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이른 아침에 제피 순을 땄습니다.이승숙
새로 돋은 새순으로 장아찌 담아볼까?
청도 여자를 마누라로 둔 덕분에 남편도 이제 제피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은 제피를 처음 만나던 날의 끔찍했던 기억을 지금은 되레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결혼한 그 해 겨울이었다. 친정에 다니러 갔더니 작은 집에서 초대를 했다. 새로 맞은 질서에게 밥 한 끼 해먹이고 싶었던 작은 엄마는 물고기국을 끓여서 우리를 불렀다. 청도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소괴기국을 끓여주는 게 아니라 물괴기국을 끓여준다. 그것이 가장 큰 환대인 것이다.
밥상을 두 개나 펴고 우리 친정집 식구랑 작은 집 식구가 모두 둘러앉았다. 차린 음식은 많지 않았지만 한 가지 한 가지가 다 정성을 들인 것들이었다. 물고기국이 그렇고 물고기 조림이 또 그랬다.
처음 보는 물고기국이라 남편은 조심스런 마음으로 윗사람들 하는 거를 눈치껏 보면서 따라했다 한다. 다들 무슨 가루를 한 숟갈씩 떠서 국에 넣더란다. 그래서 남편도 따라서 한 숟가락 푹 퍼서 국에 넣었다고 한다. 그때 우리 작은 엄마가 약간 염려스러운 눈길로 질서가 될 사람을 쳐다보더란다. 하지만 남편은 그 눈길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물고기국에 가루를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한 숟갈 입에 넣었는데 입 안에 폭탄이 터졌다고 한다. 입안이 마치 불이 난 듯 화하게 타오르더란다. 눈물이 쑥 빠지게 화한 그 맛에 진짜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한다.
"김서방, 잡숫겠능교? 국그릇 이리 주보이소오 다른 거로 바꿔 주께."
작은 엄마가 우리 남편의 국그릇을 받아서 새 국으로 떠주더란다. 그래서 난처한 순간을 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그때 도저히 못 먹겠던 그 제피가루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입에 살살 배어오더란다. 화~하던 그 맛이 자꾸 생각이 나더란다. 그 이후로 남편은 제피 마니아가 되어버렸다. 깊고 오묘한 제피의 세계에 빠져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