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은 정치인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꼭지 조간신문 리뷰

등록 2007.05.04 13:36수정 2007.05.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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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5월 4일 신문 정치면의 화두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혹은 범여권)', '한나라당 경선 규정 논란(여론조사 20%'), 그리고 '문국현'으로 압축된다.

이 가운데, 정운찬 서울대 교수가 중도 탈락한 뒤 제3지대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어제(3일) 기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은 듯하다. <경향신문>과 <세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기자들이 일제히 문 사장과 전화 인터뷰를 하거나 분석 기사를 실었다.

문 사장은 어제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대선 출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출마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둔 것은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느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그렇다"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경향신문>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더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됐다. 정치를 한다면 새 술을 담을 '새로운 부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중앙일보>와의 회견에서 문 사장은 "기존 정당에 대해 국민은 희망을 버린 것 아니냐, 시민사회 쪽의 주류는 기존 정당이나 정치인 중심으로 모여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기존 정치세력과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경향신문>도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해결방안을 옛날 것에 같이 묻혀서 하다 보면 제대로 깊이 있는 토론이 일어날 수 없다"고 문 사장의 견해를 전했다.

<경향신문>은 한 시민사회 인사의 말을 인용해 "문 사장을 범여권 후보로 분류하는 것은 허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사장이 나서더라도 새로운 세력, 새로운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전망일 수 있다.

대선은 총선의 전초전일 뿐?


이와 관련돼 주목되는 것은 오늘 <경향신문>의 대선 정국 분석 '총선본색'(최재영·이기수·이주영 기자) 기사다. 한나라당이나 범여권이나 말로는 '대선'을 외치고 있지만 속내는 온통 '총선'에 기울어 있다는 분석이다. 당장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다는 이야기다. 대선은 그 전초전일 뿐이라는 분석이다.

한나라당부터 살펴보자.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높은 영남을 비롯해 수도권 등지에서는 친이(이명박)-친박(박근혜)에 줄을 선 의원과 원외 당원협의회장 간의 총선을 겨냥한 '전투'가 치열하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기면 공천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설(私設)위원장'까지 출현했다. 원외이거나 사고 지역구에서 이 전 시장 혹은 박 전 대표의 내락을 받았다며 '당원협의회장'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두 주자의 경선 참모들 역시 지역구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이 기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한나라당의 분당 가능성. "역설적이지만 공천과 총선 때문에 분당은 없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탈당 시 분열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놔두더라도 한나라당 간판 없이 당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전 시장이 이재오 최고위원의 사퇴를 만류하고 잔류시킨 것도 <경향신문>의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간판이 필요한 의원들과 의원 지망생들을 끌고 가지 않고서야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통합신당모임과 민주당의 결합이 무산된 후 나온 이야기가 바로 '총선' 때문이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열린우리당이 당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식물정당'이 된 것도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대선은 물론 총선에서도 의원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경향신문>은 범여권의 갈지자 행보를 '대선은 낮, 총선은 밤'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했다. 낮에는 다들 대선 승리를 위해 여러 가지 방안들을 내놓고 고민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다음 총선 때 자신들의 의원직과 자리를 어떻게 챙길 수 있느냐를 두고 절치부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신당창당(통합신당모임), 교섭단체(민주당), 국회의원 5석(국민중심당)을 1차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각 정치집단이나 우리당 지도부가 '수성'의 벽을 치고 있는 것 모두 총선을 겨냥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a 당장 대선보다 총선 '밥그릇 챙기기'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정치권.

당장 대선보다 총선 '밥그릇 챙기기'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정치권.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문 사장, 남은 인생을 걸 의지 있나

그러고 보면 문 사장이 대선에 뛰어든다고 해도 기성 정치판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문 사장이 <경향신문>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민사회 쪽에서 9, 10월께 새로운 정당을 만들면 합류 여부는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라고 본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

문 사장은 과연 대선에 출사표를 던질 수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민사회 쪽에서 새로운 정당을 잘 만들어 가느냐, 국민의 공감을 받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문 사장을 정치적으로 돕고 있다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문 사장 혼자에게만 결단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문가, 경제인들의 결단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경향신문> '시민사회 등 결단만 해주면…대선행보 열리는 '文'').

과연 시민운동 세력은 국민의 공감을 받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힘과 역량, 비전을 갖추고 있는 걸까? 총선에 올인하고 있는 기성 정치인들의 벽을 넘고, 그들까지 흡인할 수 있는 강력한 그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정운찬 서울대 교수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 성한용 <한겨레> 기자는 해설기사에서 "정치는 정치인들의 몫"이라고 결론 낸 바 있다. "정치의 문외한들이 '참신하다'는 이유만으로 지역구도, 간판, 요행수에 기대어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고도 평했다. "권력은 집요한 사람들이 차지한다"는 진단도 덧붙였다(<한겨레> 5월 1일자 1면 머리기사 '정운찬 불출마…도전과 좌절').

꼭 성한용 기자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권력은 강력한 권력 의지 없이는 도전할 수 없다. 요행수도 없다. 정치가,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접으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이번이 아니라면 다음 기회를, 또 끝내 그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열정과 신념을 투신해 밀고 나가는 것이 정치의 본령일지 모른다.

그래서다. 누구보다도 문 사장은 지금 당장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정치를 할 것인가?

자신의 비전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남은 인생을 정치에 걸 것인가?

성공과 실패는 그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백병규 #미디어워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조간신문리뷰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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