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아귀다툼, 차라리 해체한다면 어떨까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나라당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

등록 2007.05.14 13:28수정 2007.05.1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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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의원은 4일 오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당 화합과 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명박 전서울시장이 간담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의원은 4일 오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당 화합과 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명박 전서울시장이 간담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이 두나라당으로 쪼개질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눈앞의 대권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어서 구경꾼들의 소리는 들을 모양새들이 아니다.

이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 언론들의 입장에서도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기본적인 경선의 규칙을 놓고 벌이는 아귀다툼에 고개만 설레설레 젓고 있는 모습들이다.

신문들은 각기 지난 주 후반부터 사설을 통해 한 두 번씩 훈수를 두었지만, 다들 그렇고 그런 양비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하나마나한 이야기들을 맥없이 늘어놓고 있는 모양새다. 국면이 그러니 신문들인들 어쩔 것인가?

하지만 눈에 띄는 사설도 하나씩은 있다. 그나마 논지를 분명하게 세운 사설이다. 가장 논지를 분명하게 세운 신문은 <경향신문>이다.

가장 선명한 목소리의 <경향> "차라리 현행대로"

<경향신문>은 5월 12일자 '한나라당 경선규칙, 차라리 현행대로 하라'는 사설을 통해 원칙에 입각한 문제 해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양측을 모두 만족시키는 경선규칙을 도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라는 현실 진단에 따른 것이다.

"'강재섭 중재안'이 외형적으로는 양측을 두루 배려한 듯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행 규칙에 비해 이명박 전 시장에게 유리한 것으로 나타나 박 전 대표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고, 또다른 중재안이나 제3의 방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같은 유·불리 판단이 제기될 경우 양측 모두에 의해 수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따라서 "원칙에 따를 것"을 촉구했다. "양측의 합의가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당헌에 규정된 현행 규칙이나 중재안 이전의 당초 합의에 따라 경선을 치르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 전 시장의 양보를 전재로 하는 것이다.

"현행 규칙이 당심과 민심의 상관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규칙을 마음대로 고치려 한다면 '원칙의 파괴'라는 더욱 큰 문제를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그러한 판단의 준거로 "대한민국 헌법이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략적 목적으로 개정할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라고 제시했다.

이같은 논지는 결과적으론 박근혜 전 대표의 '원칙론'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a <경항신문>은 한나라당이 현행 안대로 경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확한 목소리를 냈다.

<경항신문>은 한나라당이 현행 안대로 경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확한 목소리를 냈다. ⓒ <경향신문> PDF

"강재섭 대표가 잘못했다" <중앙>과 <한국>

분명하게 시시비리를 가린 <경향신문> 한 편의 사설을 빼놓고 보면 그나마 구체적으로 '쟁점'이라도 명확하게 한 사설은 강재섭 대표의 '리더십'과 '배수진'의 문제를 제기한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의 사설이 고작이다.

<중앙일보>는 11일자 '강재섭 대표의 리더십, 문제 있다'는 사설에서 경선규칙 개정 문제를 전국위원회로 가져간 강 대표의 리더십의 문제를 제기했다.

독재정권에서도 선거법만은 여야 합의로 처리했던 전사를 들어가며 "두 후보가 흔쾌히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라"고 촉구했다. "그 정도의 합의도 하지 못하는 정당이라면 집권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으며 대선에 참여할 자격도 없다"고 질타했다.

<한국일보>는 14일자 사설 '강재섭 대표의 이상한 배수진'에서 역시 마찬가지의 논지를 폈다. "애초에 기존 합의의 해석의 논란에 지나지 않았던 경선규칙 다툼을 '개정안' 찬반 논란이라는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간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런 만큼 "이·박 두 진영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하고, 끝내 합의를 끌어내지 못해 '개정안' 채택이 좌절되면 그 때 가서 책임을 지려하는 것이 대표라는 자리에 합당한 자세"라고 꾸짖었다.

<경향신문>은 어쨌거나 나름대로의 입장에 근거해 분명한 해법을 제시했다. 물론 그것이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며, 현재까지 이해 당사자의 한 쪽인 이명박 전 시장 측에서 전혀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선 무망한 공론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어쨌든 '분명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그래도 용기있는 태도다.

<중앙일보>나 <한국일보>의 논지는 구체적인 쟁점을 갖고 강 대표의 리더십과 최후의 순간 까지 마지막 중재노력을 다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 돌아가고 있는 형편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현실적인 해법이 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신문들의 의견 제시는 단순한 구경꾼의 처지일 수만은 없는, 어쨌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그나마 충실하고자 한 노력의 흔적일 수는 있을 것이다.

<조선> <동아>가 비명처럼 외치는 이유

a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두 대권주자를 '박씨' '이씨' 등으로 호칭하며 분열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두 대권주자를 '박씨' '이씨' 등으로 호칭하며 분열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 <조선일보> PDF

그런 점에서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양비론적 논지'가 주목된다. 이런 문제에 상대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왔던 <조선일보>는 비장할 정도로 철저한 양비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주 금요일부터 월요일인 오늘까지 연 3일 내리 관련 사설을 싣고 있다. 한나라당 두 주자에게 한발씩 물러서라는 '비명같은 외침'을 전한 강천적 주필의 칼럼(이명박·박근혜가 함께 봐야 할 영화)까지 포함하면 내리 4개의 칼럼과 사설에서 정말 '비명같은 외침'을 쏟아냈다.

<조선일보> 칼럼과 사설의 초점은 두 주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한나라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1일자 '이명박 대선출마 선언, 박근혜 경선 불참 시사'에서는 두 주자에게 "지금 자신들의 처신을 '리더십'과 '원칙있는 행동'이란 자신들 입에서 나온 두 단어에 비춰보라"고 촉구했다.

다음날일 12일자 사설 '모두를 줄 세워 버린 한나라당의 오늘'에서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존엄을 스스로 걷어차버리고 이명박·박근혜라는 두 '장군' 아래 '졸병'으로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만" 의원들의 처신을 개탄하면서 "이런 정당이 이 상태로 집권해 나라를 이끌어 간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고 탄식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오늘(14일)에는 비로소 두 주자에게 한마디씩 했다. 벌거벗은 '두 개의 권력욕'에 눈이 먼 두 주자들에 대해 "관용과 타협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권을 잡기도 어렵지만, 그런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국가적으로 일어날 문제는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나가면 결국 "이씨는 자신이 말한 '그런 어리석은 사람(캠프내에 양보하자는 기류가 있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대한 이 전 서울시장의 발언)'은 바로 본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며, 박씨 역시 고사목처럼 말라 죽은 원칙 옆에서 혼자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거의 저주와 같은 질책을 퍼부었다.

전 직함도 빼 버리고 '박씨' '이씨'라고 적고 있는 사설의 문맥에서는 섬뜩한 증오심마저 읽힌다.

섬뜩한 증오심, 절박한 위기감

<동아일보>는 11일 금요일자 '유권자 저울 위의 한나라당과 이-박'이라는 사설에서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되새겨보라"고 촉구했다. "지금 둘의 지지율을 합치면 60~70%는 되는데, (이같은 정권교체의) 열망을 헛되게 할 것인지" 두 사람의 깊은 자기 성찰을 요망했다.

이런 신문들의 '입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나라당 두 주자의 행태에 거의 노골적인 증오감까지 드러낸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사설, 나아가 마지막 순간까지 강재섭 대표의 중재노력을 촉구한 <중앙일보>의 사설은 아무래도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이 '정권교체'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짙게 느껴진다.

반면 결과적으로 박근혜 편의 손을 들어준 <경향신문>의 사설이나 '강재섭 리더십'의 문제를 제기한 <한국일보>의 사설은 한나라당의 집권 여부에 대한 선호와는 무관하게 이 사태를 바라보는 '원칙적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선 오늘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두 칼럼이 눈에 띈다.

정당정치 제도를 바꿔보자는 <한겨레>

a 혁신안 원안 고수를 요구하는 한나라당 평당원 100여 명은 11일 오전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 현관 앞에서 강재섭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당사 진입을 시도하는 평당원과 경찰이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현관 유리문이 박살나고 있다.

혁신안 원안 고수를 요구하는 한나라당 평당원 100여 명은 11일 오전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 현관 앞에서 강재섭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당사 진입을 시도하는 평당원과 경찰이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현관 유리문이 박살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오늘 <한겨레> 칼럼 '정당정치의 복원을 꿈꾼다'에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정치권의 염량세태에 빗대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수를 정하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다. 그렇게 하면 국회의원이 지역 민원해결사로 전락하는 일은 사라지고, 극좌에서 극우까지 유권자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온전히 국회에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다.

또 하나는 대통령 선거에서 프랑스식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그리 되면 일차적으로 '소수파 대통령'이 탄생해 임기 내내 반대파의 공격에 시달리는 일이 없어진다. 대선 후보는 분명한 노선을 가진 정당에 기초하여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직접 유권자를 대상으로 선전하고 지지를 획득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1차 투표에서 탈락하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정책 연함을 통해 다른 후보를 지지할 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이 둘 모두 "이번 대선 이전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안"이란 점도 잊지 않고 부기하고 있다.

<조선일보> 강경희 파리특파원은 프랑스 대선에 대한 보고서 '고민도 변화도 없었던 불 사회당'이란 기자칼럼(동서남북)에서 여당 같았던 야당의 패배와 여당 후보지만 변화를 모색했던 사르코지의 승리의 요인을 분석하면서 "시대의 흐름과 민심을 읽지 못한 정당과 정치인은 유권자들한테 외면받는다는 상식중의 상식을 확인시켜 줄 뿐"이라고 보고했다.

강경희 특파원의 보고처럼 한국의 정치 상황은 끊임없이 '상식중의 상식'을 배반하고 있어 보인다. 어찌보면 아예 상식이라는 것을 이 참에 송두리째 뒤집기로 작심한 듯도 하다.

뒤집히는 상식들... 역발상은 어떨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식이 밑도 끝도 없이 전복되는 사회이고 정치라면, 그 같은 '상식의 전복을 통한 역발상'으로 나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가령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중앙일보>라면 어차피 한나라당의 이 모양새로라면 정권을 잡기도 어렵고, 잡아서도 안 될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차라리 그런 당은 해체하고 두 후보 각기 제 갈 길을 가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지 않을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혹은 <한국일보> 같다면 이참에 아예 정당정치의 골간을 혁신할 새로운 정치문화의 기획에 나서보든지, 아니면 정당정치의 행태가 이 모양 이 꼴에서 나아질 현실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정당정치의 사망'을 선언하고, '지도자 중심의 정치'라는 아예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너무 파격이고, 너무 황당한 제안일까?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판만큼 파격이고, 황당한 꼴을 또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백병규 #미디어워치 #한나라당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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