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자율학습, 기만적인 우리교육 현주소

[우리 교육의 공공연한 거짓말 혹은 진실 ①] 야간자율학습 혹은 ‘야자’

등록 2007.06.21 15:33수정 2007.06.2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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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시간에 옆 학생과 이야기 했다가 선생님에게 혼났어요."
"야자시간에 소설책 읽는다고 샘에게 맞았어요."
"야자시간에 도망갔다고 심한 벌을 받았어요."


학생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교무실에서도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도망가거나 잠을 잤다고 학생을 꾸짖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물론 학생들이 올바르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도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게 넘어갈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학습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타당성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수도권지역과 같이 사교육이 성황을 이루고 곳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학교에 있으면, 학생들을 유혹하는 온갖 것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야간자율학습은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와 학부모를 위해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학교입장에서도 학생들이 교실에 있으면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학생들 중에는 야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학생과 교육을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자율학습이나 야간자율학습이 실시되면 학업성취도를 높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때의 학업성취도는 개별적인 성취도가 아니라 학교의 평균 성취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몇몇 학생들에겐 자율학습이나 야간 자율학습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모든 학생을 강제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에 있다. 예체능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자율학습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육학습이 체질에 맞지 않는 학생들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예전과는 달리 가정의 학습환경이 좋아지고 있다. 가정에서 TV를 없앤다든가, 거실을 도서관화한다든가,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이 일찍 귀가한다든가, 아예 컴퓨터를 없애는 가정도 많이 늘고 있다. 이런 정도의 성의와 열의를 가진 학부모라면 많은 학생이 모여 획일적으로 공부하기 보다는 개별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학습태도를 몸에 익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학교입장에서는 누구는 참여하고 누구는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학생을 통제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소수의 피해를 보는 학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혼자서 학습할 능력이 안 되는 학생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개인지도를 받는다든가 학원수강을 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밤 9시 40분 이후에 학원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너무 늦게 학원에 가다보니 집에 가는 시간이 너무 늦어져 수면부족이 늘고 있다. 결국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졸거나 도둑잠을 잘 수밖에 없다. 꾸벅 꾸벅 졸면서 수업을 받으면 학습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요즘 수업시간에 보면, 잠이 부족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이 많다. 수업하는 것보다 아이들 잠을 깨우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이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야간자율학습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밤새도록 학습과 관련이 없이 시간을 보낸 학생들도 있겠지만 야자 때문에 학생들의 생활이 거의 야행성(?)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정상적인 생활을 돌려주어야 한다. 학교의 교육역할보다는 보모(caregiving)역할을 더 중시하는 교육자들은 '야간자율학습 폐지는 학생들이 퇴폐적이고 선정적인 밤의 문화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것'이라고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자율학습은 '타율'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율학습이라는 말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지만 자율학습을 타율적으로 통제하다보니 학생들의 자율의식이나 자립의식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하면서 자율적인 생활방식을 갖도록 하려면 학생들에 더 많은 자유시간을 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주지 않으면서 "너희들은 왜 모든 일을 자율적으로 하지 못하냐?"라고 나무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생활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교수들이 그렇게 생활하지 않는 대학생들이 많다고 말한다. 이는 중·고등학교에서 지나치게 타율적이고 주입식 학습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대학교에서도 개인지도(과외)를 받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학습능력이 다른 나라의 대학생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는 자율학습과 입시교육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학습하는 태도가 몸에 배지 않은 학생들이 창조적이거나 독창적인 생각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 2000, 감독 미미 레더)를 보면 야간자율학습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알 수 있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한 장면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한 장면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를 잠시 요약하면, 2급 장애인이면서 사회 선생님인 유진 시모넷 (케빈 스페이시 분)은 수업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찾아 직접 실천하라'는 1년 동안 실천할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한다. 일종의 수행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주인공 트레버(조엘 오스먼트 분)는 거지를 돕는다. 그러면서 트레버와 거지는 '도움주기'라는 놀이를 하게 되는데, 한 사람이 세 사람을 도와주면 도움을 받은 세 사람은 또 다른 세 사람씩 총 9명을 도와주고, 또 9명의 사람은 각각 3명씩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계속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도와주면서 미국의 한 주(州) 더 나아가 미국 전체로 퍼져나간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트레버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미국과 미국인을 감동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교육은 학교라는 건물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많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사회'라는 큰 공동체가 '진정한 학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또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행동을 유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틀에 박힌 교육에서 아이들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에 가두기보다는 사회라는 복잡하고 다양한 소재를 간직하고 있는 교재를 통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율학습이나 야간자율학습은 학생들을 교과서라는 한정된 지식 속에 가두는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자율학습이 진정한 자율학습으로 남기위해서는 학교라는 장소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물론 입시교육이라는 우리교육의 굴레가 존재하지만 작은 것에서부터라도 조금씩 실천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자율학습이 타율로 이루어지는 우스꽝스러운 학교와 교육현실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사고가 절실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야간자율학습 #야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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