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227회

등록 2007.07.03 08:08수정 2007.07.0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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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질문이었다. 함곡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떡였다.

“허나 나는 윤석진이 사부를 시해한 진범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네. 물론 철저히 사부를 배신하고 진가려를 통해 운중보 내부의 모든 것을 보고할 만큼 상만천의 수족이 되었지만 과연 그가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는지 아직도 의문이네.”


함곡은 정말 윤석진이 철담을 시해한 범인인지 의혹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 다 알고 있으면서도 뭔가 의구심이 남아있는 것일까?

“재미있군…. 나는 자네 말을 들으면서도 이런 생각이 드는군. 혹시 윤석진이 우리에게 말했던 ‘보이지 않는 것’…. 혹은 그가 뭔가 눈치 채고 있어서 그것을 막기 위해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네.”

이것은 함곡을 향한 비난이 될 수 있는 말이었다. 아직까지 함곡이 모두 털어놓지 않는 것을 탓하는 말도 되었다. 함곡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유가 풍철한의 매서운 추궁에 정곡을 찔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모두 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런지는 함곡만이 알 터였다.

“자네는… 물론 나에 대해….”

함곡은 매우 조리 있게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헌데 지금은 말이 엉키고 있었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어디까지 말해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풍철한이 결국 그 말을 자르고 마침내 물었다.


“누군가? 자네를 설득하고 자네와 함께 이 엄청난 거사를 실행하는 인물이…? 아니 인물들이 말이네.”

함곡으로서는 올 것이 온 셈이었다. 풍철한은 이것을 가르쳐주지 않고서는 자신을 완전히 믿지 않을 터였다. 함곡은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마지막 방패막이는 풍철한이다. 물론 지금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풍철한이 자신을 내팽개칠 리는 없다는 믿음은 있었다.


함곡은 눈을 떴다. 이 친구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으랴…! 그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친구로서 신의와 예의에 언제나 한결같은 친구인 다음에야…. 자신 역시 이 친구의 능력을 인정하고 믿음을 가지고 있음에야….

그는 검지를 찻잔 속에 잠시 담갔다가 탁자 위에 뭔가 썼다. 그것은 글자를 형성했고 처음에는 분명히 보이다가 나중에는 그저 손짓을 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풍철한의 눈은 더 이상 크게 떠지지 않을 정도로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단 하나의 이름을 적었지만 풍철한은 정말로 경악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할 수도, 아니 아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탁자 위의 물은 말라가고 있었지만 함곡은 다시 소매로 탁자 위를 세심하게 지우기 시작했다. 그냥 물로 써도 나중에 자욱이 남는 법이고, 또한 찻물인 다음에야 더욱 그랬다.

“사실이네…. 그래서 자네에게 설명하자면 길어진다고 했던 것이네….”

풍철한은 약간의 충격을 받은 듯 함곡을 응시하며 잠시 말을 잊었다.

“궁금하겠지만 잠시 참게…. 나머지 아홉 명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게. 자네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들일 테니까…. 왜냐하면 나는 지금 세 가지 변수(變數)에 대해 무척이나 고민하고 있는 중이네.”

“세 가지 변수…?”

“일을 완벽하게 추진하려면 세 가지 변수…. 하나의 문제와 두 인물이 내 의도대로 움직여 주어야 하네. 만약 그것 중 하나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네.”

함곡의 표정은 정말 심각했다. 그는 그 세 가지 변수에 대해 아직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듯 했다. 도대체 천하의 함곡을 심각한 고민 속에 빠뜨린 세 가지 변수는 무엇일까?

“하나의 문제란 무엇인가?”

“바로 자네가 이 사건의 주모자가 나라는 사실을 눈치 챘듯이 회에서도 내 존재를 알았을 가능성이 높네. 아직 징후는 나타나지 않지만 용추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네. 더구나 문제는 바로 목갑이네.”

“목갑…. 그럼 혈서…?”

“그렇다네. 그 안에는 이름과 장인이 찍혀있네. 그것을 자네 아우가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상만천의 수중에 있게 된 것이고…. 상만천은 그 혈서를 수중에 넣었을 수도 있네.”

상만천이 그것을 보게 되면 모든 것이 밝혀지는 것이다.

“정말 큰일이군. 그 사람들 뿐 아니라 자네… 그리고 우리도 위험해지겠군.”

풍철한도 그 결과가 뻔히 보이는 것이다.

“그럼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알고 있네. 그래서 일단 상만천이 그것을 얻었을 것이라 가정하고 임시방편의 조치는 취해 놓았다네. 그래도 남은 두 가지 변수 중 하나가 문제네.”

풍철한이 고개를 끄떡이다가 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뭐가 그리 복잡한가?”

“혈서에 서명한 열 명의 인물 중 한 인물이 상만천과 내통하고 있네.”

“뭐라구…? 이런 빌어먹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단 말인가?”

풍철한이 탓하듯 말하자 함곡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네. 그는 상만천이 심어놓은 인물 중의 하나일 뿐 아니라 우리가 상만천에게 심어놓은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네.”

“젠장할… 서로 속이고 속는다…? 정말 자네같이 명석한 놈들이 아니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노릇이군.”

“그 자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정말 위험해 질 수 있지. 그러기에 아주 중요하고 불확실한 변수라고 한 것이네.”

“그 자가 누군가?”

“자네도 알 필요가 있겠지.”

말과 함께 함곡이 다시 찻잔에 찻물을 손에 묻혀 탁자 위에 썼다. 풍철한이 다시 놀라는 표정을 보이자 함곡은 역시 소매로 탁자 위를 닦아냈다.

“정말 못 믿을 세상이군.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네. 자네가 고민 할만 하군.”

풍철한이 더 이상 놀랄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하나 남은 변수는 누구인가?”

“보주…!”

대답은 간단했다. 하지만 풍철한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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