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 평택, 신명에 빠지다.

젊은 국악인과 평택전통예술단 ‘신명’ 제6회 정기공연 열려

등록 2007.07.12 10:33수정 2007.07.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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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당굿’의 한 거리인 ‘군웅청배’를 선보이는 박연식 신명 단장
‘경기도당굿’의 한 거리인 ‘군웅청배’를 선보이는 박연식 신명 단장김영조
'평택'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부분 '미군기지'와 그로 인한 '지역갈등'만 기억하진 않는가. 하지만 평택에는 전통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올곧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 때문에 신명이 넘쳐나는 곳일지도 모른다.

7월 10일 저녁 7시 평택의 남부문예회관에서 젊은 국악인과 평택 전통예술단 '신명'의 제6회 정기공연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아쉽게도 공연장을 청중이 다 메우지는 못했지만 공연장 열기는 그 어느 곳보다 뜨거웠다.


맨 먼저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의 한 거리인 '군웅청배'가 선보인다. 경기도당굿은 정월과 10월에 마을의 안녕과 집안의 태평을 기원하고 풍농(豊農)이나 풍어(豊漁)를 기원하며 마을 사람이 모두 참여하는 굿인데 이중 '군웅청배(軍雄請陪)'는 '치우천왕'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지냈던 '치우제'가 변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신명 박연식 단장의 구음과 소리가 마치 치우천왕을 불러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김숙자류 입춤을 추는 김숙자류 매헌춤보존회 회장인 이정희 선생
김숙자류 입춤을 추는 김숙자류 매헌춤보존회 회장인 이정희 선생김영조

경기재인청을 이끈 이동안 선생의 진쇠춤을 추는 그의 수제자인 운학전통춤 보존회 회장 이승희 선생
경기재인청을 이끈 이동안 선생의 진쇠춤을 추는 그의 수제자인 운학전통춤 보존회 회장 이승희 선생김영조
이어서 김숙자류 매헌춤보존회 회장인 이정희 선생의 김숙자류 입춤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입춤은 팔이나 몸의 관절만 움직이거나 또는 아래위로만 움직이며 제멋대로 추는 춤을 말한다. 이정희 선생은 시나위 장단에 한을 담아내고, 소고에 의한 자진굿거리로 한을 푸는 고 김숙자(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의 매헌입춤을 잇는다.

다음은 경기재인청을 이끈 이동안 선생의 진쇠춤을 그의 수제자인 운학전통춤 보존회 회장 이승희 선생이 풀어낸다. 진쇠춤은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추었던 것인데 한국춤의 신명과 역동성이 녹아있는 독특한 우리 춤의 하나이다. 이승희 선생은 정중동의 절제미를 한껏 구사하며, 쉽게 볼 수 없는 춤의 세계를 펼친다. 이것이 진정 한국 춤이 아닐까?

공연장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을 무렵 15명의 치배들이 '설장고와 사물놀이 합주'를 펼친다. 4개의 악기만으로 풀어내지만 15명의 장단은 마치 한 사람이 연주하듯 신명 그 자체이다. 혼신을 다한 그들의 연주에 객석은 숨을 죽이다 크게 손뼉을 치고 만다.

‘설장고와 사물놀이 합주’ 중 혼신을 다해 쇠를 두드리는 신명 단원들
‘설장고와 사물놀이 합주’ 중 혼신을 다해 쇠를 두드리는 신명 단원들김영조

‘설장고와 사물놀이 합주’를 하는 15명의 신명 단원들
‘설장고와 사물놀이 합주’를 하는 15명의 신명 단원들김영조

‘김숙자류 승무’를 추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굿 이수자 한수문 씨
‘김숙자류 승무’를 추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굿 이수자 한수문 씨김영조
설장고와 사물놀이 합주가 끝나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굿 이수자 한수문씨가 '김숙자류 승무'를 춘다. 여성 춤꾼의 승무에 익숙한 나에게 힘있고, 선이 굵은 승무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남자 춤꾼이 많지 않은 요즘 그는 귀한 춤을 추고 있다.


이어서 충남무용협회 도지부장인 원유선 선생의 지도로 충남예고 무용과 학생들의 부채춤이 열린다. 아직 배우는 학생들임을 감안한다면 풋풋하고 아름다운 부채의 선이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웃다리 풍물판굿'이 펼쳐졌다. 풍물굿은 객석 뒤에부터 시작한다. 오늘 공연은 평택농악과 안성농악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제를 섞은 웃다리풍물이라고 한다. 풍물판굿은 각 혼신을 다한 악기 연주도 물론이거니와 버나돌리기와 상모놀이로 관객들의 혼을 빼고 있다. 긴 상모를 관객에게 던졌다가 서서 누워서 돌리는 재주는 일품이다.


충남예고 무용과 학생들의 부채춤
충남예고 무용과 학생들의 부채춤김영조

‘웃다리 풍물판굿’의 치배별로 소개를 하는 박연식 신명 단장
‘웃다리 풍물판굿’의 치배별로 소개를 하는 박연식 신명 단장김영조
훌륭한 공연에 옥에 티는 물론 있었다. 사회자가 우리의 전통춤을 기방춤, 무속춤, 재인청춤으로 구분하면서 그 차이를 확인해보라고 했지만 우리 춤을 과연 그렇게 엄격하게 나눌 수 있는가 의문이었다.

또 풍물판굿이 아니라 농악이라고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농악'으로 신청해야 허가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리고 현장에선 풍물이란 용어로 굳어져 가는 데도 학자들의 어정쩡한 논리로 '농악'을 강요하려 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날 공연은 여러 가지로 칭찬을 받을 만했다. 특히 신명의 박연식 단장은 풍물에서 장구를 치는 치배인데도 전통춤 반주를 무리 없이 해냈다. 예전 많은 공연에서 보면 풍물의 치배가 전통춤의 반주나 다른 악기와의 협연에 쩔쩔매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진쇠춤을 춘 이승희 선생도 공연 뒤 박연식 단장의 반주에 흡족해했다.

‘웃다리 풍물판굿’ 중 관객들을 사로잡은 상모놀이
‘웃다리 풍물판굿’ 중 관객들을 사로잡은 상모놀이김영조
또 풍물패가 주류가 된 모임의 공연이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전통춤까지 아울렀다는 점은 그들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통문화인이 많은 요즈음 '신명'은 더 큰 곳을 향해 날개를 펴고 도약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신명'은 작은 도시 평택을 신명으로 들끓게 했다. 쉽지 않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젊은 국악인의 모임 '신명'에 관객들은 맘껏 손뼉을 쳐주고 있었다. 어쩌면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지역갈등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쾌거가 아닐까? 다른 지역, 다른 도시들도 평택 젊은 국악인들의 노력을 본받았으면 좋겠다는 관객들의 바람이 들렸다.

웃다리풍물은 내 인생이 되었다
[대담] 젊은 국악인과 평택 전통예술단 ‘신명’ 박연식 단장

▲ 쇠를 치고 있는 박연식 단장
ⓒ김영조
- 풍물굿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1991년 고등학교 때 평택에서 민중놀이패 산하 고등학생 동아리에 다니면서 전통문화에 입문했지만, 사실 그 당시 전통예술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국악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3년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상쇠이신 김기복 선생을 만나면서부터인데 이후 웃다리풍물은 내 인생이 되었다."

- 풍물 공연만이 아닌 전통춤까지 바탕을 넓힌 까닭은?
"장고는 우리 국악의 대표 악기로 정악에서부터 민속악까지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장구를 치다 보니 풍물은 물론 전통춤, 무속, 기악합주 등 다양한 영역에 접근하게 되었고, 풍물만이 전부가 아니며, 폭넓은 공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우리 전통문화는 무대공연이 아닌 마당놀이였다. 앞으로 공연을 무대가 아닌 마당으로 옮기고, 청중과 하나가 되어 즐기는 방향으로 바꿔갈 생각은 없는가?
"내가 참여하는 공연은 공연단의 성격과 공연장의 형태에 따라 항상 바뀌었다. 이번 공연의 첫째 목적은 많은 이들에게 국악을 알리고 가르치는 데 있기에 무대에 올려야 했다. 하지만, 안성남사당풍물놀이 공연과 지지난해 줄타기 보존회의 공연 활동 때는 모두 야외에서 마당놀이 형식으로 공연을 했었다."

- 군웅청배로 시작해 전통춤을 보이고, 풍물판굿으로 끝난 것은 바람직했다. 그러나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공연 하나하나의 시간을 줄이더라도 더 다양한 장르(기악, 성악)를 아우르고, 중간에 전통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설득하는 짧은 강연시간도 두면 어떨까?
"자체 발표 공연이 한해에 한번이다 보니 항상 이렇게 여유가 없다. 앞으로는 신명이 자생력과 공신력을 얻어 공연 횟수가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장르를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전통문화를 지켜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어떻게 꾸려나가고 있나?
"단원들 대부분이 군미필자인 어린 대학생이다. 각자 대학활동 위주로 움직이는 등 아직 전문인으로서의 활동은 문제가 많은 편이다, 지금은 이렇게 한 해에 한 번 공연을 올리면서 전체 모임을 하는 식인데, 단원들이 군을 제대하고 대학졸업 때가 되면 좀 더 심도있게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평택시청에서 해마다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음은 우리의 큰 버팀목이다."

- 평택시민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평택농악과 전통문화는 평택시민이 향유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 자산을 잇는 우리 공연자들은 관객의 추임새를 먹고 산다. 더 많은 관객이 자리를 채워주고, 손뼉을 쳐줄 때 평택은 더 자랑스럽게 빛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김영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대자보, 수도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대자보, 수도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명 #풍물 #박연식 #평택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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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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