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가 안전해야 남북철도도 잘 달릴 수 있다

등록 2007.05.18 14:23수정 2007.05.1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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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철도 시험운행에 대해 전 세계인의 이목과 찬사가 집중된 가운데에, 어김없이 딴지를 거는 국내외 언론들도 있다. 통일로 가는 한반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한 예를, 지난 5월 15일에 발행된 홍콩 <아주시보>의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험운행 이전에 나온 보도이기는 하지만, 남북철도 시험운행에 대한 주변 ‘외세’의 심기를 잘 보여 주는 전형적인 기사가 될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로서 <아주시보>에 정기적으로 글을 발표하고 있는 도널드 커크는 “남북철도 시험운행, 평양은 담판조건으로 간주”라는 제목의 글에서 “북한이 철도 시험운행의 조건으로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서해 해상경계선 재조정 문제까지 들고 나왔기 때문에 정상운행은 쉽지 않을 것이며, 이번 시험운행은 상징적 행사에 그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시각은 비단 해외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의 보수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북측이 서해 해상경계선 재조정 문제를 조건으로 시험운행에 합의한 점에 대해 비판적 의견이 나오고 있다. 북측이 서로 관계없는 엉뚱한 문제들을 연관시키고 있다는 인식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측이 남북철도 운행과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를 연관시킨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북측이 두 사안을 연관시키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5월 8일~11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제5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북측 단장인 김영철 조선인민군 중장이 행한 발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5월 8일자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김영철 단장은 이 자리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이미 이룩한 군사적 합의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북남대화 그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며 그로부터 초래되는 후과는 참으로 엄중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장성급회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와 관련하여 “쌍방은 조선 서해상에서의 충돌을 방지하고 공동어로를 실현할 데 대한 문제를 하루빨리 매듭지어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위 통신은 전했다.


북측 단장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것은, 서해상 충돌 방지는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이며, 군사적 긴장 완화는 남북대화를 포함한 남북교류의 전제조건이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드러나듯이, 북측은 단순히 남북 간에 기차를 운행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더 근본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만약 경의선이 정상운행을 개시한 이후에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모든 일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북측의 우려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점들을 등한시하고 그저 정상운행 그 자체에만 집착한다면, 남북철도 사업은 아무런 실질적 열매를 산출하지 못한 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고 말지도 모른다.

물론 북측이 협상을 통해 ‘국익’을 챙기려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상운행 그 자체보다는 정상운행의 기본 환경을 더 중시하는 북측의 원칙적 태도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남북철도 정상운행과 서해 해상경계선 재조정 문제를 연관시키게 되면, 남북철도 정상운행의 시점이 다소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1953년 8월에 서해 북방한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주체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재조정하자면 부득불 미국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이 남측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서해상의 군사 충돌의 가능성을 남겨둔 채 남북철도 정상운행을 무조건 추진한다면, 향후 이 사업은 다음 2가지의 문제점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첫째, 북측의 전폭적 협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정상운행보다는 정상운행의 사전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북한을 설득하려면, 남측 역시 사전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일정한 관심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 남측이 정상운행 그 자체에만 집착한다면, 북측은 ‘남측은 철도사업을 정치적 행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둘째, 정상운행의 항구성을 기약할 수 없다. 현재 남북충돌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가 바로 서해다.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운행에 들어간다면, 서해에서 발생하는 뜻밖의 사태로 인해 남북철도의 정상운행이 도중에 중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에, 남북 양측은 정상운행이라는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항구적인 정상운행을 가능하게 할 기본환경 조성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의선·동해선이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돌아가는 게 더 빠른 길이 될 수도 있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는 남북한의 군대만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반도에서는 언제든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불리한 상황에서 남북철도의 정상운행을 실현시키려면, 사전에 위험요소를 최대한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의 조속한 해결은 남북철도 사업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서해가 안전해야 경의선도 잘 달릴 수 있고 또 동해선도 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제거해야만, 남북철도에 대한 국내외의 딴지걸기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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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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