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축제가 될 수 있다면?

동요 부르는 '철부지' 멤버, 남기용을 위한 유쾌한 추모 음악회

등록 2007.05.22 21:59수정 2007.05.2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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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처연한 살풀이춤.

처연한 살풀이춤. ⓒ 김연옥

지난해 TV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유쾌한 장례식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죽은 자를 보내는 슬픈 장례식이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죽은 자를 웃음으로 떠나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았던 그의 수고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난 20일 오후 4시께 동요를 부르는 '철부지' 멤버의 남기용 선생님을 기리는 추모 음악회에 참석했다. 남기용 선생님이 말기 암으로 이 세상을 떠난 지 꼭 열흘이 되는 날이었다. 그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그를 위해 매일 기도했던 300명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마련한 자리다.


추모 음악회라고 해서 화려한 무대 위의 거창한 공연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남 선생님이 생전에 즐겨 찾곤 했던 정금교회(경남 마산시)에서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모여 그와의 추억을 서로 나누며 그저 노래하고 춤추고 시 낭송도 하는, 그런 소박하면서도 별난 추모 난장이라 할 수 있다.

1997년에 셋이서 만나 평화, 생명, 반전, 통일, 환경 등을 주로 노래 불렀던 '철부지'. 작곡을 하는 고승하(60) 선생님과 부산대 섬유공학과 동기로 대학 시절부터 각각 하모니카와 기타로 이름을 날렸다는 남기용(66), 전정명(66) 선생님이 바로 '철부지' 어르신들이다.

푸른 오월이
장미를 저리 붉게 꽃피웠고
일년의 열한 달들이
푸른 오월 저리 빚었네요.
장미꽃 앞에서
환한 당신
우주의 중심

- 이병철의 '우주의 중심'


귀농운동을 펼쳐 온 이병철씨의 남기용 선생 추모시 '우주의 중심'에 고승하 선생님이 곡을 붙인 노래를 모두 같이 부르면서 작은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온 김정희씨가 흰 수건을 들고 살풀이춤을 처연하게 추기 시작하자 가슴에 스며드는 슬픔 가운데 이상스레 눈부신 아름다움이 느껴지던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

a 가수 김산의 등장으로 갑자기 잔치판이 벌어졌다. 남기용 선생님도 마냥 슬퍼하기보다 신명 나게 한판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더 좋아할 것 같았다.

가수 김산의 등장으로 갑자기 잔치판이 벌어졌다. 남기용 선생님도 마냥 슬퍼하기보다 신명 나게 한판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더 좋아할 것 같았다. ⓒ 김연옥

민중가수 김산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잔치판이 벌어졌다. 천상병의 시 '귀천'에 고승하 선생님이 곡을 붙인 노래에 이어 '일어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르자 모두 박수를 치며 한순간 흥겨운 잔치 분위기로 변해 버렸다.


아마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남기용 선생님도 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하고 있는 것보다 그렇게 신명 나게 한판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더 좋아할 것 같다.

a 김해문화원 하모니카반 할머니들. 남기용 선생님에게서 하모니카를 배웠다고 한다.

김해문화원 하모니카반 할머니들. 남기용 선생님에게서 하모니카를 배웠다고 한다. ⓒ 김연옥

생전에 하모니카를 정겹게 부르던 남기용 선생님은 순박한 소년 같았다. 그에게서 하모니카를 배운 김해문화원 하모니카반 할머니들도 그가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었다는 '선창' '찔레꽃' 등을 차분하게 연주했다. 그리고 하모니카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해 준 그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a 팬플루트를 연주하면서 몹시 울던 박영운씨. 남기용 선생님 댁과 마주 보고 살았다.

팬플루트를 연주하면서 몹시 울던 박영운씨. 남기용 선생님 댁과 마주 보고 살았다. ⓒ 김연옥

그의 아파트 같은 층에서 마주 보고 살았던 박영운씨는 팬플루트로 '광화문 연가'와 '외로운 양치기'를 연주하면서 많이도 울었다. 자신을 울보라고 소개한 그는 "나이를 먹어도 멜빵바지 입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사 먹을 수 있어 '철부지' 활동이 참 좋다" 고 하던 남 선생님의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진해에서 온 '여고시절' 노래패의 무대 등 그날 밤을 꼬박 새워도 추모 음악회가 끝이 나지 않을 듯했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시작일까. 정금교회의 김용환 목사는 죽음을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축복이고 선물이라면 죽음 또한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이 지상과 아름답게 손을 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a 동요를 부르는 '철부지'. 지난 10일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남기용 선생님의 빈 자리가 느껴졌다.

동요를 부르는 '철부지'. 지난 10일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남기용 선생님의 빈 자리가 느껴졌다. ⓒ 김연옥

그런 의미에서 남기용 선생님이 좋아했던 작고 소박한 교회에서 그를 몹시 그리워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울고, 또 웃으며 이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다 간 그를 위해 한바탕 축제를 벌인 셈이다.

지난달 19일 광주에서 열린 '아기사랑 태교음악회'의 초청 공연을 마지막으로 무대에 더 이상 서지 못한 그가 어느날 공연을 위해 떠나는 고승하 선생님에게 건넸다는 말 한마디, "내만 빠져서 약오른다"는 그 말이 나는 자꾸 잊히지지가 않았다.
#철부지 #남기용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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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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