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교육청은 올해 들어 네 차례 일선 학교에 사설모의고사 금지 관련 공문을 내려보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오마이뉴스 윤성효
23일 상당수 학교가 교육부의 지침을 어기고 사설모의고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교조 경남지부는 창원과 마산, 김해 등 경남지역 대부분 일반계 고교에서 사설모의고사를 실시하고, 21일 이미 학교에 문제지가 배달되었다고 밝혔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울산지역 상당수 학교도 같은 기간에 1·3학년 내지 2·3학년 등이 민간출판업자가 주관하는 사설모의조사를 치른다.
지난 8~11일 사이 중간고사를 치른 학생들이 또 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6월 7일에는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대입수능 모의고사를 치르며, 같은 달 13일에는 인천시교육청 주관의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른다.
경남에서는 지난 4월 17일 진주·거제·밀양·창원지역 10여개 학교에서 사설모의고사를 실시했다. 몇몇 학교에서는 시험지를 수령해 놓았다가 전교조 등에서 반대해 시험을 실시하지 않고 쌓아놓기도 했다.
학생 인식도 조사 "금지 사실 잘 모른다"
문제는 사설모의고사를 교육부가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당수 학생들이 모른다는 점이다. 전교조 경남지부는 최근 김해·창원·마산지역 11개 고교 1155명을 대상으로 '학생 일과와 교육 관련 인식도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에서 사설모의고사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다'는 답변은 52.3%, '모른다'는 46.7%였다(기타·무응답 1%). 특히 공·사립 고교 학생들의 인식차이가 나타났는데, 공립에서는 '알고 있다'가, 사립에서는 '모른다'가 더 많았다. 사립에서 사설모의고사를 더 많이 친다는 사실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학생들은 사설모의고사의 전국 응시생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연합학력평가(2007학년도)의 경우 1학년은 56만여명, 2학년은 48만여명이 응시했다. 그런데 사설모의고사는 평균 7000~4만여명 정도가 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 결과, 사설모의고사의 응시생수를 '알고 있다'는 답변은 33.4%였고 '모른다'는 64.8%였다(기타·무응답 1.8%). 학년이 올라갈수록 '알고 있다'는 비율이 점점 높았다.
교육부·교육청, 여러 차례 금지 지침 보내기도
교육부는 사설모의고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공문을 여러 차례 보내 사설모의조사 금지를 통지했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의 경우 지난 1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설모의고사 참여금지 지도 강화'라는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는 1998년부터 사설모의고사 참여제한 지침을 만들었고, 2001학년도부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전학년에 걸쳐 전면 금지시켰다. 대신에 시·도교육감 협의로 전국연합학력평가를 1·2학년은 4회, 3학년은 6회로 실시하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은 "공교육의 사교육 의존도 억제와 학교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 "사설모의고사 응시에 따른 민원과 각종 부조리 발생 원천 차단" 등을 위해 사설모의고사를 금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육현장 편법 동원, 수업하지 않고 수업한 것처럼 꾸며"
사설모의고사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고 실시하며, 학교 서열화 구조를 존속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교사들은 학생의 소양 적성에 따라 진학지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설모의고사 기관의 대학 학과 배치표에 의해 서열화 구도가 짜여진다고 비판한다.
학교에서 사설모의고사를 실시할 경우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는다는 것. 7차교육과정에는 한 해 34주의 수업시수를 다 채워야 한다. 수업시수를 채우지 않으면 상급 학년으로 올라갈 수 없기에, 교육 현장에서 편법이 동원되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사설모의고사를 치른 날짜에 수업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놓기도 한다고 교사들을 밝히고 있다.
학교 회계상 부정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학생들은 사설모의고사 비용으로 1인당 8000원을 낸다. 이는 모두 사교육비로 나가는데, 집행·결산에 대한 심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급식비나 보충수업비 등은 학교 회계에 담겨지는데, 사설모의고사 비용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학교 행정실을 통하지 않고 교사들이 학생한테 비용을 거둬 민간 출판업자 측에 넘기는 형태다. 이에 업자에 대한 소득세원이 노출되지 않고 있어 탈세 의혹도 있다. 부교재 채택료처럼 사설모의고사를 실시할 경우 업자들이 교사들의 회식비 등을 부담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교조 경남지부 "탈법과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
| | | 학부모 단체 찬-반 입장 | | | | 학부모들은 사설모의고사에 찬성과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마산교육사랑학부모회는 지난 11일 전교조 경남지부를 방문하고 "전교조가 항의 성명을 냄으로써 갑자기 모의고사가 취소됐다. 학교운영은 학교장에게 맡겨 두지 왜 반대입장을 표시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앞서 지난 4일에는 '교육도시 울산학부모회' 간부들이 울산시교육청을 방문하고 부교육감을 만나 "고교생들의 학력향상을 위해 사설 모의고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참교육학부모회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장은 "학생들이 시험을 많이 치르는 것에 반대한다. 필요하다면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 시험을 많이 친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된다고 보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학부모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 윤성효 | | | | |
22일 전교조 경남지부는 "23일 사설모의고사 시행에 따른 논평"을 발표했다. 전교조 지부는 "일반계 고교가 23일 사설모의고사 시행을 계획하고 있어서 파행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확연하다"며 "일선 학교장의 교육과정 운영방식은 교육부나 도교육청의 행정적인 지침과 원칙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회계원칙을 따르지 않는 결정적인 탈법·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교조 지부는 "일반계 고교가 사설모의고사를 시행하는 것은 그 동안 공문과 지침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며 "이것은 도교육청의 무능한 행정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실이다. 무려 7년 째 사설모의고사 금지 지침을 어기는 현실에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일선 교사들의 혼란은 수없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전교조 지부는 "문제지가 학교에 들어오고 난 뒤에 취소하기도 하고, 또 시험을 치는 중에 취소되기도 한다"며 "심지어 시험을 다 치르고 나서 답안지를 폐기한 어처구니없는 학교도 있었다. 평가를 제대로 집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과수업을 한 것도 아닌 교육현실의 백태가 여전히 경남 교육계에서 빚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자율에 맡기는 추세인데, 학교장들은 학부모들의 요구로 사설모의고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사설모의고사를 실시할 경우 기관경고를 하게 된다. 기관경고를 받게 되면 교사들은 연수 기회 등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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