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열기를 내려준다는 '깐저쉐이(甘蔗水)'

중국인 친구의 정성이 들어가서 그런지 더욱 더 맛있었습니다

등록 2007.05.10 17:18수정 2007.05.2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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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름이 온 것인지 중국 광동의 햇살은 덥다기보다 따갑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강렬합니다. 이런 날씨에 웬 목감기는 걸리는지 목이 건조하고 불편해서 어제 약국에 갔습니다.


약국에 들어가 진열장을 보는데 낯익은 약이 보였습니다. 지난번 목감기 걸렸을 때 중국인 친구 '티엔즈홍(이하 아홍)'이 사다준 약이더군요. 한약제로 만든 약이었는데 효과가 좋았던 기억이 나서 그 약으로 샀습니다. 잠자기 전에 먹고 잤더니 아침엔 좀 나아진 느낌입니다.

지난 월요일(7일) 저녁, 아홍은 딸 즈이를 데리고 집에 놀러 왔습니다. 그녀는 올 때마다 손에 한가득 뭔가를 잔뜩 들고오는데 그날은 한 손엔 커다란 수박 한 덩이를, 다른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왔습니다. 놀러 올 때 그냥 오라고 해도 막무가내인 친구입니다.

아홍을 알게 된 건 작년 12월 말쯤, 그녀의 딸 즈이를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한참 겨울방학 중이던 그때 딸내미들 데리고 인라인을 배운다고 놀이터에 갔는데, 그때 한 꼬마가 다가와 "아이, 니먼 스부스 한궈런(아줌마 혹시 한국사람이에요?)"하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즈이였지요.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때부터 즈이는 드라마 <대장금>의 어린 장금이 팬이라면서 수다를 떨었고, 그날 이후 같이 인라인을 자주 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즈이는 엄마인 아홍을 소개시켜 주었고 지금껏 좋은 이웃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홍은 노동국에 다니는 공무원입니다. 그러니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가끔 얼굴을 보는데 한번은 평일 점심시간에 우리 집에 들른다는 겁니다.


금세 초인종을 누르는 그녀, 문을 열었더니 스테인리스 그릇에 뭔가를 담아왔습니다. 뚜껑을 열었더니 국물에 잠겨서 색색이 조화를 이룬 건더기들이 눈부터 사로잡았습니다.

"이게 뭐에요?"
"이거 먹어봤어요? '깐저쉐이'인데 애들 먹이면 좋아요."
"안에 건더기 색이 이쁘네. 매번 고마워요."



a 중국인 친구 아홍이 만들어온 '깐저쉐이' 건더기의 색깔이 참 예뻤는데 국물도 달콤하니 맛있었습니다. 딸내미가 한그릇 다 비웠거든요.

중국인 친구 아홍이 만들어온 '깐저쉐이' 건더기의 색깔이 참 예뻤는데 국물도 달콤하니 맛있었습니다. 딸내미가 한그릇 다 비웠거든요. ⓒ 전은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내용물을 살펴보니 깐저(수수대), 마티(사전에는 올방개라고 나옴), 홍로보(당근)를 넣고 푹 끓인 거였습니다. 일단 먹어보지 못한 것이니 먼저 국물을 조금 떠서 맛을 봤습니다.

음∼ 진짜 달짝지근했습니다. 혹시 설탕을 넣었는지 물어보니, 전혀 안 넣었고 깐저(수수대)에서 우러나오는 맛이랍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과자나 사탕 같은 걸 많이 먹으면 몸에 열기가 많아지는데, 이 깐저쉐이를 끓여서 먹이면 몸에 열기를 내려준다고 했습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오후 두 시 반에 다시 출근해야 하는 그녀는 "시원하게 해서 먹으면 더 맛있어요"라고 일러주며 돌아갔습니다.

아홍이 간 후 둘째딸 은혜에게 국물을 따라서 주었습니다. 혀를 내밀어 맛을 확인하더니 요 녀석 단맛이 맘에 들었는지 한 그릇 다 마셨습니다. 그사이 저는 건더기 몇 개 건져 먹었지요.

깐저쉐이 말고도 아홍에게 받은 것이 참 많습니다. 한번은 광서 지방 출장 갔다 오면서 샀다며 그곳 특산품인 위에 좋은 차를 주기도 했고요. 그녀의 남편이 허위엔 지방 갔다가 사왔다며 삶은 밤이며 새콤한 무 등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나눠 주었습니다.

또 아홍 집에 갔다가 마셔본 차가 향이 좋아 감탄을 했더니 며칠 있다가 '산차'라는 그 차를 큼지막한 봉지로 두 봉지나 가져온 적도 있습니다.

사실 중국에 살면서도 한국 사람이다 보니 늘 해먹는 음식은 김치 담가서 김치찌개나 볶음, 아니면 된장찌개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중에 이런저런 중국 광동 음식을 아홍 덕에 맛볼 수 있게 되니 고마울 따름이지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놀다가 저녁 8시 반쯤 아홍과 딸 즈이는 다음날 학교 가려면 일찍 자야 한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냥 보내기가 미안해서 김치 몇 포기 싸주었습니다. 매운 걸 잘 먹진 못하지만 그녀는 시큼한 걸 좋아하기에 적당히 잘 익은 김치로 주었습니다.

알고 지내는 몇몇 중국인 친구 중에 유일하게 김치를 잘 먹는 아홍. 그녀에게 받기만 하고 줄 게 마땅치 않은데 김치를 좋아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뭐 받을 때마다 매번 김치로 대신하다 보니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주는 김치입니다. "김치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알았다며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눈에 보이기만 하면 큰소리로 "아화!"(이름의 끝 자 앞에 '아' 자를 붙여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하면서 반갑게 아는 체를 하는 친구 아홍. 저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많은데도 절대 언니라고 부르지 말랍니다. 그냥 이름을 부르라고 합니다. 그게 더 듣기 좋다면서요.

하루하루 적응하며 살면서도 여전히 낯선 이곳에 이렇게 털털하고 붙임성 좋은 친구가 있으니 그냥 뭔지 모르게 참 든든하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 유포터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블로그, 유포터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깐저쉐이 #중국 광동 #아홍 #즈이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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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동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속에 만나는 여러 상황들과 김정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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