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노조를 허하라"
골리앗을 향한 다윗의 외침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들, 삼성 상대로 복직·노조설립 투쟁 선포

등록 2007.05.07 19:50수정 2007.05.0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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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삼성SDI 하청업체인 하이비트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 투쟁단과 함께 삼성의 이른바 '무노조 경영'을 비판하고 있다.

삼성SDI 하청업체인 하이비트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 투쟁단과 함께 삼성의 이른바 '무노조 경영'을 비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년 1개월 동안 일하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과 횟수 등을 체크해 한달 동안의 통계치를 벽보로 만들어 붙였다. 이에 항의하자, 사측은 '물량이 늘었는데, 나가서 노는 인력이 많다'고 말했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동안 화장실에 제대로 가지도 못해 많은 사람들이 방광염에 걸렸다." (노경진 삼성 코레노 민주노조추진위원장)

"지난 1986년 입사 이후 삼성SDI는 IMF 외환위기(1998년) 때 사내기업정책을 추진, 1호 사내기업 영성전자를 만들었다. 당시 계속적인 사업과 고용 안정 등을 약속하면서 '사내기업 취업규칙'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지난해 느닷없는 강제 계약해지 통지서를 보니, A4 13장짜리 '사내기업 취업규칙' 문서는 미끼일 뿐이었다." (함선주 삼성SDI 사내기업 비대위원장)

삼성의 '무노조 경영 신화'는 깨질 것인가. 삼성 비정규·사내 하청 전환업체 노동자들이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섰다. 모두 삼성으로부터 부당 해고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울산SDI 사내기업 등 3개 지역 50여명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삼성을 상대로 복직을 요구하면서 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에 '반기'를 든 이유는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 현장을 바꾸기 위해 노조 설립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해고 통지를 받고 '골리앗' 삼성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7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국내 일류 기업 삼성의 노동 현실을 고발했다.

"삼성에서 노조 만들기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a 노경진 삼성코레노 민주노조추진위원장이 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의 이른바 '무노조 경영' 지침 아래 행해지는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노경진 삼성코레노 민주노조추진위원장이 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의 이른바 '무노조 경영' 지침 아래 행해지는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노경진 위원장의 경우, 지난 2004년 9월 삼성 코레노(LCD 편광 필름 납품업체)에 입사해 외관검사 파트에서 일했다. 그는 맘 편하게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던 당시를 떠올리며 "한 라인(20명)에서 한사람씩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회사의 눈에는 생리적 현상 때문에 화장실을 가는 시간까지 노는 것으로 보였느냐"고 따져 물었다.


노 위원장은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것도 모자라 휴일 특근까지 해야 했다"며 "한달에 특근 50%를 채우지 않으면 다음달로 이월되고, '근무태만'으로 분류돼 부서장과의 면담을 했다"고 말했다. 여성 근로자들은 법으로 보장된 생리휴가도 제대로 쓸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현장을 바꾸기 위해 노조를 세우기로 결정했지만, 삼성에서 노조를 만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회사는 노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남편에 대해 신원조회를 하는가 하면, '왜 노조를 만들려고 하느냐, 묵묵히 일만 하면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엄청난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회사는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는 점을 이용, 노동자 몇 사람을 회사쪽 사람으로 만들어 지난해 6월 '종이노조', '어용노조'를 신고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노조를 결성하려는 우리들이 면담에 불려 다니는 동안, (회사쪽 사람) 4명이 우선 노조 설립신고를 했다"며 "1200명 직원 중 단 20명만 소속된 노조가 단체협약을 했다는 등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2006년 10월 불법 유인물 배포, 명령불복종 등의 이유를 들어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현재 평택 청백면 코레노 공장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139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그는 "혼자서는 힘들지만 우리가 힘을 모으면 삼성 내 노조를 만들고, 근무환경 개선이라는 우리의 소원도 꼭 이룰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a 삼성SDI 하청업체인 하이비트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 투쟁단과 함께 삼성의 이른바 '무노조 경영'을 비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삼성SDI 하청업체인 하이비트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 투쟁단과 함께 삼성의 이른바 '무노조 경영'을 비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삼성의 약속, 노동자들 꾄 미끼일 뿐"

올해 45세인 함선주 비대위원장은 '사내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삼성SDI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하다가 지난 2월 느닷없는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정년 55세 보장 약속은 물거품이 된 셈이다.

함 비대위원장에 따르면, 삼성SDI는 IMF 외환위기 당시 사내기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규직 직원들을 영성전자 등 사내기업 50여개사로 이동시켰다. 회사는 당시 '사내기업 취업규칙'을 통해 ▲귀책사유가 없는 한 55세까지 정년 보장 ▲주주로 참여 가능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브라운관 생산이 사양산업으로 기울면서 칼라 브라운관 공장은 2006년부터 가동을 중단했고 대신 PDP 생산이 뜨기 시작했다. 결국 함 비대위원장이 일하던 영성전자(울산)를 비롯해 명운전자, 새창테크, 대현PDC 등 브라운관을 생산하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쓸모 없는 나사'로 전락했다.

함 비대위원장은 "사내기업을 만들면서 삼성SDI가 한 약속은 미끼일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회사는 8000여억원의 돈을 들여 PDP 생산라인을 만들면서 신입사원을 뽑고 있다"며 "브라운관 생산 노동자들의 입사를 요구했지만, 근무 연수가 많다는 이유로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생산량을 늘리면 모기업에 다니지 않는 우리에게도 특별상여금 등이 돌아올 줄 알았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회사는 납품의 단가 조정, 직원 해고 등을 마음대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공동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무효 ▲민주노조 건설 등을 주장하며 오는 10일 오후 2시 삼성 본관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a 삼성외주하청 셀콤 폐업 대책위원회 등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 투쟁단이 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삼성외주하청 셀콤 폐업 대책위원회 등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 투쟁단이 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하늘의 별따기 같았던 삼성 본관 앞 집회"

삼성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분쇄 ▲민주노조 건설 등을 촉구하며 민주노총과 어깨를 겯었다. 공동 투쟁단을 만든 이들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 신화'에 반기를 든 셈이다.

이들은 7일 서울 태평로 앞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는 9일∼11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특히 10일 집회는 삼성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 금속노조 등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기사 삭제로 파업 투쟁중인 <시사저널> 노조도 동참한다.

양동규 금속노조 경기지부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초일류 기업 삼성의 또다른 이름은 '초일류 노동탄압 기업'"이라며 "삼성의 허울 아래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해고됐고,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생존권을 짓밟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과 함께 투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 위원장은 삼성 본관 앞 집회 신고에 대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고 말했다. '집회 무풍지대'였던 삼성 본관 앞 집회는 해고 노동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했다.

양 위원장에 따르면, 삼성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위원장 김갑수)가 지난달 10일 0시 남대문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냈지만 삼성측과의 '동시 신고'로 집회 신고가 반려됐다. 김 위원장은 이에 "집회가 없는 날짜를 통보해달라"고 남대문경찰서에 제안했고, 결국 9일부터 사흘간을 따낸 것.

한편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 투쟁단은 삼성SDI 울산 사내기업체, 경기 평택 삼성 코레노 등 3개 지역 50여명 해고자들과 함께 금속노조 경기·울산지부, 민주노총 경기본부 등 9개 단체로 구성됐다. /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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