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자유로운 예술가의 초상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5월24일까지 '이응노전'

등록 2007.05.10 14:49수정 2007.05.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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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입구 고암 '이응노전' 홍보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입구 고암 '이응노전' 홍보물 ⓒ 김형순

대전 이응노미술관 개관에 맞춰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도 5월24일까지 '이응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사망 직전 89년도 작품을 포함, 70, 80년대 작품 위주로 먹으로 그린 대나무그림 묵죽화(墨竹畫)를 비롯하여 구상계열에서 전위적 문자추상, 군상 연작, 세라믹 작품까지 총 60여점을 선보인다.

고암 이응노를 다시 회고해 보면 그는 정말 자유로운 예술가의 초상 그 자체이다. 미술사가 김미경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가의 강제력과 세월의 나이와 예술의 틀과 사회적 위치에서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결국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로웠고 그래서 그의 예술은 모든 것에서 홀로 서 있었다."


고암은 충청도 홍성에서 태어나 십대를 그곳에서 보냈고 김규진(1868~1933) 문하로 들어가 서예와 사군자를 익혔다. 오십년 말 프랑스로 건너가 동양의 서예정신과 서양의 콜라주작업을 혼합하여 독자적 예술을 구축했다. 1989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그의 실험과 도전은 끊이지 않았다.

a '이류볕을 즐기는 남녀' 한지에 수묵담채 69×67cm 1975. 고암의 보기 드문 구상계열 작품으로 그의 특이한 유머감각이 돋보인다

'이류볕을 즐기는 남녀' 한지에 수묵담채 69×67cm 1975. 고암의 보기 드문 구상계열 작품으로 그의 특이한 유머감각이 돋보인다 ⓒ 가나아트센터

흔히 이응노의 삶을 격동의 한국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67년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2년 반 옥고를 치렀고, 1977년 백건우 윤정희 납치사건 등에 휘말려 국내에서는 금기인물로 낙인찍혔다. 시대의 갈등과 모순 속에서도 치열하게 싸우며 살았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그가 진정한 예술가이고 자유인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밥풀과 종이를 짓이겨 인물조각을 빚었다. 또 녹슨 못을 주어다가 양은식기와 세면기에 구멍을 내는 설치작품을 만들었고, 휴지에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작가자신도 언급한 바 있지만 20대는 사군자, 전통화의 기초를 닦았고, 30대는 구상 경향을 보였다. 40대는 형식보다는 정신과 내용에 치중하는 반추상 경향을 띠었고, 50대 유럽으로 이주 후 수묵추상과 콜라주작업을 시작했다. 그 후 60년대 10년간 문자추상을, 말년에는 민족의 통일무인 '군상' 연작을 그렸다.

a '구성' 한지에 수묵담채 33×32cm 1973. 고암의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동심을 엿볼 수 있다

'구성' 한지에 수묵담채 33×32cm 1973. 고암의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동심을 엿볼 수 있다 ⓒ 김형순

노년의 천진난만한 고암의 웃음처럼 그의 그림 속에서 때 묻지 않는 순수한 동심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위의 '구성'이라는 작품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 자신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나이가 드니 동심의 세계가 그리워진다. 순박하고 순진한 것의 표현, 내 그림에는 글과 그림 사이로 부유하는 형체로 메워져 있다. 그것은 말 이전의 동심의 세계이다. 원색에 가까운 단색 그리고 꽉 메운 면으로 순박함을 나타내고 싶다."

a '죽엽무(竹葉舞)의 시필(試筆)' 한지에 수묵담채 66×68cm 1979. 사군자 중 하나인 대나무그림을 이렇게 날렵한 바람처럼 그리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죽엽무(竹葉舞)의 시필(試筆)' 한지에 수묵담채 66×68cm 1979. 사군자 중 하나인 대나무그림을 이렇게 날렵한 바람처럼 그리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 김형순

동양화 사군자 중 하나인 대나무그림은 고암에게 역시 중요한 장르다. 독창적 안목과 번뜩이는 재기로 그린 한문 투의 제목 '죽엽무(竹葉舞)의 시필(試筆)', 이를 '춤추는 댓잎을 위한 드로잉'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여튼 그의 천재기는 이런 그림에서 여실이 드러난다.


이런 화풍은 격렬한 춤과 율동을 연상시킨다. 잠시도 어느 곳에 머물 수 없고 앞으로 나갈 방향도 예측불허라고 할 수 있다. 걷잡을 수 없는 격정과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리는 기운 그리고 펄펄 날 것 같은 생동감이 그림에 넘친다.

고암의 색감은 한국적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은은하고 깊이 있는 것들이 그 주조를 이룬다. 또한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견디어낸 색 바랜 연두색, 누런 황색, 낡은 갈색, 짙은 보랏빛, 묵은 포돗빛. 고색창연한 감청색 등을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고암의 그림에 나타나는 형태는 우리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활활 불타는 듯 열정적인 움직임과 고대 상형문자에서 보는 것 같은 반추상이미지, 자연에 기를 불어넣는 것 같은 형상이 많다. 그리고 어린 시절 월산과 용봉산에서 본 올빼미, 새색시, 늙은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모양의 바위를 그림 속에서 형상화했다고 한다.

a '구성' 한지에 채색 33×24m 1971. 일종의 문자추상으로 그림과 글씨가 합쳐져 전혀 색다른 조형성을 선보인다

'구성' 한지에 채색 33×24m 1971. 일종의 문자추상으로 그림과 글씨가 합쳐져 전혀 색다른 조형성을 선보인다 ⓒ 김형순

문자추상은 그의 미학의 백미로 자유로운 필치와 은은한 색, 한글자모를 들어내듯 감추듯 공간구성의 조화와 대비가 기막히다. 또한 그림과 글씨가 서로 얽히고설키며 발하는 독특한 테두리선과 입체적 면의 위력이 대단하다. 여기다가 그는 동양의 서예정신, 문인화 전통과 서양의 콜라주형식을 혼용하기도 한다.

'군상' 연작, 말년에 열정

a '군상' 한지에 수묵 166×273cm 1986. 사람과 사람 사이, 그 따뜻한 온기와 유대감을 느끼게 해 준다

'군상' 한지에 수묵 166×273cm 1986. 사람과 사람 사이, 그 따뜻한 온기와 유대감을 느끼게 해 준다 ⓒ 김형순

고암은 1989년 죽기직전까지 '군상' 연작에 온 열정을 불태웠다. 이 연작은 1964년에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 들어서 본격화되었다. 초기 그림엔 서너 명 정도의 사람만 등장하더니 1980년 광주이후 더 사람들이, 1985년 무렵부터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군중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고암의 '군상' 연작은 자유를 갈망하여 자신을 잡아당기고 있는 모든 억눌림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격렬한 몸부림도 엿보게 한다. 군중의 힘이 해일처럼 일어날 것 같고, 역사의 큰 물결이 파도치듯 몰려올 것 같다.

a '군상' 한지에 수묵담채 66×68cm 1986. 화가의 무기는 그림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전투신명이 넘치는 독특한 군상도

'군상' 한지에 수묵담채 66×68cm 1986. 화가의 무기는 그림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전투신명이 넘치는 독특한 군상도 ⓒ 김형순

이 연작은 고암의 이런 말을 연상시킨다. "화가의 무기는 바로 그림이다. 옛날부터 예술가들은 권력자에게 봉사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왔다. 그러나 현대의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굳게 지키며 민중들 편에 서야 한다."

미술평론가 김준기는 "익명의 군상들이 어우러져 화합과 생명을 노래한 '반전평화'의 메시지 안에도 그의 예술가적 통찰력과 세계사적 보편성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평했다.

이번 전에서 두루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겠지만 고암은 전통의 창조적 계승과 다양한 모색과 시도를 통해 동양화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독창적인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는 유럽미술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고 특히 콜라주작업과 조각, 태피스트리(여러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판화 등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a '구성' 36×36cm 연도미상. '구성' 28×39cm 연도미상. '구성' 34×34cm 1980. 고대 상형문자을 연상시키는 세라믹 작품

'구성' 36×36cm 연도미상. '구성' 28×39cm 연도미상. '구성' 34×34cm 1980. 고대 상형문자을 연상시키는 세라믹 작품 ⓒ 김형순

이런 면에서 그의 고백은 타당하다. "나의 창작생활은 50여 년을 통하여 똑같은 수법의 되풀이를 싫어하며 항상 자신이 하던 일을 깨뜨리는 습성이 현재도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으리라 여겨진다."

이번 전에서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세라믹 작품들이다. '운보전'에서도 그랬지만 동양화계통 전시회에서 회화작품과 함께 흔히 전시되곤 한다. 고암의 세라믹은 고대 상형문자가 연상시켜 관객들을 꿈같은 원시세계로 빠지게 한다. 그의 기백과 융화정신이 이런 세라믹에 고스란히 남아 오래 빛날 걸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덧붙이는 글 | '가나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97  전화 02)720-1020 www.ganaart.com
전시장소: 가나아트센터 1,2 전시실(평창동) 일시: 2007년 5월3일~5월24일

덧붙이는 글 '가나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97  전화 02)720-1020 www.ganaart.com
전시장소: 가나아트센터 1,2 전시실(평창동) 일시: 2007년 5월3일~5월24일
#고암 이응노 #문자추상 #군상 연작 #콜라주 #사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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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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