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 사과가 쿵~!"

[쿠하네 폰카일기 1] 조각공원에서 발견한 커다란 사과

등록 2007.07.03 20:52수정 2007.07.0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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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오래된 도시의 골목 입구에 숨어지내는 1번 출구를 찾는 일은 여러 차례 길가는 사람들을 세워 묻게 합니다. 건물 외벽 타일이 무슨 색인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덕지덕지 붙여둔 간판 숲 사이로, 멀리 직사각형 기둥의 5호선 안내 간판이 나타납니다.

아이 손을 잡아끌다시피 하고, 잰걸음으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조각 공원 방향으로 발길을 틀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뒤도 안보고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18개월짜리 아이가 뛰는 속도에 무에 그리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아이들의 달음박질은 생각보다 꽤 빠릅니다.

a 느릿느릿 걸어오는 엄마를 채근하는 쿠하

느릿느릿 걸어오는 엄마를 채근하는 쿠하 ⓒ 정진영

쿠하의 달리기가 멈춘 곳은 커다란 사과 조형물 앞. 코앞에 거대한 사과를 두고서야 아이는 뒤를 돌아봅니다.

"엄마아∼ 사과가 쿵∼!"
"그래 쿠하야, 커다란 사과가 쿵! 하고 떨어져 있네."
"어부 어부."
"쿠하가 커다랗고 빨간 사과를 업어줄 거야?"
"응. 어부 어부바."


지난해 이맘 때쯤 선물로 받은 동화책 <사과가 쿵>을 아이는 거의 외우다시피 따라 합니다. 물론 발음도 부정확하고, 긴 문장은 건너뛰기 일쑤지만 말이지요. 그래도 비슷하게 발음할 줄 아는 몇몇 단어가 나오는 페이지에 다다르면, 꼭 같이 읽어야 책장을 넘기게 합니다.


<사과가 쿵>은 풀밭에 떨어진 커다란 사과를 기린, 사자, 곰, 토끼, 여우, 다람쥐, 애벌레와 개미, 나비와 벌 등 여러 동물과 곤충들이 함께 먹는다는 아기용 동화책입니다. 귀여운 일러스트가 아이들뿐 아니라 책을 읽어주는 어른들도 기분 좋게 하지요. 동물 친구들이 커다란 사과를 다 먹어갈 무렵, 갑자기 내린 비에도 동물들은 끄떡없습니다. 갉아먹은 사과 꽁지가 큰 우산이 되어 비를 피하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일주일에 두세 번쯤 읽는 그 책 덕에 아이는 우리가 먹는 사과 말고도 아주 큰 사과가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았을까? 의사표현을 구체적으로 하지 못하는 아이의 행동에 초보엄마는 마음대로 상상을 합니다.


a [왼쪽 사진] 사과를 업어주려고 합니다만, 어림없지요. [오른쪽 사진] 탑도리를 마친 녀석이 사과 앞에서 포즈를 취하네요.

[왼쪽 사진] 사과를 업어주려고 합니다만, 어림없지요. [오른쪽 사진] 탑도리를 마친 녀석이 사과 앞에서 포즈를 취하네요. ⓒ 정진영

지하철 출구만 찾던 내 눈에는 띄지 않았던 그 큰 사과 앞에서 쿠하는 탑도리를 하듯 사과 주위를 한 바퀴 빙 둘러보고, 사과를 짊어지겠다는 듯 사과 앞에서 어부바 자세를 취합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18개월짜리 아가의 눈에도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 고마운 작품 앞에서 십오 분쯤 바쁜 걸음을 멈추고 딸아이와 '사과가 쿵 어부바' 놀이를 했습니다. 일부러 시간 내어 찾은 곳은 아니었지만, 시내 한복판에 잠깐의 여유가 가능한 조각 공원이 있어 즐거웠던 오후였습니다.
#폰카일기 #쿠하 #서울 광화문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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