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놓일 곳에 경부운하 뚫는다?
국가교통계획 무시 '나홀로 공약'

[운하 예정지 르포 ④] 경북 문경, 기차 대신 배를 띄우겠다지만

등록 2007.07.02 11:59수정 2007.08.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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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명박 후보는 경부운하 낙동강 구간과 남한강 구간을 잇기 위해 경북 문경 조령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어 배를 지나가게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경부운하 낙동강 구간과 남한강 구간을 잇기 위해 경북 문경 조령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어 배를 지나가게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지난달 22일 찾아간 경북 문경. 조선시대엔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서울)으로 가는 영남의 인재들이 영남대로를 타고 문경새재를 넘어 갔던 곳이다. 또 지난 1995년까지만 하더라도 철도 경북선의 지선으로 문경선과 가은선이 운행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조치로 유력 산업이었던 석탄산업이 힘을 잃자 두 지선도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이 곳의 민심이 요즘 수상하다. 녹슬은 철길을 보면서 쇠락한 지역 경제의 씁쓸한 이면을 목도해야 했던 주민들에게 경부운하 공약이 '지역경제 부활'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문화재로 등록된 가은역 앞에서 만난 송동선(73)씨는 "여기서 기차를 타고 대구까지 갔던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송씨는 "철로 세 개가 쉼 없이 석탄을 실어 나르고 8량 짜리 여객열차도 운행됐는데, 탄광 문 닫으면서 다 옛일이 되고 말았다"며 아쉬워했다.

그런 송씨에게 이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은 은근한 기대를 하게 만들고 있다. 송씨는 "나뿐 아니라 주민들은 '경부운하가 만들어지면 지역경제도 예전처럼 살아나고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이같은 바람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극히 적어 보인다. 정부의 '국가기간교통망 수정계획(안)'과도 일치하지 않는, 즉 국가 기본계획도 무시한 '나홀로 공약'이기 때문이다.

배 띄우겠다는 곳에 이미 철도건설 계획이

a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국가기간교통망 수정계획안에 따르면 경기 여주-충북 충주-경북 문경 구간엔 중부내륙철도가 건설될 계획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국가기간교통망 수정계획안에 따르면 경기 여주-충북 충주-경북 문경 구간엔 중부내륙철도가 건설될 계획이다. ⓒ 한국교통연구원

이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에 따르면, 남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기 위해 해발 1017m의 조령산을 뚫어 21.9㎞ 길이의 터널이 뚫린다. 충북 괴산군과 충주시 사이를 흐르는 달천과 경북 문경 영강을 잇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 측은 또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터널 높이는 110m로 하고, 충주리프트와 조령 갑문을 양쪽에 설치해 수위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야심에 찬 이 후보의 계획은 이른바 '국가 교통계획의 헌법'으로 불리는 '국가기간교통망 수정계획안'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타당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낳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 5월 25일 발표한 '국가기간교통망 수정계획안'에 따르면 경북 문경지역엔 중부내륙철도가 건설될 예정이다. 수도권과 충북 충주권과 영남권(경기 여주-충북 충주-경북 문경)의 95.8㎞가 연결되는 것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문경선은 충북선·경부선·중앙선이 연결되는 '십자형 철도네트워크'에 포함된다. 특히 교통연구원은 이 계획안에서 중부내륙철도 건설사업을 전반기 사업으로 선정하고 사업비 약 11조원을 들여 단선전철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경북 문경 주민들은 2008년이면 중부내륙철도 건설사업이 착공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고, 2014년엔 문경선을 타고 수도권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 후보의 공약대로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수정계획안이 밝히고 있는 중부내륙철도 건설계획은 수정 내지는 폐기가 불가피하다. 노선이 겹치는 데다가 예산의 중복투자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상위 교통계획과 어긋나는 경부운하 공약

a 폐선이 된 가은선을 주민이 걷고 있다. 문경 주민들은 낙후된 지역경제 회생에 도움이 될 거라며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내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을 표시했다.

폐선이 된 가은선을 주민이 걷고 있다. 문경 주민들은 낙후된 지역경제 회생에 도움이 될 거라며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내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을 표시했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이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 실현 여부를 떠나서 국가의 최상위 교통정책이 한 대권 후보의 공약에 따라 한 순간에 수정 내지는 폐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국가기간교통망 계획은 교통체계효율화법 제3조에 따라 육상·해상·항공 등 종합교통정책과 도로·철도·공항·항만 등 교통시설 투자에 관한 20년 단위의 최상위 장기 종합교통계획이다.

현행 국가기간교통망계획의 사업계획의 기간은 2000년부터 2019년까지다. 이미 7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특히 지난 5월에 발표된 수정계획안은 관계부처 간 협의와 국가교통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1월 중에 확정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 후보 측은 정부의 이 기본계획안에 대해서 검토를 하거나 토론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국가기간교통망 수정계획안이 발표된 지난 5월 25일 공청회 토론자 명단에는 경부운하의 타당성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 후보 측 인사는 한 명도 없었다.

지난 5월 23일 한국토지공법학회가 주최한 '경부운하 구상에 관한 법률적 검토' 학술대회에서 발제를 맡은 신봉기 경북대 법대 교수는 "경부운하 사업은 기존의 장기적 국가발전계획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중요정책으로, 이를 추진하려면 대통령 선거 외에 별도로 이 정책 자체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잘 믿기진 않지만 경부운하는 찬성한다"

문경 가은역에서 만난 송씨는 국가기간교통망 수정계획안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우산을 받쳐들고 옛 철로를 바라보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얕은 강에 물을 어떻게 채워서 배를 띄운다는 것인지, 저 산(조령산)을 어떻게 뚫어 물을 채우고 배를 지나가게 한다는 것인지는 잘 믿기지는 않지만, 워낙 주민들이 어렵게 살고 있기 때문에 (경부운하를)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씨는 경부운하 공약이 '대선용 空約'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송씨를 비롯한 문경 주민들에게 막연한 환상만 심어줘서는 안 된다. 국가기간교통망 수정계획안을 제대로 알리고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이보다 더 큰 경제적 혜택이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한다.

왜 중부내륙철도 건설이라는 국가교통계획을 무시하고 대신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영강의 얕은 수심을 채우기 위해 물은 어디서 어떻게 끌어오겠다는 것인지, 조령산을 뚫는다면 조령산 어느 봉우리를 뚫고 물은 또 어디서 채우겠다는 것인지, 그렇게 문경을 통과하는 운하가 중부내륙철도보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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