000원)에 해지를 원하는 고객을 가능한 한 붙잡아 두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부턴가 신문의 경제면은 모든 것을 수치로 계산하는 통계 기사 아니면 신상품 홍보 기사로 도배되고 있다. 여러 신문들이 나름대로 생활 밀착형 경제 기사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생활 주변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경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는 <조선일보> 생활밀착형 경제기사가 눈에 띄는 이유다.

a 4월 27일자 <조선일보>의 신용카드 해지 체험기 기사.

4월 27일자 <조선일보>의 신용카드 해지 체험기 기사. ⓒ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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