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긴 북핵 터널을 지나 철마는 달린다

남북철도 시험운행은 북미관계에도 청신호

등록 2007.05.17 12:25수정 2007.05.17 12:25
0
원고료로 응원
a 2002년 4월, 도라산역의 모습. 승차장의 안내판은 '서울·평양 방면 타는 곳'이라 적혀 있지만 평양가는 경의선 철길은 가로막혀 있다.

2002년 4월, 도라산역의 모습. 승차장의 안내판은 '서울·평양 방면 타는 곳'이라 적혀 있지만 평양가는 경의선 철길은 가로막혀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반세기 동안 끊겼던 남북철도가 시험운행에 들어간다. 경의선·동해선 철도가 17일 하루 동안 시험운행을 한다.

그동안의 흐름을 볼 때에, 정상운행 역시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어느 정도의 난관이 있을 수는 있으나, 정상운행은 기본적으로 시간문제인 것으로 판단된다.

철도 연결이 남북관계에서 갖는 의미도 중요하겠지만, 이것이 북미 핵문제에서 지니는 의미 역시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2차 북미 핵대결이 터진 2002년 10월 이후 남북관계는 북미관계로부터 고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철도 연결과 북미 핵문제의 연관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2002년 하반기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로 한다.

냉전에 찬물, 워싱턴발 북핵뉴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발전단계를 걷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2002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남북관계와 함께 북일관계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위상이 잠시 흔들리는 사이에 남북관계와 북일관계가 탈냉전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냉전 관리자'인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대테러 전쟁 구도에 신경을 쓰는 사이에 동북아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는 마치 냉동실 문을 잠시 열어둔 사이에 얼음이 일시적으로 녹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이것은 구소련 붕괴 이후인 1990년대 초반에 남북관계와 북일관계가 잠시나마 급진전되었던 일을 연상시키는 현상이었다. 소련이 흔들리고(1990년대) 미국이 흔들릴 때(2000년대)에 동북아에서는 탈냉전의 흐름이 일시적으로나마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2002년 8월 30일에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 개성공단 착공, 쌀 40만 톤 및 비료 10만 톤의 대북 지원 등에 관한 합의가 체결되었다.

뒤이어, 9월 17일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2002년 8, 9월에는 동북아에서 냉전의 최종적 해소를 위한 가시적 조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이러한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핵문제에 관한 공격적 뉴스들이 워싱턴발(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기 하루 전인 9월 16일에는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주장함으로써 북핵 의혹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폈다. 그리고 2002년 10월 3~5일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대통령 특사가 고농축 우라늄(HEU) 핵 프로그램의 존재를 주장함에 따라, 제2차 북미 핵대결이 본격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a 북핵 6자회담이 지난 2월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 회의에 앞서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있다.

북핵 6자회담이 지난 2월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 회의에 앞서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제2차 북미 핵대결을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조명하면, 2000년 6·15 선언 이후의 동북아 화해무드가 이 사건으로 인해 제어되면서 역내 질서가 다시 한 번 미국 주도로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 시점에서 핵문제가 '적시에' 터지지 않았다면, 남북관계·북일관계는 '제멋대로' 급진전되고 미국의 영향력 역시 급거 추락했을 것이다.

이후 제2차 북미 핵대결은 남북관계 및 북일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핵심 장애물이 되었다. 북일관계에서는 납치문제가 핵심 이슈가 되었고, 남북관계는 걸핏 하면 경색 국면에 빠지곤 하였다.

그리고 북미관계가 안정되면 남북관계·북일관계도 함께 안정되고, 북미관계가 악화되면 그 두 가지도 함께 악화되는 연동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2002년 이후로 남북관계·북일관계가 다시 한 번 북미관계의 종속 변수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이제야 시험운행 들어간 철도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이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다가 이제야 시험운행에 들어간 것은, 그동안 북미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음에 따라 그 종속변수인 남북관계도 연쇄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북미관계가 악화되더라도 남북관계는 이와 별도로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남북 양측에게 모두에게 이것은 힘든 일이다.

남측 입장에서 볼 때,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전개하자면 부득불 미국의 '묵인'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북미관계가 험악해지는 상황 속에서 북측 당국자들과 미소를 지으면서 악수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남측 당국자들은 대담하지 않다.

한편, 북측 입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연동시킬 수밖에 없다.

첫째, 북측 지도부는 기본적으로 '북미관계는 겉이고 남북관계는 속이기 때문에 북미관계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남북관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겉을 거치지 않고서는 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인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미관계가 악화되는 상황 하에서 남북관계만 발전시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북측 지도부는 '자국이 미국에 비해 총체적 열세에 있는 만큼, 대미 대결에 전력을 기울이자면 남북관계 등 여타 관계를 잠시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북미관계가 경색 국면에 돌입할 때마다 북측이 남북관계를 뒤로 미루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대외 역량을 북미관계 한 군데에 쏟기 위한 전략적 고려 때문이기도 하다.

위와 같이, 지난 5년간 남북철도 연결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기본적으로 북미관계의 불안정성 때문이었으며, 부수적으로는 바로 앞에서 설명한 남북 양측의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경의선·동해선 철도사업은 그동안 북미 핵대결에 따른 '핵 레일'을 달려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북미 핵대결이 철도 사업을 포함한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핵심 요인이었다는 말이 된다.

북미관계의 핵 레일이 고르지 못했기 때문에, 북미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남북관계도 연쇄적으로 불안정했고 또 그로 인해 철도 연결사업도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울려라, 희망의 기적소리

a 지난 2004년 5월, 북한 평안북도 룡천 참사 복구현장에 지원되는 덤프트럭 20대, 칠판 50개, 책걸상 1500세트가 7일 오전 경의선 본도로를 통해 북측에 전달됐다.

지난 2004년 5월, 북한 평안북도 룡천 참사 복구현장에 지원되는 덤프트럭 20대, 칠판 50개, 책걸상 1500세트가 7일 오전 경의선 본도로를 통해 북측에 전달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런데 최근 2·13 합의 이후 북미 간의 평화협정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 속에서 남북관계는 다시금 안정을 회복했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사업도 시험운행 단계에 접어들 수 있게 되었다.

2002년 10월 이후 제2차 북미 핵대결의 와중에서 지지부진했던 철도 사업이 이제 시험운행 단계에까지 접어들게 된 것은, 그 상위 요소인 제2차 북미 핵대결이 최종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에, 남북 철도 시험운행은 비단 남북관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북미관계에 대해서도 청신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차원에서 냉전의 잔존물(북미관계·남북관계·북일관계)을 최종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희망의 기적소리'가 울리리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의선 #남북 #북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