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건넌 탐험가, 코끼리새 찾아간다

[인터뷰] <실크로드의 땅> 펴낸 꿈꾸는 여행가 김준희

등록 2007.06.14 09:23수정 2007.06.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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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중앙아시아 여행기를 모아 <실크로드의 땅>을 펴낸 김준희 기자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중앙아시아 여행기를 모아 <실크로드의 땅>을 펴낸 김준희 기자 ⓒ 오마이뉴스 조경국

나는 김준희(37) 기자를 만날 때 마다, 전화할 일이 있을 때마다 예전에 물었던 것은 잊은 듯이 또 물었다.

"책은 언제 나옵니꺼" "다음 여행지는 어딥니꺼" "언제 떠납니꺼."


싫증낼 만도 한데도 그는 처음 질문을 받는 것처럼 대답해 주었다.

"곧 있으면 나옵니다" "마다가스카르요" "이제 떠날 날 얼마 안 남았어요."

지난해까지 <오마이뉴스> 여행면 편집을 맡으면서 그의 중앙아시아 여행기를 관심 있게 읽어왔던 인연 때문인지 다른 기자들보다 얼굴 볼 일도 많았고 전화 통화할 일도 많았다.

곧 나온다던 그의 책은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평민사)라는 제목으로 묶여 지난 5월21일 출간되었고,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에 떠있다는 거대한 섬 마다가스카르로 떠날 날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달 말쯤이면 그는 뜨거운 태양이 내려쬘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허름한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해질녘 노을을 보고 있을 것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자란다는 <어린왕자>에도 나오는 거대한 바오밥나무 아래서 낮잠을 즐기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15소년 표류기>류의 모험소설을 '무지하게' 좋아했던 김준희 기자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뭐라건 말건 탐험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35살이 되던 2005년 모든 일을 접었다. 그리고 5년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인 퇴직금을 밑천 삼아 본격적으로 중앙아시아의 사막으로 가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배낭을 꾸렸다.

아마 그에게 중앙아시아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기간은 탐험가의 본능을 억누르며 살았던 '인고의 세월'이 아니었을까. 김준희 기자는 왜 일상을 벗어나 여행자의 삶을 선택했을까. 그는 여행의 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익숙한 곳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향할 때는 설렘과 함께 불안한 기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때로는 두려움까지도. 여행이 주는 묘미 중 하나는 그런 불안한 감정을 극복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는 것이다. 낯선 곳에 처음 도착해서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그런 환경을 자신에게 익숙하게 만들어 가는 것. 처음 보는 거리와 처음 보는 사람과 때로는 적대적인 눈빛이 있는 곳을 친숙하게 바꾸어 가는 것이다." - <실크로드의 땅> 92쪽에서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 찍고 마다가스카라로

a <실크로드의 땅> 겉표지

<실크로드의 땅> 겉표지 ⓒ 평민사

김준희 기자가 쓴 <실크로드의 땅>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김준희 기자에게 책을 건네받자마자 (북 디자이너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쉬운 소리를 했다. 내용은 좋은데 디자인을 좀 튀게 만들지 너무 심심하게 만들었다고. 넘쳐나는 여행서들 중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2쇄도 찍고 3쇄도 찍고 해서 마다가스카르도 가는 데 도움도 되고 글 쓰는 여행가로 이름도 날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실크로드의 땅>은 그가 2005년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중앙아시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 3개국을 돌아보고 써내려간 여행기다. 그가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중앙아시아 여행기 중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천년고도 부하라와 이찬칼라를 보고 나는 한 마디로 '꽂혔었다'. 언젠가는 무조건 한번 가봐야겠다는 불뚝심이 뱃속 깊은 곳에서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김준희 기자는 부하라에서 이찬칼라로 가는 길에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 카라쿰과 키질쿰.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아지랑이와 가끔씩 나타나는 양떼뿐이다, 하지만 그 숨 막히는 사막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사막의 열기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일까"고 메모를 남겼다.

<한겨레> 연재 당시 탐사단을 꾸려 중앙아시아를 일주한 정수일 교수의 <실크로드 문명기행>에 나오는 부하라, 마르코 폴로가 떠난 옛길을 걸어서 여행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에 나오는 부하라(마르코 폴로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전쟁 통에 부하라에서 3년 동안 머물렀었다고 한다), 하늘도 두 조각 낼 수 없을 것 같은 단단한 불심으로 인도를 향해 떠난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안국(安國, 부하라의 옛 중국식 지명)보다 김준희 기자의 '부하라' 이야기에 꽂힌 것은 나도 '용기'를 내어 온 도시가 고성과 묘당, 모스크로 가득한 <천일야화>의 나올 법한 그곳에서 밤을 지새울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준희 기자가 부하라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옮겨본다.

"부하라의 구시가지는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황토색의 낮고 둥근 석조 건물과 푸른색 돔으로 장식된 수많은 유적들. 조용한 라비하우스 주위 카페에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더라도 놀랄 것 같지 않다."

그것뿐인가. 내륙에 위치한 바다 아랄해,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호수 발하쉬, 산 깊숙이 고여 있다는 투명한 호수 이식쿨도 그가 갔던 길을 따라가면 모두 볼 수 있다. 먼저 길을 떠나갔던 이는 고생을 했을 것이나, 그의 발자국을 밟고 가는 이의 마음은 가벼울 것이다. 물론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딛을 때 느낄 수 있는 가슴 뻑뻑한 감정도 함께 가벼워지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가 마다가스카르로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돌아와서 보내올 여행기를 읽는 것보다 미리 배낭 메고 떠나는 여행가의 마음이 어떤지 떠보고 싶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움에 몸서리치더라도. 다음은 지난 6일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나눴던 김준희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

a 천년 고도 부하라에는 수많은 성터와 모스크와 메드레세(교리를 공부하는 학교)가 있다. 부하라에서 가장 유명한 미리아랍 메드레세.

천년 고도 부하라에는 수많은 성터와 모스크와 메드레세(교리를 공부하는 학교)가 있다. 부하라에서 가장 유명한 미리아랍 메드레세. ⓒ 김준희

"타클라마칸 사막에 꼭 가보고 싶었다"

- 첫 여행지가 왜 중앙아시아였나.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지도를 보며 중앙아시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실행에 옮겼고, 이렇게 다녀온 여행기를 책으로 묶어서 냈으니 한 가지 꿈은 이룬 셈이다."(김준희 기자는 중앙아시아에 다녀와 <오마이뉴스>에 총 33편의 여행기를 연재했다.)

- 중앙아시아는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매력적이지 않나. 아무래도 정보가 많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떠날 때(2005년)만 해도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토막토막 올라오는 정보를 스크랩하며 여행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장준희 박사가 쓴 <중앙아시아>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행 당시 타슈켄트에 머물고 있던 장준희 박사를 직접 찾아가 만나 뵈었었다. 책에 사인도 받았다. 중앙아시아로 떠날 사람들에게 내 책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앙아시아는 무엇보다 물가가 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ℓ짜리 맥주가 우리 돈으로 1500원 정도였단 거다. 오랫동안 여행을 꿈꾼다면 한 번 가볼 만 하다. 2005년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체류하는 데 약 500만원이 들었다. 여기엔 비행기삯과 비자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책에 나온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 3개국 뿐 아니라 몽골·중국도 여행지에 포함시킬 수 있다."

- 구체적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회사를 그만 뒀었나.
"'구체적'으로 계획은 세우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탐험가가 되고 싶었다. 뭐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썰렁했지만. 이런 뉘앙스였다. '탐험가 해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나.' 하여간 막연하게 탐험가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지금 그렇게 어릴 적 꿈을 이뤄가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중앙아시아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아랄해와 카스피해와 발하쉬 호수를 보고 싶었다. 타클라마칸 사막도 보고 싶었고."

- 여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7월에 출발해, 아무래도 뜨거운 날씨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무더위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 더위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리고 여행을 하다보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어려움인데 불친절하다고 소문난 우즈베키스탄의 한 시장에서 상인을 붙잡고 '뚜알렛(화장실)'을 물었더니, 가게도 내팽개치고 으슥한 곳으로 계속 끌고 갔다. 혹시나 무슨 일 당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목적지는 뚜알렛이었다. 괜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전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지금은 꿈꾸는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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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조경국

- 중앙아시아에 이어 마다카스카르를 다음 여행지로 잡은 이유는?
"여우원숭이, 바오밥나무도 보고 싶고, 무엇보다 코끼리새의 흔적을 확인하고 싶었다. 키가 3m 넘게 자라고, 알의 용량만 8ℓ였던 코끼리새는 유럽사람들이 마다가스카르에 들어와 잡아먹기 시작해 멸종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지금은 새의 뼈와 알만 박물관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런데 왠지 꼭 멸종된 코끼리새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 의외다. 희귀생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나.
"희귀생물이라기 보다 특이한 생물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섬의 생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 그래서 마다카스카르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땅이었다."

- 전혀 그 쪽과는 상관없는 공부와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학 때 전공은 전자공학이었다. 98년에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그때가 IMF 절정기였지 않나. 한 반년 동안 열심히 취업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었다. 그러다 99년 봄에 겨우 전공을 살려 회사에 들어갔고, 이동통신 관련 벤처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다 2005년에 만 5년 동안의 회사생활을 마무리했다."

-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떠나기 쉬웠을 것 같다(내가 유부남이기 때문에 '꿈'을 위해 '궤도'를 이탈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하다).
"부정하진 않겠다.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회사 그만두고 여행 다닌다는 게 나 혼자만의 결정이라면 쉬울 수도 있겠지만 결혼하면 아무래도 힘들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꿈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떠날 수 있지 않겠나.

직장 그만두기 전 나보다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조사를 많이 했었다. 그 중에서 한 부부가 있었는데, 2년 정도 세계를 떠돌며 촬영했던 사진들을 홍대 앞에서 팔아서 생활한다는 글을 읽은 적 있었다. 그들도 아마 떠나기 전엔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궤도를 따라 사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 중세에서 1870년까지

거다 러너 지음, 김인성 옮김,
평민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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