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보충수업은 '보충'이 아니라 '굴레'다

[우리 교육의 공공연한 거짓말 혹은 진실 ①] 보충수업은 원하는 학생과 필요한 학생에게 해야

등록 2007.06.16 10:11수정 2007.06.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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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공공연한 거짓말이 있다. 우리는 이런 거짓말을 하거나 들을 때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거짓말을 한 사람이나 거짓말을 들은 사람이나 감정이 상하지도 않고 별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특히,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은 부담을 갖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공공연한 거짓말이 있다. 바로 자율학습(야간자율학습)과 자율보충수업, 학교운영위원회다. 학생이나 교사, 학부모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들인데 서로가 암묵적으로 용인한다.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혹은 귀찮아서 관심이 없어서 받아들이는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방학 중 보충수업 때문에 학교마다 시끄럽다. 학교에 따라서 사정은 다르지만 조용히 계획대로 진행되는 학교도 있고, 학교 구성원들 간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는 학교도 많다. 게다가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인 태도로 보충수업에 임하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학생이 먼저고 교육이 모두인데 다른 생각들이 참으로 많다.

이러다 보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분명히 원하는 학생만 보충수업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학생이 보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요즈음 선택형 보충수업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실질적인 선택은 어렵다. 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한 선택이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는 격이 되고 만다.

교육청이나 교육인적자원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앵무새처럼 원하는 학생만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형식적으로 보충수업에 대한 동의를 묻는 절차를 밟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는 용지를 제출하는 학생은 전혀 없다. 바로 이것이 현실이다.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보충수업을 계획하고 있으니 동의나 반대가 있을 수 없다.

방학 중 보충수업은 사실 교육적 효과에 대한 검증이나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모든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다. 서울의 몇몇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20여일이 넘는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대다수의 교사도 방학 중 보충수업의 효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학교공부(입시공부)를 잠시 내려놓고 인생도 생각해보고 자연도 생각해 보고, 세상도 생각해 볼 기회가 방학이 아닌가. 그렇지만 요즈음의 방학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학습을 요구하고 있다.

산 속을 거닐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삶의 질을 향상시켜
산 속을 거닐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삶의 질을 향상시켜노태영
실제로 방학 중에 실시하는 보충수업은 예체능이나 비입시과목은 제외되고, 국·영·수 과목에 사회와 과학 과목만 하니까 학생들의 학습 부담은 더 커진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평상시보다 더 많은 수업을 해야 한다. 방학 동안 자기 연수와 자기계발은 보충수업이라는 괴물 앞에서 '끽' 소리도 내지 못한다. 심지어는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1정 연수도 눈치를 봐야 하고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물론 학습이 부진한 학생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중요하다. 특히, 학교에서 내가 가르친 학생이 부진학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른 나라의 서머스쿨(하기강좌)처럼 학습 부진아에 대한 대책이 분명 있어야 한다. 정규수업과정에서 부진하여 더 많은 학습이 필요한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일선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학 중 보충수업은 학생들의 학습능력이나 학업수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싫든 좋든 해야 하는 수업일 뿐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수준에서 원하는 만큼의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학습효과가 높게 나타날 수 있는데 지금의 보충수업은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도 방학 중 보충수업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수업부담뿐만 아니라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할 기회를 빼앗기는 것이다.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정리하고 2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방학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률적으로 시행되는 보충수업은 학생들 각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교사에게도 보충수업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 자기발전과 충전의 기회로 방학을 활용해야 하는데 20여일이 넘는 보충수업은 거의 모든 연수(re-training)나 전문성 제고의 기회를 빼앗길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휴식 기회도 잃어버리고 있다. 이 보충수업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의 담보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와 80년대에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실시되었던 하방운동(下方運動)이 현재의 중국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있다고 주장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학생들과 교사들에게도 이와 같은 삶의 체험이나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의 경험이 매우 필요하다.

여름방학은 단조롭고 획일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나를 뒤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꿈꾸어 보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풀밭에 누워 즐기는 삶의 여유는 에어컨 바람 속에서 영어단어 하나, 수학문제 하나 푸는 것보다 삶의 질을 풍요하게 만든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길 가의 빨간 산딸기를 볼 수 있는 여유마저도 사치인 학생들의 삶이 안타까워
길 가의 빨간 산딸기를 볼 수 있는 여유마저도 사치인 학생들의 삶이 안타까워노태영
이와 같은 좋은 기회를 학생들에게 빼앗는 것은 어른의 이기심이나 몰가치적인 삶의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는 체험학습이나 현장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중·고등학교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형식적인 통과의례가 되어 버리는 교육현장이 문제가 많다.

이제부터라도 학생들에게 방학을 돌려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방학을 활용하여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구절이 나온다.

다른 사람에게 뜨거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자기 자신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학생에게 주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입시교육 때문에 자신에게 뜨거운 마음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보충수업이라는 굴레에 학생들을 가두지 말고 저 넓은 들판과 저 깊은 산 속에서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보충수업 #교육인적자원부 #교육청 #방학 중 보충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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