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너의 삶에 자유와 희망을!

[자전거 세계일주 5 ] 뉴욕 주 비크맨(Beekman)

등록 2007.05.17 11:12수정 2007.05.1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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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내일이면 드디어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 계획은 온통 예배로 채워져 있었다. 무엇보다 영혼의 평안함을 얻어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최고의 안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에서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타임스 스퀘어 교회(Times square church)의 예배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크리스찬 뿐만 아니라 가톨릭을 섬기는 이까지도 적극적 추천을 하니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아침 10시 예배에 참석했다. 이미 자리는 상당수 채워져 있었고, 난 안내원에 의해 1층 채플의 뒷자석에 배정이 되었다. 전 세계 중심에 세워진 이 교회는 원래 홈리스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회라고 한다.

그리고 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필라델피아, 뉴저지 등 상당히 먼 곳에서도 매주 오는 신자들도 있고, 나같은 여행자들도 더러 있다. 예배당에서 여행자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예배의 경건함에 빠져들기보다 이 거룩하고 영광스런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이들인 것이다.

예배 시간이 되자 본당 커튼이 젖혀지더니 천사같은 아이들이 무대 중앙에 서 있었다. 경쾌하고 또 장엄한 두 곡의 성가곡을 부르고, 중간에 짧은 멘트를 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성도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곧이어 가스펠 찬양시간에는 예배당이 온통 축제 분위기로 휩싸인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 대중적 멜로디에 기반한 현대 기독교 음악)계에서는 유명한 힐송의 찬양이 성도들을 깊은 열광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때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다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무리들도 많이 보인다. 내 옆의 60대 노부인은 어찌나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감격해하는지 나에게 아주 흡족스런 예배의 기쁨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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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의 대장정을 시작하다. 뉴욕 퀸즈에서. ⓒ 문종성

낮에는 맨해튼 성결교회에서 주일 예배와 청년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밤에는 일주일간 머물렀던 퀸즈의 한인 유학생 집에서 조촐한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하는 1.5세 동웅씨는 일주일 동안 뉴욕 음악 대학 연주회와 뉴욕 1.5세 화요 기도모임에 데려가는 등 이것저것 나를 챙겨주었다.

일요일 자정이 넘은 깊은 밤 마지막 식사로는 뮤지컬 연출을 꿈꾸는 수헌씨가 직접 삼겹살과 이것저것을 사와 내일 떠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 역시 '주독야경'을 하며 힘들게 고생하는 청년이다. 서로의 처지에 공통분모가 많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한 점 한 점 고기를 입 안으로 밀어 넣을 때마다 이것이 앞으로의 고생을 위한 마지막 축복이라고 생각하니 더욱더 비장해졌다.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다가 너무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했다. 세트로 있는 것들은 하나만 남기고 다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사용 가치가 낮은 물품은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슛을 던졌다.

고가 물품들은 무겁기는 했지만 필요하고 또 비싼 제품들이라 쉽게 버리지 못했고, 결국 하나 뿐인 가장 최근에 산 재킷과 건빵 바지는 미련없이 수헌씨에게 넘겼다. 비워냄. 앞으로 여행 중에 또 얼마를 비워내야 할 것인가. 비움 없이는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도 없나니, 앞으로 현명하게 버리는 방법도 배워야 할 듯싶다.

나, 본유적 빈곤과 빈약한 영적 자원을 가지고 떠난다. 드디어 결전의 날, 월요일. 낮에 간단히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식사를 한 후 온통 고속도로로 거미줄을 쳐 놓은 뉴욕의 번잡함과 진입불가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외곽지역까지 차로 이동했다.

외곽지역으로 빠져나가려는 뉴욕은 혼잡하기만 하다. 주말에 밀린 물품들을 수송하기 위한 트럭의 행렬이 계속 이어진 것이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맞아준 가스펠 펠로우십 교회의 성현경 목사님께서 뉴욕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배웅해 주셨다.

뉴욕의 외곽지역에 내린 나는 짐들을 다시 한 번 단단히 동여매고, 드디어 첫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오후 4시.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그늘 아래를 반복하며 달리는 나에게 앞으로 내 인생을 책임질만큼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이제 그 자유 안에서 나와 인류의 비전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 몸의 모든 감각들을 일일이 깨워내 세상을 투명한 시선으로 껴안아보도록 한다.

'청춘, 너의 삶에 자유와 희망을!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감사하자. 누구를 만나든 그의 인생을 존중해주자. 중요한 건 일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무엇을 했는가하는 경험보다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하는 인사이트인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은 채 뉴욕 주 북쪽으로 핸들을 고정시켰다. 저녁 7시. 바람은 조금씩 거세지고 날은 어둑해지며 기온은 떨어지고 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당장 급한 숙박을 해결해야 했다.

'오, 나의 주님. 나는 당신의 자비로우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저에게 잠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허락해 주십시오. 음, 되도록 7시 30분까지면 좋겠습니다.'

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어쩌면 신앙심 없는 나의 믿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날지도. 어쨌든 신이 존재하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기대되는 위로와 반전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뉴욕 주의 5월은 제법 쌀쌀한 바람을 품고 있다. 7시 20분. 우연찮게 한인교회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 이런. 이렇게 교외 지역에도 한인 교회가 있다니. 그 곳의 성도로 보이는 한 아저씨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그 교회를 섬기는 청년의 집주소를 받아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나의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인 순간이다. 하지만 어찌 신의 계획과 인도를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 낱낱이 파헤쳐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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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의 가족. 그의 부인 릴과 2살짜리 귀여운 딸 릴리. ⓒ 문종성

"오 저런, 저 자전거 좀 봐. 도대체 짐이 몇 개야?"

산책나온 한 가족은 나를 보며 신기한 듯 이것저것 물어왔다.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한다구요? 음, 놀랍군.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에요?"
"유감스럽게도 갈 데가 없어요. 주변에 한국인 사람이 있다는데 찾아보려구요. 여기가 어딘지도 잘 몰라요. 난 지금 춥고, 배고프고, 무척 피곤해요."

애써 웃음지어 보이며 내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부인과 잠시 상의하더니 나에게 저녁을 대접해도 되겠느냐고 제안해 왔다. 나는 물론 오케이와 땡큐를 목청 높여 과장되게 소리쳤다.

하지만 두 곳의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고, 그들은 자기 집으로 기꺼이 나를 초대했다. 나의 종착지는 한인교회의 어떤 집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외국인의 거처였던 것이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 아닌가.

"우리 집이에요. 마음에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쉬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저녁 차려줄 테니."

뉴욕 주 남쪽에 위치한 작은 타운 비크맨(Beekman)에 거주하는 아이리시계인 그들은 마크(Mark)라는 사내와 그의 부인 질(Jill), 그리고 귀여운 두 살배기 딸 릴리(Lily)과 맥스(Max)종의 개 키라가 한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들의 과객에 대한 인심은 태산이 오히려 가볍고 황하수가 도리어 낮을 지경이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온 후 맞은 저녁 식사는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내가 한국 사람이란 걸 의식한 듯 일부러 라이스 요리를 한 것이다.

푸석푸석하고 찰지지 않은 쌀이었지만 거기에 옥수수와 계란, 콩을 넣어 요리한 식사를 한 수저 떴다. 그야말로 입 안에 천국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So Gooooooooood!" 욕심껏 그릇 가득 채운 라이스 요리를 두 그릇이나 해치웠는데도 우리네 시골인심과 진배없는 그들의 헌신적인 친절은 초코차와 과일, 치즈, 음료, 고구마와 닮은 얌이라는 열매 등을 내오면서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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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이 그린 그림. 그녀는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 문종성

마크의 집 안에는 곳곳에 추상적인 그림이 걸려 있었고, 벽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부인 릴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든다고 한다. 이를 테면 아티스트 작가라고나 할까?

"그림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거에요. 그림을 통해 아이들과 대화를 하죠.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거든요."

자신의 그림을 이것저것 보여주며 그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태어난 이래 컴퓨터와 미술 영역을 불가침 영역으로 여기는 나로서는 히브리어보다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마크의 직업은 개 조련사란다.

"하하. 난 개들을 훈련시켜요. 키라 이 녀석도 제 말을 무척 잘 듣거든요."

그의 말처럼 키라는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에도 생기있게 반응했다. 마크의 조련은 꽤 능숙해 보였다. 키라를 다루는 어떤 모습에서도 스파르타식의 강제적인 명령은 하지 않았다. 개도 안다. 자신을 사랑하는 주인의 진실한 마음을. 단지 주인인 사람과 애완동물인 개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마음을 나누는 수평적 관계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마크와 릴은 나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배려했다. 한국에서라면 오히려 반대였을텐데. 밤 늦게까지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답례로 단란한 가정을 위해 축복을 빌어주는 것 뿐이다.

"신의 가호가 너와 이 가족에게 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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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 비크맨(Beekman)에 거주하는 아이리시계 미국인 마크. 자전거 여행의 첫번째 날 첫 번째 숙식을 제공해 준 친구다. ⓒ 문종성

첫 날이라 다소 긴장했으나 마크네를 만나면서 마치 끓는 물에 넣어진 소면처럼 마음은 어느 새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마크는 나를 초대한 것을 계기로 앞으로 이곳을 지나는 여행자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개방하겠다고 한다.

그의 넉넉한 배려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혹시 뉴욕에서 뉴욕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라면 이 친절한 아이리시계인 마크에게 연락을 해 보자. 앞으로 여행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다. 뉴욕시에서 북쪽으로 차로 약 40~5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Mark의 주소 및 연락처 - 95 Beekman Ave. #147V Sleepy Hollow NY 10591
liflander@yahoo.com (914) 909-0753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현재 뉴욕주 포킵시(Poughkeepsie)에 머물고 있으며, 보스턴을 경유해 캐나다 몬트리올 방향으로 갈 계획입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현재 뉴욕주 포킵시(Poughkeepsie)에 머물고 있으며, 보스턴을 경유해 캐나다 몬트리올 방향으로 갈 계획입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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