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맛있어도 밥 한 그릇이 '뚝딱'

금방 한 밥 한 그릇에 대접받은 기분이네

등록 2007.06.01 10:09수정 2007.06.0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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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째 씹어먹어도 괜찮은 붕어찜. 씨레기가 더 일품입니다.
뼈째 씹어먹어도 괜찮은 붕어찜. 씨레기가 더 일품입니다.이승숙
남편과 자식 위하는 마음, 그게 바로 신앙이죠


지난 금요일(25일)은 비 온 뒷날이라서 그런지 날이 아주 좋았다. 모든 게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날에 집 안에만 있을 수는 없지. 그래서 애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했다. 초파일날 종일 철철 비가 와서 절 나들이를 못했는데 초파일 다음날인 금요일에라도 절에 가보고 싶었다.

특별히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절에 다니게 되었다. 울긋불긋한 단청이 귀신스럽고 법당 안의 향냄새가 거슬려서 절을 싫어했는데 이제는 이상하게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나도 우리 엄마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절에 가서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빈다.

우리 여인네들의 피 속에는 원형질의 신앙이 들어 있는 거 같다. 남편과 자식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원초적인 신앙심이 여인들의 피 속에 원형질로 녹아 있는 거 같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발길이 절로 가는 것이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전등사엘 갈까 싶었다. 하지만 전등사보다는 석모도의 보문사가 나을 성싶었다. 가까이 사는 나야 아무 때나 마음만 먹으면 무시로 절에 드나들 수 있지만 객지에서 사는 아이들은 일부러 마음을 내야 절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서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에 가기로 했다. 빛나는 청춘의 한때를 보내는 두 아이를 위해서 석모도를 향해 출발했다.

석모도의 보문사는 기도도량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절이다. 바위를 파내고 만든 석굴법당은 한낮인데도 서늘했다. 스님 한 분이 독경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여인밖에 없었다.


너덧 살이나 됐을까? 비누 냄새를 폴폴 풍길 것 같은 아이는 귀여웠다. 절을 올리는 엄마 옆에서 놀던 아이는 그러나 잠이 오는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 엄마가 방석을 깔고 아이를 뉘였다. 그리고는 가만가만 아이의 배를 두드려 주었다.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다.

아이를 거두는 어미의 손길, 바로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내 자식 왔냐 하며 따신 밥 차려줄 거 같은, 어머니처럼 푸근한 옛 집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내 자식 왔냐 하며 따신 밥 차려줄 거 같은, 어머니처럼 푸근한 옛 집이승숙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아이를 챙기는 어미 모습이 바로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부처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거 같았다. 법당 안에는 목탁 소리와 함께 스님의 독경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마음을 다 해서 부처님을 만나는 그 여인과 우리밖에 없었다.

기도도량이지만 나는 소원을 빌진 않았다. 내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소망이야 왜 없으랴.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애써 눌러버렸다. 그저 부처님께 고맙다는 말만 되뇌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연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절을 나와서 석모도를 둘러봤다. 때는 점심시간이 지나고도 한참이나 됐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은 터라 밥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다 비슷비슷한 메뉴에 비슷비슷한 맛을 선보이는 식당에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나를 먹더라도 의미 있는 것을 애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애들아, 우리 좀 색다른 거 먹자. 식당밥 말고 집에서 해주는 밥 먹자. 이런 길가 식당들은 다 비슷비슷해. 제대로 대접 받았다는 기분이 안 들어. 난 대접받는 기분이 드는 집이 좋더라. 우리 그 집 가서 밥 먹자."

석모도를 나오면 강화 외포리에 배가 닿는다. 그 곳에서 마니산 쪽으로 쭉 가면 우리 집이 나오지만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고인돌이 있고 북한이 바라보이는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무얼 먹은들 어떠리

"라면 묵고 살로 가나? 새 밥을 먹어야 살로 가제." 가족들에게 밥만은 항상 새 밥으로 해주라시던 친정 엄마가 생각납니다.
"라면 묵고 살로 가나? 새 밥을 먹어야 살로 가제." 가족들에게 밥만은 항상 새 밥으로 해주라시던 친정 엄마가 생각납니다.이승숙
강화에는 없는 것이 없다. 산도 있고 너른 들도 있다. 그리고 바다도 있다. 하지만 강이 없다. 강이 있다 하더라도 강이라기보다는 수로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로들은 너른 들 이쪽 저쪽 구석구석 잘 닦여져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저수지가 있다.

그 많고 많은 저수지며 수로에는 붕어들이 몰려다니나 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강태공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우리가 가는 그 집도 저수지 근처에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주요리는 붕어찜과 매운탕이다. 길가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간판을 따로 해놓은 것도 아니다. 강화도 한 구석에 숨어 있어서 아는 사람만 가는 집인데도 점심시간에 가면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항상 손님들로 넘친다.

우리가 갔을 때가 점심 때도 지났고 그렇다고 저녁 때도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이라곤 찬모들 둘뿐이었다.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니 물 묻은 손을 앞치마 자락에 쓱 닦으면서 예사롭게 사람을 맞아주었다.

돌기와를 얹은 옛집을 그대로 식당으로 이용하는지라 그 집은 볼거리도 많다. 장정의 허리통처럼 굵다란 서까래며 기둥들은 이 집이 예사 집이 아님을 이야기해 준다. 예전에는 한 살림 했을 법한 집이란 걸 말없이 보여준다.

안방을 통째로 차지하고 앉았다. 내 집인 양 두 다리도 죽 뻗고 편하게 앉았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성미 급한 사람이라면 조급증이 낫을 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조급증은 버려야 한다. 붕어뼈가 연하게 다 익을 때까지 기다려주면 나중에 뼈째 다 먹을 수 있는 붕어찜이 나온다.

사랑하는 두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있자니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어떤 걸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한데,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데 이까짓 기다림쯤이야 못 참을 게 뭐 있겠는가.

그렇게 조금 기다렸더니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순무김치며 산나물 무친 거며 부침개에 대추정과까지, 이것저것 젓가락 가도록 밑반찬이 실하게 나왔다. 그리고 밥이 나왔다.

아, 그 밥을 어찌 설명할까? 전기솥에 해두었던 밥이 아니라 가마솥에 한 밥이 나왔다. 이제 막 한 밥, 바로 우리들만을 위해서 한 밥이었다. 집에서 식구들을 위해서 해주는 그런 밥이 나왔다.

금방 한 밥 한 그릇에 대접받은 기분이네

누룽지를 솥판 그대로 긁어다 주네요. 고소한 누룽지, 이게 얼마 만이냐.
누룽지를 솥판 그대로 긁어다 주네요. 고소한 누룽지, 이게 얼마 만이냐.이승숙
기름이 좌르르르 흐르는 듯한 밥, 그 밥을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자 반찬 없이 밥만으로도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을 거 같았다.

"애들아 이 밥 좀 봐. 금방 한 밥이야. 우리만을 위해서 해주는 밥이야. 나는 이 밥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정성이 보이잖아. 제대로 대접받는 기분이다."

밥뚜껑을 열던 두 아이도 가만히 밥을 들여다본다. 방금한 밥, 따끈따끈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밥 속에 스며 있었다.

금방 한 밥을 애들에게 먹여야 그 밥이 살로 간다고 엄마는 늘 그러셨다. 식은 밥을 애들에게 먹이면 그 밥이 살로 안 간다며 애들 밥은 꼭 새 밥을 해서 먹이라고 그러셨다.

어른들 말이 빈 말은 아니다. 새 밥을 해서 주면 밥맛으로도 애들이 밥을 맛있게 먹는다. 그러니 단단하고 야무지게 크는 거다. 병치레도 안 하고 잘 크는 거다.

먹을 게 지천인 세상이지만 엄마가 해주는 밥만 한 게 또 어디 있으랴. 금방 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 한 그릇이면 거친 반찬도 문제없다. 엄마의 정성이 담겨 있는 뜨거운 밥 한 그릇, 그 밥을 먹고 자라 지금 우리가 있는 거다.

금방해서 떠주는 밥 한 그릇에 그만 흥감해져 버렸다. 제대로 대접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릇 밑이 다 보이도록 밥을 다 긁어먹었다. 그리고 누룽지를 뜯어먹으면서 느긋하게 포만감을 즐겼다.
#석모도 #보문사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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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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