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돌'에서 찾은 옛 사람들의 흔적

적오산 자락에 자리잡은 아주미술관과 적오산성

등록 2007.06.27 17:16수정 2007.06.2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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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주미술관 근경.

아주미술관 근경. ⓒ 안병기

현대적 감각을 살린 아주미술관

도시가 가진 가장 큰 결점을 꼽으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산다는 점이 아닐까. 변화에 굶주린 도회지 사람들은 주말만 되면 계절의 변화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비가 온다거나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라도 있는 날엔 변화를 찾는 마음은 주춤거리며 제자리에 주저앉혀지기 마련이다.


떠나기도 그렇고 주저앉기도 그런 모호한 날에 내가 자주 들르는 곳은 북대전 I.C 근처에 있는 아주미술관이다. 아주미술관은 몇 년 전 도시도 농촌도 아닌 비도비촌의 이곳 설목마을 산자락에다 살포시 똬리를 틀었다. 이 미술관은 내게 여러 가지 보너스를 준다.

우선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심드렁해지면 충남 홍성에서 그대로 뜯어다 옮긴 320년된 12칸짜리 한옥을 개조한 '항여조(恒如朝)'라는 전통찻집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며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내가 이 미술관에서 즐겨 받는 보너스는 방현동 구렛들 쪽과 전민동 연분쟁이골 쪽에서 미술관 골짜기로 한꺼번에 몰려드는 겨울 눈보라일 것이다.

차가운 눈보라가 뺨에 와 한꺼번에 부딪힐 때마다 멍한 정신에서 깨어난다. 나는 이 각성의 쾌감을 즐긴다. '항여조' 마당에 서서 수천 수만의 각성을 맛보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즐거움이다. 지난 겨울, 이 즐거움이 나를 수시로 이곳으로 이끌곤 했다.

a 미술관 입구로 올라가는 통로.

미술관 입구로 올라가는 통로. ⓒ 안병기


a 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적오산. 눈앞에 내려다 보이는 한옥 지붕은 '항여조'라는 전통찻집이다.

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적오산. 눈앞에 내려다 보이는 한옥 지붕은 '항여조'라는 전통찻집이다. ⓒ 안병기

지난 일요일(6월 17일), 비가 온다는 소식에 멀리 가는 대신 아주미술관이나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아주미술관은 내숭을 떨지 않는 콘크리트 구조를 하고 있다. 이런 미술관의 외양도 나를 끌어당기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뻣뻣한 구조를 완화하려는 건축적 장치일까. 미술관 입구까지 가는 통로를 마치 다리처럼 만들어 놓고 그 아래로는 물이 흐르도록 하고 있다.


걸어가다 보면 내 그림자가 물 위에 비친다. 물이 내포한 고요함과 내가 연출하는 움직임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그림을 빚어낸다. 백남준도 왔다가 울고 갈 아름다운 비디오 아트 한 편이다.

이상하다. 오늘은 정기 휴관일이 아닌데도 미술관의 문이 닫혀 있다. 헛걸음을 한 것이다. 미술관 옥상으로 올라가서 등을 돌리고 서서 산을 바라본다. 자라가 웅크린 형국이라 해서 적오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이다. 그냥 평지에서 바라보는 산보다 한옥의 지붕 선을 지나서 바라보는 산은 느낌부터 확연히 다르다.


내 마음이 하나의 거문고 줄이라면 지붕은 활대이다. 활대가 마음을 살짝 건드려 하나의 음을 만들어낸다. 옥상에서 바라보면 적오산은 자연적인 오브제로 기능 한다. 적오산은 자신의 정수리(255.1m)에 또 하나의 오브제를 감추고 있다.

바로 백제시대 산성인 대전광역시기념물 제13호 적오산성이다. 애초 여기 오려고 생각했을 때부터 미술관을 둘러본 다음 저 산에 올라 산성을 답사할 예정이었다. 여기서부터 산성까지는 700m가량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전통찻집이 있는 한옥 쪽으로 내려간다. 바닥에 깔린 침목이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싱그러운 울림을 준다.

역사가 남긴 아름다운 오브제 적오산성

a 지금도 출입 통로로 사용되는 남문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측되는 성벽.

지금도 출입 통로로 사용되는 남문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측되는 성벽. ⓒ 안병기


a 남문지 안쪽의 너른 건물지.

남문지 안쪽의 너른 건물지. ⓒ 안병기

적오산 꼭대기를 향해서 천천히 올라간다. 하얀 고삼 꽃, 붉은 참나리꽃 등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꽃들이 산의 표정을 풍부하게 만들고 산을 오르는 사람의 마음을 풍요하게 한다. 금세 적오산 고스락 근처 건물지에 닿는다. 빈터엔 하얀 개망초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지난 겨울, 흰 눈이 쌓여 있을 적 이곳에 다녀간 이후 처음이다. 적오산성은 산 고스락에 테를 두르듯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백제시대 유물로 봐서 이 산성이 백제시대 소비포현의 치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견해가 있고 그렇게 통용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내가 비록 학자는 아니지만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렇게 해발 250m나 되는 높은 곳에 행정 중심지가 있다는 것은 대전에 위치한 다른 산성과 비교해봐도 통상적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술군(雨述郡)의 치소라고 알려진 우술성은 해발 145m 밖에 되지 않는 곳에 있으며 유성구에 있는 옛 노사지현의 치소라고 비정 되는 구성동산성도 해발 86.7m 정도의 높이에 있다. 만약 여기에 치소가 존재했다면 다스려야 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의 처지,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숨을 할딱이며 최소한 20~30분 가량은 올라와야 하니 말이다.

a 아직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는 동벽.

아직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는 동벽. ⓒ 안병기

성은 높이 230m가량 되는 등고선을 따라 북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등산로가 되어버린 동쪽 성벽을 타고 걸어간다. 돌을 쌓은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성벽의 윤곽은 뚜렸하다. 아마도 성돌은 저 흙속에 묻혀 있을 것이다.

적오산 고스락에 있는 '말바위'라는 바위 옆을 지나면 아직 무너지지 않은 옛 성벽이 30여m 가량 남은 동벽에 도착한다. 성벽은 다듬지 않은 돌을 가로로 엇물려 쌓았는데 아랫부분에서 윗부분으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뒤로 물려가며 쌓은 흔적이 역력하다.

아래서 올려다 보면 약간 비스듬하게 경사져 있다. 내가 돌아본 대전의 산성 가운데는 동벽이 남아 있는 곳이 가장 많았다. 동쪽에서 쳐들어 오는 적 신라를 막기 위해서 그쪽 성벽을 쌓는 일에 좀 더 심혈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성벽 아래엔 허물어진 성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시간이 남긴 추락이 무척 아름답다. 저건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라 역사를 설명해주는 돌멩이다. 저것을 함부로 옮기면 성돌에 입력된 역사는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설픈 '복원'보다 차라리 '아름다운 폐허'가 나은 이유가 그런 것이 아닐까.

a 아직도 남아 있는 옛 우물.

아직도 남아 있는 옛 우물. ⓒ 안병기

다시 평지로 올라와 서문터와 우물이 있는 반대편 골짜기를 향해서 걸음을 옮긴다. 잡초가 수북하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뱀이라도 튀어나올까 봐 조마조마하다.

서문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돌로 만든 2단의 석축으로 된 우물이 있다. 최근까지도 사용했던 흔적이 있으며 무당들의 기도처로 쓰였던 흔적이 버려져 있다. 우물을 기점으로 건물지로 보이는 꽤나 너른 공터가 있다. 고려시대의 것들이 포함된 출토 유물과 우물의 존재로 보아 이 성이 백제 시대에만 쓰였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곳 서문지가 있는 골짜기는 푹 파인 계곡 사이에 있어 적으로부터 문의 위치를 들키지 않도록 은폐 엄폐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마도 적 몰래 드나들 수 있는 암문이나 진배없었을 것이다.

서문지에서 바라보면 안산동산성이 가까운 우산봉이 빤히 바라다 보이고 저 멀리 계룡산도 아스라이 보인다. 어쩌면 이 적오산성은 우술성이나 계족산성 쪽보다는 안산동산성 쪽에 더 가까운 연결 고리를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a 몇 미터 남지 않은 잔존 북벽. 이마저도 서서히 허물어져 가고 있다.

몇 미터 남지 않은 잔존 북벽. 이마저도 서서히 허물어져 가고 있다. ⓒ 안병기


a 북문지.

북문지. ⓒ 안병기

성돌에서 엿보는 옛 민중의 삶의 표정

서문지를 나서 좀 전에 걷던 산길로 다시 올라온다. 올라오는 길에 조금 남아있는 북벽에 들른다. 이윽고 성의 끝인 북문지에 도착한다. 오늘의 여정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백제시대로부터 1300여 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지났다. 한때는 피어린 싸움의 현장이었을 성터는 이제는 시간이 떨어뜨리고 간 쓸쓸한 오브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저 아래 아주미술관 큐레이터 <서편제>의 배우 오정혜를 닮은 아름다운 아가씨다. 언젠가 그 아가씨에게 이 적오산성에 가본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면서 한 번 가보겠노라 했다.

공간에 갖힌 오브제는 감상하려 다니지만 역사와 세월이 남긴 산성이라는 오브제를 들여다 보려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에 산성보다 더 스케일이 크고 아름다운 오브제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산의 자연의 능선을 따라 전개되는 곡선, 성곽의 안팎이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의 일부가 돼버린 인공의 구조물인 산성은 그냥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다. 이름없는 민중들의 피와 땀과 한숨과 눈물이 뒤범벅된 '불후의 명작'이다. 내가 옛 성터를 찾는 이유는 거기엔 승자만이 기억되는 종이로 쓴 뻔뻔스러운 역사 대신 기록되지 않은 패자의 역사가 간직돼 있기 때문이다.

점점 허물어져 가며 소멸을 기다리는 적오산성 터를 나서 금병산 자락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아주미술관 #적오산성 #적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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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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