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특별이벤트, "엄마 최고!"라던데요?

아이들과 토마토 묘종과 고추를 심었습니다

등록 2007.05.12 14:35수정 2007.05.2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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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이면 사람들은 유난히 다른 달보다 흥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유난히 조용한 달이기도 하지요.

어린이날은 어딜 가나 복잡하고 차가 막혀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오히려 스트레스 쌓여서 돌아오는 게 다반수라 언젠가부터 두 아이와 적당히 타협을 하여 집에서 보내기를 벌써 몇 해째입니다.

어버이날엔 남편과 나 둘 다 부모님이 계시질 않아서 어버이날 전에 미리 부모님 산소에 꽃 한 송이 두고 오는 걸로 대신합니다. 부부의 날이 있긴 하지만 양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사는 우리에겐 결혼기념일이 없으니 그런 건 생각지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보험이나 어딘가에 회원가입을 하려면 결혼기념일을 적는 것이 필수인데, 그럴 때마다 아무 날이나 생각나는 날을 적다보니 1년에 몇 번씩 문자메시지로, 메일로 결혼기념일 축하를 받습니다.

아무튼 5월이 그냥 조용히 넘어가기를 소망하는 이기적인 내 맘을 남들은 알 리가 없지요. 올해 5월 5일 어린이날도 조용히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린이날 선물로 뭘 사줄 거냐고 자꾸 물었지만 "왜 사줘야 하느냐"고 오히려 내가 반문을 하며 못 들은 척했더니 나중엔 아예 묻지도 않았습니다.

조용하지만 특별한 어린이날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린이날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서 뒷산에 있는 약수터로 가서 물 한 모금씩을 마시게 한 후, 얼마 전에 싼값으로 분양받은 작은 텃밭으로 오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토마토 묘목 다섯 그루와 고추 묘목을 사서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딸아이에겐 물을 떠오라고 시키고 아들에겐 호미로 땅을 파라고 시켰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일에 신이 났는지 서로 하겠다고 뙤약볕 아래에서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땅을 일구고 돌을 고른 뒤 아이들에게 토마토와 고추를 심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직 어린 딸은 조금 서툴러서 도와줬지만 아들은 제법 잘하는지라 혼자 하게 내버려뒀더니 어른 몫을 해냈습니다. 다 심은 묘목에 물을 적당히 준 뒤,

"자, 어린이날 심은 토마토와 고추가 무럭무럭 자라면 열매가 열릴 거야, 그때 우리 따먹으러 오자. 상추와 오이도 자라고 쑥갓하고 가지도 자라니까 삼겹살만 사오면 끝내주겠지?"

아이들은 벌써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라도 본 듯, 환호성을 지르며 두 손으로 입을 가린 뒤 밭에서는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은 "야호~"를 연발했습니다.

어린이날 심은 거라는 걸 강조하며 이름까지 써 있는 표를 보여주니 아이들은 그 어떤 때보다 즐거워합니다. 어린이날 선물이 별 겁니까? 기억에 남을 추억거리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이 누구나 다 하는 놀이공원 데려가기나 푸짐한 선물을 사주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나다. 그리하여 우린 이렇게 조용히 보내는 편입니다.

저녁엔 그래도 아이들이 텔레비전의 화려한 어린이날 행사를 보고 아쉬워하는 것 같아 통닭 한 마리를 시켜줬더니 너무나 행복해하며 "우리 엄마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화려한 어린이날에도 밥 한 끼 걱정하는 부모와 아이들이 있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정 내 아이들을 위한 선물은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 부모의 따뜻한 마음이란 걸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일부러 5월에는 마트나 시장엘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고 나도 5월엔 그런 곳엔 잘 가지 않는 편입니다. 아이들을 데려가면 수많은 장난감들이 아이들의 눈을 유혹하고 그런 아이들을 늘 울려서 그냥 데리고 나온 뒤부터는 그런 습관이 생겨버렸습니다.

아이들 장난감이 몇 만원에서부터 몇 십 만원까지 하는 걸 보고 그런 장난감이 왜 그렇게 비싼지도 의문이었고 쌀이 없어 라면으로 3일을 때워 본 나로서는 그런 장난감을 사는 사람들이 별천지 사람들처럼 신기했습니다.

아들은 가끔 내게 묻습니다.

"엄마, 우린 부자예요 아니면 가난해요?"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합니다.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동생도 있고 우리 네 식구 함께 할 수 있는 집(월세라고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이 있으니 이보다 더 부자인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럼 아이는 "역시!" 하며 씩 웃습니다. 내년 어린이날엔 아이들에게 또 어떤 추억을 만들어 줄까 벌써부터 고민입니다.

덧붙이는 글 | <특별한 5월> 응모글

덧붙이는 글 <특별한 5월> 응모글
#어린이날 #특별한 #이벤트 #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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